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보다 '찐친'?…데이팅 앱 스타트업의 新 생존법
무게감이 작아보여도, 데이팅 앱은 국내 스타트업 업계의 역사적 빅딜을 이뤄낸 분야입니다. 2021년 영상 메신저 앱 ‘아자르’ 운영사 하이퍼커넥트를 미국 매치그룹이 17억3000만달러(2조3117억원)에 인수한 사건은 시장의 시선을 반전시켰습니다. 그로부터 2년, 데이팅 앱의 성장 방식은 빠르게 변했습니다. ‘데이팅’ 키워드를 넘어, 아자르처럼 ‘소셜 디스커버리앱’이란 정체성을 내세우는 업체들은 사용자의 경계심을 허무는 데 초점을 맞춰 서비스를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려는 데이팅 앱의 경영전략 변화상을 톺아봅니다.
데이팅 앱은 ‘가벼운 만남’이란 인식이 짙다. 코로나19 이전엔 특히 심했다. 시장조사기관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성인남녀 1000명 중 77.8%가 ‘불건전한 목적으로 소개팅 앱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고 답했다. ‘소개팅 앱으로 만나는 상대는 신뢰가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응답도 63.1%에 달했다. 외연 확장의 발목을 잡는 요소다.

이용자 수성도 쉽지 않다. 팬데믹으로 2030세대의 만남 창구가 줄면서, 데이팅 앱은 뜻하지 않은 호재를 맞는 듯 보였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새로운 전략이 필요해졌다. 최근 데이팅 앱 서비스가 ‘친구 찾기’와 ‘안전성 강화’ 두 기능을 필두로, ‘소셜 디스커버리앱’을 표방하는 이유다. 공통적인 목표는 저변을 넓히기 위한 인식의 전환이다. 다만 서구권 만큼의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을 지는 기업가치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매칭 앱의 패러독스…기피되는 ‘연인 마케팅’

최근 데이팅 앱 ‘위피’ 운영사인 스타트업 엔라이즈는 자사 플랫폼 유저 7만 4589명을 상대로 앱의 사용 이유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한경 긱스(Geeks)가 입수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용 목적을 ‘연인 말고 부담 없이 친해질 친구를 찾는다’라고 답한 남성은 69.8%, 여성은 82.9%에 달했다.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인연을 찾는다’를 목적으로 내세운 남성은 29.6%, 여성은 13.4%을 기록했고, ‘나와 같은 성별의 친구를 찾는다’는 응답은 각각 0.5%, 3.7%에 불과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앱 사용자 특성상 진지한 만남을 바라는 사용자는 적을 수 있지만 특히 여성 이용자의 응답 비율은 눈여겨볼만 하다는 분석이다. 앞서 노르웨이과학기술대(NUST)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성이 데이팅 앱을 이용하는 목적은 단기적 관계를 맺을 파트너를 물색하는 용도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성은 일관된 특성이 보이지 않았다. 업체 통계와 함께 비춰보면 약 83%에 이르는 여성이 관계를 계속 이어갈 이성 친구를 찾으려 앱에 접속한 셈이다. 연인 관계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여성은 다른 조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인구보건복지협회 설문에 따르면, 만 19~34세 비혼 청년 1047명 중 70.4%가 자발적으로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비중은 남성이 61.4%, 여성이 82.5%였다. 여성의 62.3%는 비연애 생활을 만족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제공
인구보건복지협회 제공
최근 동향에 따라, 업체들은 ‘연인을 만날 수 있다’는 식의 직설적 마케팅과 서비스를 피하는 추세다. 남성 비율이 월등히 높은 특성상, 여성 이용자 확보는 앱의 주요 경쟁력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위피는 지역 기반 커뮤니티 기능인 ‘동네에서 놀 사람’을 꺼내들었다. 주최자가 저녁을 먹는 등 동네 모임을 만들면 인근 사용자들이 약속에 참여하는 구조다. 누적 이용자는 지난달 18만 명을 돌파했다. 친구들에게 이미지 투표를 받아볼 수 있는 ‘페이스 배틀’ 기능도 나왔다. 경쟁사인 틴더는 사용자 프로필에 ‘관계 목표’ 설정을 적용하기도 했다. ‘진지한 연애’ ‘캐주얼하게 만날 친구’ ‘새로운 동네 친구’ 등을 프로필에 추가할 수 있다. 신규 기능은 공통적으로 ‘라이트 유저’를 타깃하는 특성을 보인다.

