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의 영상화작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문학의해를 맞아 TV문학관이 부활되는가 하면 시.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제작이 급증하고 있다.

현재 촬영중이거나 후반작업에 들어간 것만 8편에 이를 정도.

지난달 크랭크인된 "학생부군신위" (박철수 감독)는 시인 황지우씨의
"여정"이 원작이며 "나에게 오라" (김영빈 감독)는 송기원 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 (홍상수 감독)은 구효서
소설 "낯선 여름"을 토대로 하고 있다.

"꽃잎" (장선우 감독)은 최윤 소설 "저기 소리없이 한점 꽃잎이 흐르고",
"유리" (양윤호 감독)는 박상륭 소설 "죽음의 한 연구"를 영상으로 옮긴것.

망명객 홍세화씨의 자전에세이를 스크린에 담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도 마찬가지.

그런가하면 임권택 감독의 "축제"는 작가 이청준씨와의 동반작업으로
주목을 끈다.

이같은 현상은 일차적으로 창작시나리오의 빈곤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감독이나 제작자의 인식변화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엇비슷한 얘기와 반복되는 구성 등 한국영화의 취약한 소프트웨어에
한계를 느낀 제작진들이 보다 깊이있고 무게있는 원작을 찾기 때문.

더구나 뛰어난 작품성을 토대로 함으로써 국제 영화제 출품 및
해외수출에도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꽃잎" "축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등은 기획단계부터
세계3대 영화제 출품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학생부군신위"는 상가집을 무대로 한 블랙코미디.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 옮아가는 전환기의 갈등을 해학적으로
그린다.

평범한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삶의 진정성을 탐색한다.

"나에게 오라"는 70년대 시골장터를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

건달과 창녀 등 밑바닥 인생들의 삶을 통해 젊은날의 방황과 고뇌를
형상화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바람난 유부녀와 삼류소설가, 결벽증 심한
샐러리맨 등 소시민 4명의 "하루살이" 모습을 모자이크한 코미디.

"꽃잎"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휴먼스토리.

15세 소녀와 막노동판 남자의 사랑,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인한 고통,
역사의 상처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애를 다루고 있다.

"유리"는 한 승려의 구도과정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는 작품.

밀교의 수행방법과 독특한 내면탐구로 눈길을 끈다.

감독 배우 모두 신인이지만 만만찮은 기량을 보여준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한 망명객의 고독과 향수를 그린다.

유신말기 남민전사건에 연루돼 귀국하지 못한 "영원한 이방인"의
인생얘기.

"축제"는 치매로 고생하다 세상을 뜬 노모의 장례식을 통해 생명의
영속성과 윤회, 가족과 세대간의 단절및 계승, 진정한 희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품이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