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감독의 "301.302"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객과의 거리조절
이다.

그가 새로운 영상문법을 내세우고 독립프로덕션을 설립, 첫작품으로
선보인 이영화는 적절한 상징과 비유로 여성의 내면풍경을 비춰내고
있다.

안과 밖, 음식과 섹스, 수용과 거부의 몸짓언어가 잘 버무려진 요리처럼
조화를 이룬다.

영화는 처음부터 스토리텔링보다 이미지극에 중점을 둔 감독의 의도를
내비친다.

관객에게 일정한 거리를 확보토록 미리 암시한 셈이다.

"바이오 새희망 아파트"에 입주한 두여자의 심리적 공간은 빛과
어둠의 세계로 대비된다.

302호 여자인 송희(방은진)는 음식만드는 일이 곧 사랑이고 삶이다.

그래서 맛으로 인생을 음미하는 빛의 여자. 활발하고 적극적이다.

반면 301호 여자 윤희(황신혜)는 어릴때 성폭행당한 기억으로 인해
음식과 섹스를 거부하는 어둠의 여자. 고독하고 소극적이다.

이들의 관계는 301호가 음식을 들고 302호로 찾아가면서 최초의
"경계 무너뜨리기"가 시작되는데 이때부터 만들고 먹는 쪽과 토하고
버리는 쪽의 대립이 이어진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둘다 상처받고 소외된 여자. 같은 평수의 한
아파트에 서로 마주보고 살지만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

이름 대신 숫자로 기호화된 두여자는 음식을 통해 말하고 음식을
매개로 이해하며 상호교감에까지 이른다.

결국 상반되는 두개의 공간이 한데 합쳐지는 과정도 먹고 먹히는
것으로 처리된다.

302호는 301호의 요리재료가 되므로써 빛의 세계로 들어간다.

진정한 자아찾기가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실험적인 기법과 저예산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한꺼번에 확인시킨
이영화는 관객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강력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방은진과 황신혜의 내면연기도 돋보인다.

(명보/동아/롯데예술/반포시네마/건영옴니/영타운/문예극장 상영중)

< 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