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과 자연, 고향과 옛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집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규원씨의 "길,골목,호텔 그리고 강물소리", 박태일씨의 "약쑥개쑥",
강유정씨의 "네속의 나같은 칼날", 장석남씨의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이상 문학과지성사간)과 조태일씨의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 이동순씨의 "봄의 설법", 고재종씨의 "날랜 사랑"(이상 창작과
비평사간)이 한꺼번에 출간된 것.

조현석씨의 "불법,.체류자", 전윤호씨의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이상 문학세계사간)도 눈길을 끈다.

이들 시집은 거의 모두 고단한 삶을 일궈가는 사람들의 아픔과 희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자연을 바라보는 눈과 현실세계에 대한 인식, 깨달음에 도달하는
방법등에 있어서는 제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오규원 강유정씨의 시집은 존재와 사물의 연관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시인은 골목길과 새 하늘등 눈에 보이는 풍경들은 물론 강물소리와 내면의
웅성거림까지를 시의 렌즈로 찍어낸다.

시인에게 세상은 욕망과 죽음의 어두운 경계밖에서 홀연히 날아오르는
한마리 새가 되거나 자신의 심장에 감춰진 "언어의 은장도"로 내면화된다.

박태일씨의 "약쑥개쑥"은 남도의 산과 들, 강물과 바다를 배경으로 가난한
이웃들의 삶을 드러냈다.

그는 여행길에 마주친 사람들과 "그리움엔 길이 없다"는 대화를 나누다가
무덤 앞에서 "문득 문득 떠올라 환하신 아버지"를 만나면서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의 친화를 노래한다.

반면 조태일 이동순 고재종씨는 농촌풍경과 농민들의 삶에 더 관심을
보인다.

그동안 사회적 현실을 주로 다뤘던 조태일씨는 이번 제7시집에서 "풀씨"
"꽃들,바람을 가지고 놀다"등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깨달음의 세계로
다가선다.

이동순 고재종씨도 "달래 할부지" "저 씻나락 담그는 풍경"등에서 보듯
상처받은 고향사람들의 삶을 따스한 정감으로 어루만진다.

고죽마을과 궁실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농촌 정경을 투명한 시어로
비추면서 "나"의 자화상과 대비시켰다.

장석남씨는 상실과 비애속에 드러난 현대인의 고독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젊음의 상흔과 쓸쓸함이 시인의 상상력을 따라 자유롭게 결합되어
나타난다.

조현석씨와 전윤호씨는 현대도시인의 삶을 소재로 시민사회에 대한 폭력과
개인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그렸다.

< 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