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조각가 당진 김창희씨(서울시립대 환경조각과교수)와 패션디자이너
이광희씨(이광희룩스대표)가 순수미술과 패션의 만남이라는 흔치
않은 무대를 마련한다.

만남의 장은 19일 오후1.7시 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과 21일
오후2.7시 부산 파라다이스비치호텔.

전체 이미지는 "아름다운 옛시절에 대한 향수". "환상.고향마을"을
제재로 한 김씨의 조각을 배경으로 30년대 복고풍을 바탕으로 우아한
여성미에 중점을 둔 이씨의 95.96추동복이 발표된다.

이를 위해 김씨는 실제와 환상의 세계 중간쯤에 있음직한 옛마을의
모습을 닮은 대형조각 14점, 이씨는 특유의 아름답고 여성적인 의상
100여벌을 만들었다.

김씨의 조각이 굵은 뼈대로서 무대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면,
이씨의 의상은 섬세한 디테일로 무대를 채우고 꾸며나간다.

무대폭은 총 16m로 좌우 2m를 뺀 12m에 조각과 의상이 채워진다.

이번 무대는 단순히 조각과 의상이 한곳에 서는 것이 아니라 두가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자리라는 점에서 미술과 패션계 양쪽 모두의
커다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의상을 입은 모델이 석고조각 뒤에서 돌아나온뒤 조각옆에서 잠시
포즈를 취해 조각과 하나가 됩니다.

즉 움직이는 조각(모델)과 정지된 조각이 하나가 되는 거죠"(디자이너
이씨)

김씨의 석고조각 14점은 3개의 군으로 나뉘어 4~5점씩 무대에 세워진다.

이번 발표작에 사용된 석고의 양은 총8t.

거대한 스케일, 인체를 묘사하되 얼굴윤곽은 거의 보이지 않고 실루엣
만이 완만하게 흐르는 형체, 그러면서도 둔탁하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선이 이번 작품의 특징이다.

"이번 발표작에는 사람의 구체적인 형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각도에
따라 사람 혹은 거대한 바윗돌이나 나무로도 보일 수 있죠" (조각가 김씨)

특히 석고의 부드러운 흰빛이 잘살아나도록 조명에 신경썼다고.

김씨는 홍익대조소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국전 문공부장관상
(77년), 국무총리상(78년)을 받았다.

국내뿐만 아니라 도쿄 모스크바 뉴욕등 해외에서 모두 17차례의
개인전을 가졌다.

이씨는 78년부터 디자이너로서 활동, 85년에 "이광희"브랜드를 설립하고
품격있고 여성적인 옷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디자이너.

그가 미술과 패션의 만남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세번째이다.

88년에 서양화가 이항성씨의 순수회화를 그리거나 판화로 찍은 원단을
이용해 작품을 발표했고, 93년에는 대전엑스포 문화행사에서 서양화가
우제길씨의 그림을 이용한 의상을 선보였다.

이씨는 "순수미술계에서 패션을 백안시하는 풍조가 여전한 상황에서
과감하게 공동작업을 수락한 김선생께 감사드리고, 앞으로 이런 융합의
시도가 좀더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20일 개막되는 광주 비엔날레에도 패션계가 참여해 이 두 장르의
만남은 더욱 큰 가능성을 보여준다.

< 조정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