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일하는 여성과 주부를 위한 프로그램을
똑같은 비중으로 운영하는 것입니다.

현재 여성노동센터와 생활자치센터 아래 가족과성상담소 및
고용평등추진본부를 두고 있죠"

여성민우회 정강자 대표(42)는 87년 창립 당시 상담부장으로 시작해
민우회가 든든하게 자리잡은 지금까지 줄곧 함께 해온 모임의 산증인이다.

창립직후 기업체 노조간부 지원교육과 홍보 등에 치중했던 민우회는
90년부터 환경문제 등 생활과 밀접한 부문으로 눈을 돌렸다.

"89년 생활협동조합운동을 시작했어요.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채소, 폐식용유로 만든 비누와 재생공책,
회원들이 만든 빵 잼등을 판매하죠.

회원에게만 공급했는데 희망자가 자꾸 늘어나 확대방안을 찾고 있어요"

생협운동이 물질적 측면을 다룬다면 95년 5월 문연 가족과 성상담소는
점차 심화되는 가정해체와 성범죄 등 윤리적측면에 대응하기 위한 것.

목동과 노원.도봉지구 2곳에 사무실을 열어 활동중이다.

신경정신과 산부인과의사 여성학자 등 16명의 운영위원과 자원봉사자들이
꾸려가고 있다.

6~7월 패륜적 성범죄가 잇따라 드러난뒤 쉬쉬하던 일을 상담해오는
사례가 급증했다고.

직장여성을 위한 사업중 가장 큰 업적은 94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44개기업 모집채용시 용모제한" 고발.

이것은 당시 사회적문제로 증폭돼 95년 정무제2장관실 고용평등의달
제정에도 한몫 했다.

"최근 각기업고용평등지수 만들기작업을 시작했어요.

올해엔 공기업과 제1금융권 그리고 내년부터 30대 대기업 등으로 점차
확대할 계획이죠"

94년부터 실시해온 의정모니터활동은 95년 선거에서 큰 수확을 거뒀다.

이금라 홍미영 (시의원) 김은경 최찬애 유송화 김영숙씨 (구의원) 등
6명의 회원이 지자체의원으로 선출된 것.

"5,000여 회원과 주부들의 지지가 대단했어요.

정치가 활동목적은 아니었는데 생활과 가까운 여러가지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의원직에도 진출하게 되더군요"

정대표가 여성운동에 참여한 것은 75년 학교 (이화여대 도서관학과)
졸업 직후부터.

흥사단아카데미전문위원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남편 고한석씨 (인제대부교수.정형외과)와 3명의 아들딸은 함께
재생비누를 만들고 유기농법 농장을 찾아다니며 조언도 아끼지 않는
훌륭한 지지자이다.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