무거운 것이 바윗덩어리가 아니라
마음인 줄 몰랐다
요지부동인 것이 쇠말뚝이 아니라
마음인 줄 몰랐다

쇳덩이가 변하고 바위가 바뀌어도
형체도 없는 마음이 쇠말뚝보다 더
움직일 줄 모른다
마음이 세상을 비추는 거울인 줄 알았더니
녹슨 청동거울보다 못하다

마음이 세상을 지시하고
입으로 마음을 발설하고서는
그 족쇄에 갇혀 움직이지 못한다
늪이 목까지 차올라온 마음이여
발설하기 두려운 마음이여
천지간 미치지 못할 곳 없는
허공보다 가벼운 마음이
태산보다 무겁구나

그러면 죄악이란 무엇이겠느냐
눈에 보이는 것들 살아 있는 것들
다 쏴 죽이고서
그 시체들이나 잔뜩 쌓아두고 있는
마음이여
너를 살해한다

시집 "인간의 시간"에서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