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골든아이"는 6년만에 다시 만들어진 본드 영화다.

그러나 17대 본드 피어스 브로스넌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초대 본드 숀 코너리의 면모를 재현해 내는데 그쳤다.

62년 "살인번호"로 시작된 007시리즈에서 모두 6번의 주연을 맡았던
숀 코너리는 로맨틱한 이미지로 포장된 로저 무어나 고뇌형의 티모시
달튼에 비해 가장 카리스마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제작사는 애당초 신세대 본드의 탄생보다 숀 코너리신화 되살리기에
중점을 뒀고 브로스넌은 이같은 의도에 충실히 따랐다.

번지점프와 탱크 헬기 특수제작된 첨단열차속에서 펼쳐지는 액션장면은
물론 닥터큐의 신형 펜폭탄까지도 브로스넌이 숀 코너리의 직속후계자가
되는 것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시대상황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우선 여성들의 변신이다.

초대 본드걸 허니가 속없이 끌려다니는 장식품이었다면 90년대 본드걸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전문직업을 가진 여자다.

러시아 비밀우주기지 연구원인 나탈리아(이자벨라 스코룹코)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며 새디스트인 제니아(팜크 젠센)도 고학력 인텔리다.

영국 첩보국의 보스 M도 여자로 바뀌었다.

본드의 적도 변했다.

냉전시대의 단골손님이었던 구소련 대신 러시아에 근거지를 둔 유럽
마피아가 악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우주에서 대체무기를 얻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는
항공밀수업자.

본드는 "골든아이"라는 위성핵무기를 놓고 이들과 사투를 벌인다.

본드의 행동방식에도 약간의 변화가 따른다.

이름을 물으면 꼭 본명을 밝히고 어릴 때 부모를 잃은 고아라는 과거도
드러낸다.

바뀌지 않은 것은 쉴새없는 추격 탈출 폭력 등 스펙터클의 홍수.

재미있지만 가슴에 남는 여운은 별로 없다.

( 16일 명보/반포/한일/신영/힐탑/롯데월드/건영옴니 개봉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