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한국방송기자클럽이 주최한 한 토론회에서 오인환 공보처
장관은 "멀티미디어 시대의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면 우리
방송도 이젠 상업화논리를 과감하게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송도 하나의 산업(industry)"이란 말은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우리의 현실은 아직까지도 "방송은 사회적 공기이기 때문에 상업적
측면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라는 인식이 널리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방송의 무한경쟁은 이미 진행중에 있다.

무엇보다 대기업들이 방송.영상산업분야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고
해외방송 또한 국내시장을 집요하게 공략하고 있다.

이제는 방송산업이 다른 어떤 산업분야보다도 고부가가치를 창출할수
있는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증거다.

올해들어 국내에는 20개의 케이블TV채널이 새로 생겼고 오는 9월까지는
7개 채널이 추가될 전망이다.

지난 5월에는 4대 지역민방이 출범했고 앞으로도 지역민방은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또한 무궁화위성에 따른 4개의 위성채널이 빠르면 내년부터 시험방송에
들어갈 예정이고 나머지 채널도 추가로 허가될 전망이다.

이렇게보면 향후 2~3년내에 무려 6~70개의 채널이 생긴다는 얘기다.

바야흐로 방송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이쯤되면 방송간의 사활을 건 싸움이 진행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요즘 공중파방송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특히 제작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일선 간부진들은 더하다.

한 간부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공중파방송의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고
단언한다.

낙후된 제작환경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제작시간의 절대부족으로 새로운 기획력과 창의성있는 프로그램이
나올리가 없다.

여기에다 다채널 등장으로 광고수입이 분산돼 가뜩이나 적은 제작비가
오히려 줄어들 상황에 처해있다.

이것은 곧 국내방송 프로그램의 해외수출실적의 부진함으로 나타난다.

일례로 지난해 방송프로그램 수출입현황을 살펴보면 해외프로그램
총수입액이 2,1000만달러인데 반해 방송3사의 총수출액은 440만달러에
불과해 약 1,660만달러의 적자를 봤다.

소프트웨어의 양적인 측면에서도 몇편의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수출된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수출지역 또한 대부분 동남아시아지역에 국한돼 있어 미국과 같은
거대시장을 공략하기에는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

케이블TV 또한 마찬가지. 출범한지 벌써 5개월째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까지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케이블TV사들이 손익분기점을 짧게는 2~3년, 길게는 5년으로
잡고 있지만 실제로는 더 길어질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오히려 어느 분야보다 적자생존의 논리가 철저히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영상산업 진출의 발판을 확보하고자 케이블TV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현재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케이블TV는 캐치원(삼성물산), Q채널
(제일기획), 현대방송(금강기획), 대우시네마네트워크(대우전자),
두산슈퍼네트워크(두산), 동아TV(동아), GTV(진로), KMTV(현대음향),
A&C(코오롱)등 9~10개사.

이들과 몇몇 케이블TV사들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중.소 케이블TV사들은
그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이다.

더구나 공보처가 최근 내놓은 방송개혁안에 따르면 종합유선방송국
복수소유(MSO)나 사업자간의 수직적 결합을 허용할 방침이어서 정부
스스로도 적자생존의 논리를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다 케이블TV를 통한 외국위성방송의 송출을 허가할 방침이어서
연간 1조원규모로 파악되고 있는 케이블TV 시장도 멀지않아 해외에
잠식될 위기에 처해있다.

독립프로덕션의 경우는 더욱더 열악한 상황이다.

84년 시네텔서울이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독립프로덕션에 의한 외주
제작의 문을 연이후 10여년이 지난 현재 무려 250여개 독립프로덕션이
존재한다.

이들 대부분은 영세업체이고 독립제작사의 기능을 할수 있는 곳은
20여개사 정도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기업들도 이 분야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제일제당이 모래시계 김종학사단과 합작해 설립한 "제이콤",
한보그룹의 "한맥유니온", 새한비디어의 "디지탈미디어", 청구의
"파라비젼", 한화의 "한컴"등이 대표적.

독립프로덕션은 주로 방송의 외주제작 형식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현재 방송사의 순수외주제작비율은 5% 정도이고 그것마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방송대상을 두번씩이나 수상했을 정도로 다큐멘터리분야에서는
알아주는 인디컴의 김태영대표는 "소위 잘나간다는 우리도 재정적인
위기에 몰려있다.

독립프로덕션이 말그대로 "독립"할수 있으려면 방송사의 인식의
변화와 함께 독립프로덕션의 이해를 반영해줄 별도의 협회가 필요
하다"고 주장한다.

위성방송 또한 마찬가지.정부는 오는 97년까지 적어도 10개 이상의
위성채널을 허가할 방침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업자 선정문제, 채널운용방식, 프로그램편성및
수급문제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먼저 채널을 확보하게 될 공중파방송들은 이미 뉴미디어사업팀을
구성, 준비에 들어갔지만 인력확보나 프로그램수급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국내 방송산업은 아직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길은 우리가 닦고 프로그램은 외국의 거대방송들이
차지하는 상황"이 올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결국 우수한 방송 소프트웨어 개발만이 방송의 무한경쟁을 헤쳐나갈수
있는 유일한 대안.

따라서 정부는 무엇보다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방송프로그램 육성에
역점을 둬야 한다.

그리고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거대자본의 흐름을 영상산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