잠재 이용자 포섭…'소셜 디스커버리' 포지셔닝

별도 서비스를 만들어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곳도 있다. 데이팅 앱 ‘글램’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큐피스트는 ‘누구나 딱 맞는 친구 하나쯤은 필요하다’는 표어를 내걸고 ‘엔프피(ENFPY)’ 앱을 지난해 말 론칭했다. 앱 내에서 성격유형검사인 ‘MBTI’를 진행하고 자신과 맞는 친구들을 찾아주는 서비스다. 안재원 큐피스트 대표는 “글램이 연애를 심층 지향한다면, 엔프피는 친구부터 시작한다는 형태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엔프피는 사용자 1만 명에 도달할 전망이다.
엔프피의 마케팅 문구는 '친구'에 방점을 찍고 있다. 큐피스트 제공
엔프피의 마케팅 문구는 '친구'에 방점을 찍고 있다. 큐피스트 제공
데이팅 앱이 연인보다 친구를 내세우며, 마케팅 용어도 달라졌다. 업체들이 서비스를 설명할 때 ‘데이팅 앱’이란 표현을 피하고, ‘소셜 디스커버리(Social Discovery)’라는 표현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성을 만난다는 앱의 본질이 변할 수는 없으니 접근 방식이라도 바꾼 셈이다. 최근까지 데이팅 앱 스타트업에서 일했던 한 마케팅 담당자는 “데이팅 앱의 부정적 편견을 지우기 위해 내부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연애’를 강조했을 때 확보할 수 있는 가입자는 한계가 있고, 추가 투자유치도 원활하지 않아 용어 사용에 변화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남친보다 '찐친'?…데이팅 앱 스타트업의 新 생존법
소셜 디스커버리는 SNS에서 인맥을 찾는다는 뜻으로, 해외에서는 광범위한 앱 서비스들이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데이팅 앱들이 먼저 찾아썼다. 실제로 2021년 매각된 영상 메신저 앱 아자르 역시 소셜 디스커버리 앱이란 특성을 강조했다. 아자르를 인수한 미국 매치그룹은 데이팅 앱 틴더의 운영사이기도 하다. M&A를 통해 브랜드를 늘리며 성장한 매치그룹 입장에서, 연애보다 ‘관심사로 친구를 만난다’는 아자르의 표어는 보유하지 못한 매력으로 작용했다.

모바일 영상 기술력과 아시아 지역의 이용자 수도 큰 장점이었지만, 아자르 운영사 하이퍼커넥트는 여전히 ‘하쿠나 라이브’ ‘슬라이드 싱글타운’ 등 자사 다른 서비스에도 소셜 디스커버리를 데이팅 앱의 상위 개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동향은 틴더를 비롯해 위피, 캠톡 등 다른 주요 업체들에서도 나타난다. 단순한 마케팅 수사를 넘어 자사 서비스 방향의 초점이 일반 데이팅 앱보다 넓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분석이다.

여성 이용자 경계심, 기업가치 하락과 직결

최근 업체들의 위기감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디지털 광고기업 인크로스의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방역지침이 상대적으로 완화된 지난해 4월부터, 매출액 상위 10개 데이팅 앱의 월간 이용자 수(중복 포함)은 100만 명 이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만남 창구가 줄어 사용자 수가 1.5배 늘었다가 되려 하회한 것이다. 때마침 얼어붙은 스타트업 업계 투자 때문에, 일부 업체는 지난해 말 구조조정을 진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과금이 쉬운 수익 모델을 지니고 있으나, 경쟁이 치열하고 타 업종 대비 객단가가 싸다는 단점도 있다.
한국은 데이팅 앱 소비자 지출이 감소하는 국가로 꼽힌다. 데이터에이아이 제공
한국은 데이팅 앱 소비자 지출이 감소하는 국가로 꼽힌다. 데이터에이아이 제공
결국 관건은 사용자 층을 더 넓게 포섭할 수 있는지 여부에 모인다. 데이팅 앱들이 안전성을 강조하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인크로스의 데이팅 앱 이용 추이 분석결과에 따르면, 국내 주요 데이팅앱의 여성 비율은 20.3%에 불과했다. 각종 범죄와 사건사고에 ‘데이팅 앱을 통한 만남’이 언급될 때마다, 여성 이용자들은 상대적으로 큰 불안감을 느낀다. 업체 입장에선 이들의 감소치는 앱 전체 이용자 수가 줄어드는 것과 같다.

인공지능(AI) 기술은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주로 이용자가 등록한 프로필과 실제 이용자의 얼굴이 같은지 AI가 살피는 형태다. 타인의 사진을 도용해 앱을 쓰는 허위 유저를 적발해 안전성을 더하겠다는 것이다. 5070세대 시니어 대상 데이팅 앱인 시놀은 가입 단계부터 일치 여부를 따지고, 정오의데이트 앱처럼 불법 촬영물을 대상으로 이미지 포렌식 기능을 추가해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구축한 점을 강조하는 곳도 있다.
출처=IBISWorld, KOTRA 뉴욕무역관
출처=IBISWorld, KOTRA 뉴욕무역관
다만 해외만큼의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가 지난해 미국 성인 6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10명 중 3명은 데이팅 앱 이용 경험을 갖고 있다. 10명 중 1명은 현재의 배우자나 연인을 데이팅 앱에서 만났다고 답했다. 젊은 층이 데이팅 앱을 합리적 선택으로 받아들이도록 전략을 편 것이 주효했다.

매치그룹과 범블 등 데이팅 앱 업체들은 미국 증시 상장업체다. 휘트니 울프 허드 범블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내 상장을 성공시킨 최연소 기업가이기도 하다. 이지혜 엔라이즈 프로덕트 오너는 “결국 여성들이 느낄 수 있는 불안을 이해하고, 콘텐츠 역시 여성 친화적인 프로모션으로 다가가 적정 성비를 유지하는 것이 국내 서비스에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