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위주의 문단에 일상적인 삶의 이면을 간결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그려낸 단편들이 쏟아져 관심을 모은다.

박상우씨의 "소설가는 유서를 남기지 않는다"와 김소진씨의 "바람부는
쪽으로 가라"(이상 예문간), 배수아씨의 "바람인형"(문학과지성사간)은
짧은 얘기속에 독특한 은유와 상징을 담은 소설집으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 여운을 맛보게 한다.

박상우씨와 김소진씨의 것은 "젊은작가 짧은소설"시리즈로 처음
선보이는 엽편소설집이고, 배수아의 "바람인형"은 지난해 "푸른사과가
있는 국도"이후 두번째 내놓은 단편집이다.

박상우의 "소설가는 유서를 남기지 않는다"에는 200자 원고지 15장
안팎의 짧은소설 33편이 들어 있다.

표제작을 비롯한 1부의 작품들은 전업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스꽝스럽고 뒤틀린 일상의 뒷얘기를 재미있게 묘사했다.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고뇌가 특유의 섬세하고 다감한
문체로 담겨 있다.

2부에는 고달픈 직장생활을 술로 위안받으며 사는 샐러리맨이 위암일지도
모른다는 예진을 받고 우왕좌왕하는 "그래서 돌아본 생활이라는 것"등
직장인들의 애환과 엇갈리는 인간관계를 소재로 한 20편의 얘기가 실려있다.

김소진의 "바람부는 쪽으로 가라"의 등장인물은 아파트에 사는
보일러기술자 박공배와 기업체 과장 맹형규, 봉근엄마, 선미엄마등
우리 이웃의 고만고만한 인물들.

만년 차장의 안타까운 꿈을 그린 "홀로서기", 비자금정국에 검찰출두
통보를 받은 재벌회장과 그 와중에 앞뒤로 치이는 그룹 홍보실직원의 애환을
담은 "홍보가 기가 막혀"등도 눈길을 끈다.

그간 아버지세대의 역사인식을 오늘의 현실에 대비시켜 사회의 주변부를
관찰해온 작가의 관심이 현대사회의 다양한 모습들로 확장되는 과정과
구수한 유머에 실린 웃음들이 풍요롭게 다가온다.

배수아의 "바람인형"은 환상적인 이미지의 세계를 여러폭의 수채화처럼
펼쳐보이는 작품.

등장인물들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그림속에 들어앉은 듯한
군상이다.

표제작의 주인공은 회계사무소에 다니는 남자의 방안에 어느날 문득
날아와 앉은 헝겊인형이다.

바람에 실려온 이 인형은 과거에 서커스단에서 공중곡예를 하며 줄타는
소녀를 사랑했던 남자 아이를 떠올린다.

그는 곡예도중 계단으로 떨어져 모든 기억을 잃고만다.

바람인형은 오랫동안 그를 잊지 못하다 어느 쓸쓸한 산비탈의
옥수수밭에서 죽은 줄타는 소녀인 셈이다.

이밖에 "내 그리운 빛나" "프린세스 안나" "마을 우체국 남자와 그의
슬픈 개" "포도상자 속의 뮤리""검은 저녁 하얀 버스"등도 작가의
회화적인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 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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