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엘니뇨'에 폭염 예고…스마트그리드 전력망이 필요한 이유
올해 여름 ‘슈퍼엘니뇨’로 인한 역대급 폭염이 예고된다. 아직 5월이지만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벌써 찾아왔다. 전기료까지 인상되면서 자연스럽게 ‘냉방비 폭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폭염이 있을 때마다 찾아오는 대규모 정전 사태도 대비해야 할 문제 중 하나다.

스마트그리드는 이런 전기료와 정전 사태를 막아줄 수 있는 기술 중 하나다. 그리드(grid)는 사전적으로는 바둑판의 눈금과 같은 ‘격자’를 뜻한다. 전력 체계에서는 전기를 공급하는 전력망을 말한다. 말 그대로 기존 전력망보다 똑똑한 전력망이다.

현재의 전력망은 100년 전에 고안된 시스템이다. 발전→배전·송전→사용의 3단계 과정을 거친다. 화력 및 원자력 같은 대형 발전소를 중심으로 대량생산 위주의 중앙화된 구조다. 사용자와 생산자가 소통이 없는 일방적인 형태다.

반면 스마트그리드의 특징은 쌍방향이다. 기존 전력망에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의 테크를 접목해 실시간으로 생산과 소비를 측정하고 서로의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폭염으로 인해 전기 생산량이 부족하면 예비전력이 통신을 통해 즉시 가동된다. 사용자는 전기 사용이 집중되는 피크 시간을 피하고 이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전기를 더 생산하는 것이 아닌 이렇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엄청나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주니퍼리서치에 따르면 스마트그리드 구축만으로도 축구 경기 4200만 회 이상을 개최하는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현재 탄소중립 분위기 속에서 화력발전은 점차 줄어들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에너지원이 사용될 수밖에 없다. 지역 곳곳에 신재생에너지 발전 장비가 들어서고 이런 분산 전원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전력망을 통해 효율적으로 관리해야만 한다. 대규모 화력발전에 맞춰져 있는 기존의 그리드로는 전력 예측이 어렵고 분배도 쉽지 않다.

전기 생산과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데이터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에는 대형 화력발전 외에도 신재생에너지, ESS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차 등도 전기를 제공할 수 있는 잠재적 발전소다. 이런 다양한 전원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인 가상발전소(VPP) 구축이 시급하다. 여기에는 전력 현황을 실시간으로 받기 위해 통신 기술의 적용이 필요하고 취합된 빅데이터를 관리하고 인공지능도 접목돼야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미래의 그리드에서는 소비자도 전기 생산자가 될 수 있다. 이미 제로에너지 빌딩(ZEB)이 국내에 의무화되면서 대형 건물에는 자가발전 설비가 들어서야 한다. 각 가정이나 공장에서 현재 태양광과 같은 자가발전설비를 구축한 곳도 있다. 이들은 전기를 사용하면서 되파는 ‘프로슈머’가 될 수 있다.

기업들도 앞다퉈 서비스를 개척하고 있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이 설립한 사이드워크 인프라스트럭처 파트너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내 가상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 10억달러를 투자했다. 현대차는 V2G(Vehicle-to-Grid)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V2G는 전기차 잉여 전력을 그리드에 공급하는 기술이다.

관련 스타트업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그리드위즈는 국내 최초로 전기차를 활용한 전기 판매 그리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에너지 스타트업인 엔라이튼은 전국 곳곳의 태양광발전소 및 전기차 충전기 등 다양한 에너지원을 모아 전력 거래에 활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 스마트그리드 시장 규모는 2021년 360억달러(약 48조원)에서 2030년 약 1600억달러(214조원)로 연평균 18.2%씩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태호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