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영화 사전심의 위헌판결에 따라 영화계의 오랜 족쇄였던
검열과 가위질이 사라지게 됐다.

"상영금지"와 "삭제"의 근거규정이었던 영화진흥법 제12조및 13조1항이
위헌으로 판결난 이상, 앞으로 무삭제 완전등급제의 도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완전등급제란 심의기구가 삭제나 상영금지조치를 취할수 없고 연령층에
맞춘 등급만 정하는 방식.

이번 결정은 또 영화제작자, 외화수입사, 대기업 등 영상산업계의
전반적인 지각변동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영화인들의 창작의욕 활성화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의 유통구조,
마케팅 기법 등 모든 환경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돠된 것.

따라서 업계는 향후 판도변화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앞으로의
진로와 새로운 전략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삼성영상사업단의 심재부과장은 "섣부른 판단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영화사업부를 중심으로 다각적인 전망과 분석작업을 진행중인데 어쨌든
경제.사회적 파장은 클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익영영화사 박상인대표는 "표현의 자유가 확보되고 소재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등 총론적인 면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라고 평가한뒤 "앞으로
등급 기준이나 자진삭제 여부,창작물에 대한 사회단체의 압력 등 각론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과제"라고 말했다.

외화수입사인 유성필름의 김용노대표는 "외화를 들여올때 일일이
수입심의를 받아왔는데 이부분에 대한 법적용이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며
"업자들이 등급기준에 맞는 작품을 골라 구입하고 장기적인 수급계획을
세울수 있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여건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에 헌법재판소가 사전심의 조항을 "검열"로 판단한 것은 공륜
심의기준에 적합치 않은 영화는 상영을 금지시키거나 그렇지않을 경우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도록 한 규정 때문.

헌재는 공륜이외의 별도 검열기관을 구성하는 것도 위헌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후에 사법절차에 따라 상영을 금지하거나 청소년 보호 등을
이유로 유통단계에서 미리 등급을 심사하는 것은 검열로 볼수 없다는
견해를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또다른 부작용을 우려하기도 한다.

현재의 심의방식으로도 음란및 폭력성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는데다
등급별 관객의 입장통제가 용이하지 않다는 것.

또 완전등급제가 시행되려면 등급외 판정 작품을 상영할 성인영화
전용관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현재 성인전용관이 없다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성인영화 전용관 도입시 경쟁력약화를 우려한 기존 극장주들의 반발도
만만찮다.

헌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지난번 음반 사전심의 폐지때처럼 당장
공륜심의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대두되고 있다.

영화는 음반과 달리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과 파급효과가 커 영화제작 및
수입업자들이 마음대로 등급을 조정,극장에 거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석이다.

한편 문화체육부는 지난달 30일 국정감사에서 장관답변을 통해
"완전등급제는 우리 성도덕관념에 비추어보아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힌지 나흘만에 발표된 헌재판결을 보고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

앞으로 공청회 등을 통한 여론 수렴과 음반.비디오 등 연관산업,
유사 분야와의 법률적 검토를 거쳐 대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지만
여러가지 변수가 많아 정책 윤곽이 잡힐때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