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오페라계에서는 요즘 발레리 게르기에프라는 40세 신인예술감독이
인기를 끌고있다. 키로프오페라단의 예술감독및 지휘자를 겸하고있는 그는
천재적재능으로 이오페라단을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이른바 "가장 잘
팔리는"오페라단으로 만들어놓았다. 러시아전역에서 내로라하는 가수및
배우들이 그에게 몰려들고 서양의 오페라극장에서 공연교섭이 끊이지않고
들어오고있다. 재정에 허덕이는 다른 오페라단과는 달리 스케줄이 꽉
잡혀있는 실정이다.

이 오페라단의 성공배경은 극단조직의 활성화. 뿌리깊은 관료체질을
잘라내고 유능한 인재를 과감히 발굴,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연습을 하며
서양극단이 3-4년에 걸쳐 소화해내는 순회공연스케줄을 1년에 다해낸다.
단원들의 불만도 적극적인 그의 지도력으로 터져나오지않고있다. 러시아적
미감이 시장경제체제에서 어떻게 살아남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이다.

러시아 문화예술의 변화는 엄청나다. 사회주의체제아래 국가이데올로기가
중심이되어 풍요를 구가했던 문화예술계는 페레스트로이카이후 10년이 지난
현재에도 시장경제체제에서 살아남기위해 안간힘을 쓰고있다. 정부가 각
예술단체의 독립체산제를 지향하면서 보조금지원을 중단하자 예술인들은
빵을 구하기위해 힘든 삶을 살고있다. 볼쇼이극장등 러시아관료체제에
찌든 단체는 재정난에 허덕이고 키로프오페라단이 속한 밀린스키극장에는
연일 인파로 들끓고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체질을 개선한 예술단체는
뿌리를 내리고있는 반면 시대에 적응하지못하는 단체들은 사라지고있다.

러시아의 문인들은 서방세계의 지원금으로 연명하고 악단들은 외국으로
돈벌러 간다. 한국에 공연된 러시아공연단의 수도 88년 7건에서 92년
36건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외국으로 이주하는 예술인들도
급증하고있다.

이러한 현실은 미술계에도 마찬가지. 상테르스부르그시의 푸쉬킨미술관은
미술품 수장가들이 기증하는 박물관을 만들어 성공하고있다. 이전체제에서
범죄인으로 취급받기때문에 내세우길 꺼렸던 미술품소장가들을 설득,
문화영웅으로 대접받는 측면에서 이미술관에 소장품을 내놓게 해 인기를
끌고있다. 시의회는 이를 위해 건물까지 내주었다. 이미술관이 일종의
화랑구실을 하도록 한다는 뜻이다. 그반면에 국가지원체제에서 운영이 잘
되던 미술관과 박물관은 문을 닫고 이와중에 문화재가 밀반출돼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보수나 복원작업을 진행하고있던 박물관은 작업이 중단된
채 내팽겨치고있다.

러시아국립박물관도 재원마련을 위해 순회기획전시를 통한 특별기금을
모집하는가하면 박물관숍등을 운영하기시작했다. 지난해 11월 모스크바의
관광명소로 이름을 날렸던 레닌박물관도 문을 닫았다. 1936년이래 레닌의
생애와 러시아혁명에 관한 자료를 모은 곳으로 유명한 이박물관이 폐관하자
이와동시에 러시아 전역에 걸쳐 있던 레닌박물관이 모두 사라졌다. 이제
지구촌의 레닌박물관은 레닌이 한때 거주했던 핀랜드의 템페레지방에만
남게됐다. 유네스코가 러시아문화재를 지키기위해 특별보조를 전세계에
외치기까지하는 실정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진통과 혼란을 겪고있다. 91년 옐친의 승리이후 문화부
에 입성한 예술가나 관료들은 그들이 줄곧 반대한 정책을 펴가는데 애를
먹고있다. 재원이 없고 새지침이 없는 상태에서 예술가들과 갈등만 겪고
있다.

문화교육지원과 연구작업도 끊어졌다. 이전에는 정부주도로 이끌어갔지만
지원을 하지못하는 정부로서는 정책목표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내세울수도
없고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옹호할수도없다. 포스트모더니즘도 민족주의도
더욱 아니다.

제정시대와 공산체제를 거치면서 문화예술에 관한한 국가가 보호하는
상태에서 아낌없는 투자가 가능,찬란한 예술국가지위를 구가했던 했던
러시아가 그네들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문화예술의 홀로서기작업시험을
해가고 있는 것이다.

<오춘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