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연기의 무게를 잰다고?

"스모크"에 나오는 연기측정법은 간단하다.

담배 한 개비를 천정저울로 단 뒤 피우고 난 꽁초와 재를 다시 올려
놓고 재면, 그 차이가 바로 연기의 무게다.

웨인 왕감독의 "스모크"는 연기처럼 손에 잡히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인생의 무게를 담고 있는 영화다.

"조이럭 클럽"에서 중국계 이민가족의 조각난 삶을 바느질하듯
섬세하게 다듬었던 그는 이 영화에서 다시 한번 개인의 일상사를
모자이크해 보여준다.

차이가 있다면 주인공이 동양인에서 흑백의 미국인들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가 보기에 운명이란 멜로드라마나 대하사극처럼 화려하지도 강렬하지도
않다.

그저 평범한 일상의 그물망으로 엮여져 있다.

영화는 도시의 잡다한 소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곧이어 뉴욕시내를 벗어나 브루클린으로 향하는 전동차가 보인다.

흰색의 열차는 누에처럼 느리고 구불구불하게 "사연많은 동네"로
들어선다.

3번가 모퉁이 담배가게.이곳을 중심으로 고단한 삶을 사는 보통사람들의
얘기가 담담하게 전개된다.

14년동안 한곳에서 담배를 팔아온 오기(하비 카이텔)와 그의 단골인
소설가 폴(윌리엄 허트)이 중심 인물.

여기에 우연히 폴의 목숨을 건져준 흑인 소년 라시드, 그의 생부
사이러스, 오기의 옛 연인 루비가 다섯개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하루도 빠짐없이 가게앞 풍경을 찍어온 오기가 폴에게 "수천장의
사진중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네.

햇살이나 바람, 사람들의 표정 등 모두가 새롭고 달라보이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인생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

흑백톤으로 처리된 마지막 부분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도 탁월하다.

담배연기처럼 자욱하게 깔리는 탐 웨이츠의 배경음악 "꿈을 꿀때
만큼은 순수한거야, 꿈은 죄가 없어"다 영혼의 밑바닥을 스치듯 감동을
더해준다.

( 4일 코아 동숭홀 힐탑 롯데월드, 11일 계몽문화센터 개봉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