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관이 흉부 X선 촬영 사진을 인공지능(AI) 솔루션으로 분석해 군 장병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 솔루션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AI 융합 군장병 의료영상 판독시스템 구축사업’에 참여한 코스닥시장 상장사 루닛이 개발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제공
군의관이 흉부 X선 촬영 사진을 인공지능(AI) 솔루션으로 분석해 군 장병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 솔루션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AI 융합 군장병 의료영상 판독시스템 구축사업’에 참여한 코스닥시장 상장사 루닛이 개발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제공
‘열나면 타이레놀, 기침이나 코막힘도 타이레놀, 배 아파도 타이레놀….’

군필자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변변한 약이 없고 장비도 적은 열악한 군 의료 실태를 상징하는 말이다. 하지만 요새 군대는 많이 달라졌다. 인공지능(AI) 기반 진단 장비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국방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군 의료 첨단화에 앞장서고 있다. 과기정통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은 22일 “장병들 사이에서 많이 발생하는 여섯 개 질환(폐렴 결핵 기흉 골절 등) 진단용 AI 솔루션 군 보급 사업 1단계를 마치고 2단계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NIPA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390억원을 들여 ‘AI 융합 군장병 의료영상 판독시스템’ 구축 사업을 하고 있다.

1단계 사업으로 NIPA는 군병원과 사단 의무대 등 전국 부대 36곳에 AI 솔루션을 설치했다. 뷰노와 루닛, 딥노이드가 1단계 사업에 참여했다. 세 개 회사 모두 코스닥시장 상장사다. 이들 솔루션을 도입한 부대 진료의 민감도(병이 있는데 있다고 진단할 확률)는 83.5%로 이전(69.9%)보다 20%가량 높아졌다. 군부대 내에서 근무하는 군의관은 전문의가 아니라 민감도가 떨어질 수 있는데 이를 보완한 것이다.

X선, 컴퓨터단층촬영(CT) 후 판독에 걸리는 시간도 기존 2~3일에서 3분으로 확 줄었다. 영상 정보를 민간 병원에 보내 결과지를 받는 대기 시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솔루션이 내놓은 결과는 군의관 또는 자격을 갖춘 부사관과 군무원이 확인한다.

장병들은 NIPA가 공급한 AI 솔루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연평부대 A장병은 칼로 찌르는 듯한 흉통과 호흡곤란으로 의무대를 방문했다. 흉통과 호흡곤란은 원인이 다양해 질환을 특정하기 어렵다. 북한을 코앞에 둔 외딴섬 연평도에는 질환을 명확히 진단할 수 있는 전문 의료 인력이 부족했다. 이때 AI 솔루션이 전문의 역할을 대신했다. A장병의 흉부 X선 사진을 보고 기흉으로 판독했다. A장병은 육지 상급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강원 화천 7사단 B장병은 심한 가래, 호흡곤란 등을 호소해 흉부 X선을 찍었다. AI 솔루션은 오른쪽 폐 상단에 활동성 결핵이 생긴 것을 찾아냈다. B장병은 즉시 격리에 들어갔다.

이런 성과를 토대로 NIPA는 작년부터 2단계 사업을 벌이고 있다. 거점 군병원 15곳(수도·서울·구리·고양·양주·포천·춘천·홍천·강릉·대전·대구·포항·함평 국군병원, 항공우주의료원, 해양의료원)과 육·해·공군 사단의무대 73곳 등 총 88곳에 AI 솔루션을 확대 보급하기로 했다. 2단계 사업엔 기존 기업 세 곳 외에 JLK, 바스젠바이오가 새로 참여했다. 진단 가능 질환도 뇌출혈·뇌경색, 발 주변 골절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국방부와 NIPA는 상대적으로 장병들의 의료복지가 열악한 최전방 감시초소(GP), 일반전초(GOP) 부대 등에서 활용 가능한 휴대용 X선 촬영장비를 보급하고 있다.

강원 철원 3사단, 인제 12사단, 고성 22사단, 삼척 22여단, 양양·고성 102기갑여단 등 다섯 개 부대에 휴대용 X선 장비를 시범 보급할 계획이다. 구축함 등 해군 함정, 파병부대 등에도 공급할 방침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해 국방부와 국군의무사령부, 합동참모본부 등이 이를 지원하고 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