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발레의 영광을 대변해오던 볼쇼이극장이 소용돌이에 휘말려있다.

시장경제의 가혹한 바람이 모스크바 예술계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볼쇼이는 1946년 이 극장을 소비에트예술의 대명사로 만들고자 급여를
비롯한 여러 특권들을 부여한 조세프 스탈린 덕에 다른 분야들이 겪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예외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댓가로 볼쇼이오페라단과 발레단은 소비에트이데올로기의
요구에 부합하는 레퍼토리를 공연해야 했다.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와 보로딘의 "이고르왕자"등의 유명작품과
함께 공연한 30년대오페라 "10월유정탑"이나 집단농장을 다룬 "깨끗한 땅"
과 같은, 결코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작품들이 그것이다.

소비에트연방 해체는 볼쇼이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여권사용이 자유로워진 현재, 국내 경제위기와 금전의 유혹은 스타들을
외국으로 내몬다.

예술총감독 코코닌은 "극장이 철도역이 되어버렸다. 단원들이 늘 떠나있는
바람에 우리는 공연명을 정할수도 없다"고 한탄한다.

게다가 지난해 9월 옐친은 성악가와 무용가들을 계약직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단원들은 적더라도 안정적인 급여를 원한다.

이러한 의견불일치로 인해,지난달에는 옐친이 관람하기로된 발레 "지젤"
시작전에 단원들이 20분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물론 좋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극단의 행정구조가 자유로와졌다. 15인정도의 집단지도체제로
변화된 것이다. 그로 인해 떠나갔던 단원이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단원들의 잦은 외유,불안정해진 지위등은 전반적인 공연수준의
저하라는 반갑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저명발레리나 니나 아나니아시빌리는 "이제 프로그램을 살피지 않고
볼쇼이에 가는것은 위험하다"고까지 말한다.

볼쇼이에 불어닥친 개방의 바람은 몇몇 스타급예술가를 달러박스로
만들어 주었으나,대다수 단원과 극장전체는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몰고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