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오병철감독)는 불교경전에서 따온 제목만큼
상징성이 강한 영화다.

공지영의 동명소설을 영상화한 이 작품은 세 여자가 결혼 이후 겪는
고뇌를 마음의 행로에 따라 그리고 있다.

여자 나이 서른. 꽃잎처럼 팔랑거리던 스무살 시절에는 누구보다 자의식
강하고 당찬 모습이었지만 10년의 세월을 건너오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시들어버렸다.

잃어버린 자아와 결혼의 굴레가 이들의 공통된 화두다.

한순간의 부주의로 아이를 잃고 남편과 헤어진 작가 혜완(강수연).

화려한 외양에 남부러울것 없이 생활하는 아나운서 경혜(심혜진).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뒤 상실감에 빠져 괴로워하는 영선(이미연).

다소 극단적인 캐릭터로 묘사된 이들은 껍데기만 남은 자신들의 삶이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회의한다.

그래서 "나"를 찾는 일에 집착한다.

세 여자중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영선의 모습은 두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자신을 구속했던 스스로의 화두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려는 시도와 내면을
향해 마주 보고 "거울"을 닦는 자세가 겹쳐 나온다.

책상에 앉아 뾰족하게 연필을 깎는 그녀의 모습은 새로운 자각의
표현이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자살하고 만다.

감독은 남성시각으로 여성영화를 만들때 범하기 쉬운 오류를 피하기
위해 너무 "여성"을 의식한 듯하다.

주제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였겠지만 세 여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을
비이성적이거나 부도덕한 성격으로 대칭시킨 것은 오히려 공감대를 좁히는
요소.

"누군가와 행복해지려면 먼저 스스로 행복해질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는
결말부분의 내레이션도 사족에 가깝다.

괄목할만한 것은 이미연의 연기. 강수연과 심혜진에 비해 운신의 폭이
좁았음에도 불구하고 깊이있는 내면연기를 잘 소화했다.

(7일 피카디리 그랑프리 씨티 이화예술극장 개봉)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