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현대극이 국내무대에 오른다.

극단산울림의 개관10주년 기념공연 제2탄 "남자죽이기! 결혼하기에
이르고, 죽기엔 늦고"(에드바르드 라드진스키작 임영웅연출, 25일~
5월28일)가 바로 그것.

안톤 체호프이후 서방에서 가장 잘 이해되는 극작가라는 라드진스키가
87년 발표한 이 극은 러시아현대극으로서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

중량급배우 김금지와 전무송이 함께 출연, 극의 격조를 한껏 높인다.

사랑하는 동료배우로부터 버림받은 어느 여배우의 사랑과 증오,
그리고 복수의 과정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극으로 산울림이 그동안
선보였던 공연들과 궤를 같이하는 작품이다.

여성심리에 대한 작가의 탁월한 통찰과 섬세한묘사에 극단의 연출
연기역량이 맞물려 페미니즘연극의 또다른 전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막이 오르면 무대위에 한 여자(니나)가 있고 아파트 문밖에는 우연히
레스토랑에서 만난 남자 사샤가 서있다.

삼류배우시절 니나를 버렸던 옛애인인 그는 현재 희곡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

니나는 그들의 사랑과 헤어짐을 배경으로 한 사샤의 희곡을 함께
연기할 목적으로 그를 아파트로 맞아들이고 둘만의 연극을 시작한다.

사샤는 니나가 준비한 독버섯을 먹은후 죽어가며 그런 그를 끌어안고
애무하는 니나를 뒤로 무대는 막을 내린다.

두사람의 연극이 희극인지 비극인지를 진지하게 묻는 이 극은 사랑에
목마른 여배우와 사랑이 부담스러운 작가가 벌이는 한편의 드라마다.

"환희와 좌절을 겪는 한 여자의 사랑얘기를 그린 작품으로 한 여성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무대로 옮기고자 했다"는 게 연출가 임영웅씨의
말.

< 김수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