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초에 100경 번 연산(엑사플롭스)이 가능한 슈퍼컴퓨터 7호기 개발에 나선다. 연구용이 아니라 산업계 활용을 목표로 두고 개발한다. 챗GPT 등 초거대 인공지능(AI) 개발과 미래 산업에 두루 필요한 슈퍼컴 성능이 외국보다 한참 뒤처졌다는 인식에서 나온 대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3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3차 국가 초고성능컴퓨팅(HPC) 육성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HPC는 슈퍼컴과 미래 양자컴퓨터를 말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HPC가 글로벌 기술패권 시대 인프라를 넘어 전략자산으로 가치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용 아닌 '산업용 슈퍼컴' 개발 나선다
2025년부터 엑사급 슈퍼컴 7호기 개발에 들어간다. 개발 중인 600페타플롭스(PF·초당 1000조 번 연산)급 슈퍼컴 6호기의 후속 개발계획이다. 1750억 개 매개변수와 570기가바이트(GB) 데이터를 가진 AI 모델 GPT-3를 한번 학습시키는 데 그래픽처리장치(GPU)로는 355년이 걸린다. 엑사급 슈퍼컴이 있으면 사흘 만에 해결할 수 있다.

슈퍼컴도 사람과 같이 노화하고 은퇴 시기가 있다. 각국의 슈퍼컴 개발 경쟁이 심화해 은퇴 주기는 더 짧아졌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운영 중인 슈퍼컴 5호기 누리온의 성능은 2019년 세계랭킹 14위에 올랐지만 이달엔 49위로 주저앉았다. 또 2019년 1월부터 작년 말까지 월평균 가동률이 99.4%로 포화상태에 달했다. 누리온은 그간 메모리 반도체 신소재인 산화하프늄 개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분석 자동화 도구 개발, 공군 작전 시 위험 기상 실시간 분석·예측 등 여러 분야에서 성과를 냈다.

지난 21일 발표된 세계 슈퍼컴 순위 톱500에 따르면 이달 기준 1위 슈퍼컴은 미국 프런티어(1194PF)다. 이미 엑사급 성능을 내고 있다. 한국이 보유한 최고 슈퍼컴인 삼성전자의 SSC-21 성능(25.18PF)은 프런티어의 50분의 1 수준이다. 순위는 20위로 지난해 말(18위)보다 두 계단 내려갔다. KT의 DGX슈퍼팟(10.38PF)이 58위로 새로 100위권에 진입했다.

슈퍼컴 6·7호기는 시제품 등 제작을 완전히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는 M&S(모델링&시뮬레이션) 서비스를 제조 분야 기업들에 제공해 원가 절감을 도울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과기정통부는 유체유동해석, 구조해석 등에 필요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SW)를 새로 보급하기로 했다. 계산과학(수학) 기반 정보처리, 컨설팅, 모델링 등의 역량을 갖춘 3년 이내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이른바 ‘HPC-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사업도 새로 시작한다. 우주, 자율주행, 핵융합 등 신산업별 특성을 고려해 수요 기업 맞춤형으로 컴퓨터 자원을 세분화해 지원할 방침이다.

슈퍼컴 이용 급증 추세에 맞춰 연계 인프라 확충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대형 연구장비 데이터와 산업계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저장·관리할 수 있는 20PB(페타바이트)급 스토리지를 새로 만들고 매년 10PB씩 확대할 예정이다. KISTI에 따르면 슈퍼컴이 중심에 있는 국가과학기술연구망(KREONET)의 데이터 전송량은 2021년 146PB에서 올해 712PB로 2년 만에 다섯 배 가까이로 늘었다. 2025년엔 1335PB에 달할 전망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