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이 훌륭한 예술세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에
평가를 받지 못한 숨겨진 작가들을 발굴, 본격적으로 재조명하는
작업에 나선다.

지난해 "원로작가 전"을 열어 김기창 김흥수 김보현씨등 생존대가들의
작품세계를 소개했던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은 올해 "재조명작가전"을
새로 기획, 작고작가중 그동안 진가를 인정받지 못해온 인물들을 찾아내
집중 조명한다.

미술사를 돌이켜보면 대가들의 경우 당대의 몰이해와 인식부족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후대에 가서야 빛을 발한 경우가 비일비재한
실정.

심지어 자기시대에는 천대를 받기까지 했던 경우가 많았는데 세잔느나
고갱 고흐 등 거장들도 모두 당대에는 그리 알려진 작가가 아니었다.

굳이 서양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이중섭 박수근같은
대가들도 당시에는 빛을 보지못했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예술적 감각이
후대에 인정받으면서 대가로서의 자리를 되찾은 경우에 속한다.

예술사조에 있어서도 오늘날 17세기를 대표하는 미술사조로 꼽히는
바로크미술도 당대에는 "괴이하고 뒤틀려서 꼴도 보기 싫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

또 우리에게 친숙한 인상주의나 야수파같은 용어도 당시에는 모두
깎아내리는 의미에서 붙여졌던 것들이다.

예술의전당이 가장 먼저 발굴 소개하는 작가는 한원 박석호 화백
(1919~1994).

12~30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580-1510)에서 유작전이 마련되는
박화백은 60~90년대에 걸쳐 활동했던 작가로 무분별한 서구사조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시대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작가.

박화백은 또 근대화의 와중에서 국전을 중심으로 한 아카데미즘과
이에 반기를 든 현대미술사조가 혼전을 벌이는 동시에 민중미술까지
등장하게 되는 상황에서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든 화풍을
수용하면서 자기의 길을 걸었다.

때문에 시대의 일상과 당대인들의 감정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면서
한국미술의 방향을 올바로 제시한 작가였다는 평가를 받게된것.

이번 재조명전에는 "주문진" "흐린날" "한촌" "우후" 등 대표작을 비롯
유화 수채 데생 등 모두 250여점이 출품된다.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박화백은 독학으로 28세에 앙데팡당전에서
최고상인 미술협회상을 수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남관선생에게 사사한 그는 31세의 늦은 나이에 홍익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졸업후 신인회 신상전과 구상전을 창립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43세때 홍익대 교수로 임용됐으나 학교측과의 마찰로 사표를 내고
작고할 때까지 전업작가의 길을 걸었다.

62년 국립도서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 모두 여덟번의 작품전을
가졌고 상파울루비엔날레에도 참가했다.

< 백창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