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 극장가에 비할리우드 명화들이 대거 선보인다.

그간 미국직배영화의 물량공세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러시아 호주
이탈리아의 수작들이 올들어 국내팬들에게 잇따라 소개되고 있다.

러시아영화 "희생"(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감독)을 비롯,"바이올린플레이어"
"바베트의 만찬" "뮤리엘의 웨딩" "푸에르토 에스콘디도"등이 그것.

2월하순부터 3월초에 집중개봉되는 이 영화들은 모두 작품성과 영상미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화제작들이다.

"희생"은 "금세기 최고의 감독"으로 불리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감독이
86년 죽음을 앞두고 암과 투병하며 완성시킨 것으로 제39회 칸영화제에서
4개부문 동시수상 기록을 세운 영화다.

첫장면은 주인공 알렉산더(어랜드 조세프슨)가 어린아들(수잔 플리트우드)
에게 "죽은나무에 3년동안 물을 주어 꽃을 피웠다"는 아름다운 전설을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 희생을 각오한 그는 집마저 불태우고 병원에 실려간다.

목수술을 받아 말을 못하던 그의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심었던 나무아래
누워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데 아빠 그게 무슨 뜻이죠"라고 말문을 여는
마지막 화면은 영화를 시와 철학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바이올린플레이어"는 프랑스 소장파감독 찰리 반담이 연출한 정통
음악영화. "불멸의 연인"에 등장했던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 연주를 맡아 주옥같은 선율을 들려준다.

배경은 파리의 지하철.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아르몽(리샤르 베리)은
화려한 오케스트라를 버리고 도시의 지하로 내려간다.

예술을 향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따스한 멜로디로 울려퍼지는
그곳에서 그는 좌절과 고통을 딛고 빛을 발견한다.

이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마지막 15분.바흐의 작품중 가장 연주하기 어렵고
복잡하다는 "샤콘느"가 지하공간을 매료시킨다.

음악이 절정에 달했을때 여명의 안개를 뚫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두 연인의
뒷모습이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바베트의 만찬"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자 아이작 드네센의
소설을 각색,덴마크감독 가브리엘 액셀이 만들었다.

바닷가 작은마을에서 얼마 안되는 수입 전부를 이웃봉사에 쓰며 살아가는
신앙심 깊은 두 자매에게 어느날밤 프랑스혁명으로 가족을 잃은 바베트
(스테판오드란)가 찾아온다.

하녀로 생활하던 바베트는 복권당첨으로 생긴 큰돈을 한번의 만찬을 위해
다쓰며 인간의 시기와 질투를 사랑과 화해로 승화시킨다.

간결한 대사와 빠른 화면전환,재치있는 유머로 시종 미소를 띠게 하는
영화다.

호주영화 "뮤리엘의 웨딩"도 재미있으면서 따뜻한 정감이 묻어나는 작품이
다.

지난해 호주영화제 11개부문 수상작 후보에 올라 화제를 모았는데 뮤리엘역
의 토니 콜레트가 펼치는 연기가 볼만하다.

"지중해"의 가브리엘 살바레토감독이 만든 "푸에르토 에스콘디도"(피난자의
항구)는 억압된 현실로부터 탈출해 자유를 찾고자 하는 몸짓을 강렬하게
표현한 영화. 바다와 사막을 대비시켜 문명사회의 꿈과 좌절을 풍자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