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선 1호 디지털 치료제(DTx)가 탄생했고, 미국에선 1호 DTx 기업이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DTx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기대와 우려로 엇갈리는 이유입니다. 파이프라인을 무리하게 넓히는 전략보단, 한 분야에서 진단부터 치료, 관리까지 모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돌파구로 보입니다. 국내 DTx 스타트업 가운데 경도인지장애 분야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모코그의 노유헌 공동대표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나봤습니다.
경도인지장애 분야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한 이모코그의 노유헌 대표가 21일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사진=이솔 기자
경도인지장애 분야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한 이모코그의 노유헌 대표가 21일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사진=이솔 기자
"치매 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대 교수를 때려치우고 디지털 치료제(DTx)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든 노유헌 이모코그 대표의 말이다. 중앙대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였던 그는 이준영 서울대 의대 교수, 윤정혜 차의대 교수와 치매 관련 연구과제를 해오다 2021년 이모코그를 공동 설립했다. 이모코그는 경도 인지장애 환자가 치매로 진행되지 않도록 디지털 인지중재 치료기기 '코그테라'를 개발했다.

노 대표는 "치매는 아직 치료 약이 없다"며 "인지중재치료를 통해 지금 상태 그대로 돌아가시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국내 노인 인구의 15%가 혼자서 일상생활은 가능한 수준의 경도인지장애, 10%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인지능력이 소실된 치매 환자로 분류된다.

경도인지장애 노인은 병원 입장에선 돈이 안 되는 환자다. 저학력·저소득 노인일수록 조기 발견이 어려워 치매로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치매 환자 관리비용이 1년에 16조4500억원에 이른다.

그는 "동네 병원에서 손쉽고 빠르게 경도인지장애 환자를 선별 검진할 수 있다면 치매 발병률은 확 낮출 수 있다"며 "주 1회 하던 인지훈련을 핸드폰으로 매일 2회씩 하면서 현재의 일상생활 능력을 최대한 오래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치매 못 고쳐요"…잘 나가던 의대 교수가 창업 뛰어든 이유 [긱스]
Q. 의대 교수직을 그만둔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A. 원래 꿈이 과학자였다. 교수가 된 것도 연구하기 위해서였는데, 막상 교수가 되니, 강의하고 문서 작업하느라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 또 대학에서의 연구는,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할 때가 많았다.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연구를 하기 위해 창업을 결심했다. 이모코그는 직원의 절반 이상이 박사다. 인지장애 디지털 치료제(치료 의료기기)라는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회사이기 때문에 연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Q. 왜 치매 치료제에 집중했나.
A. 의사도, 교수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다. 불면증은 이미 약물 치료제도 있지만, 치매는 아직 치료 약이 없다. 디지털 치료제는 스마트폰에 깔아 놓고 안 쓰는 게 부지기수인데, 코그테라는 사용성 테스트를 해보면 순응도가 90%가 넘는다. 다른 약이 없기 때문에 디지털 치료제를 처방받으면 환자들이 실제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사업성도 크다고 본다.

Q. 직원 채용 시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A. 선한 사람을 뽑는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있는 사람들 말이다. 2021년 말 8명 정도였던 직원 수는 현재 33명이다. 개발자부터 디자이너까지 모두 다른 사람에 대한 '안테나'가 서 있는 사람들이다.

Q. 교수 창업회사는 '스케일업'의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 어느 정도 산업화 가능성이 커지면 사업 전문가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 머크에서 임찬호 사업총괄 대표(CBO)를 영입한 이유다. 이준영 교수님과 저는 좀 더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다.

Q. 최근 미국의 1호 디지털 치료제 회사 페어테라퓨틱스가 파산 신청을 했다.
A. 무리하게 파이프라인을 확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결국 돈과 사람의 문제다. 인지중재치료와 인지행동치료만 보더라도 비슷한 툴이지만, 적용 범위가 다양해 질환에 따라 특수한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도 고민했지만, 경도인지장애 분야에서 선별→진단→치료→관리까지 모든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에코시스템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디지털 치료 시장이 열리지 않을 것 같아서다.

Q. 로완, 하이, 마인즈에이아이 등 경쟁사가 많은데, 이모코그의 강점은 무엇인가.
A. 이모코그가 지난해 158억원 규모 시리즈 A 라운드를 진행하면서 투자를 잘 받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여러 디지털 치료제 회사들이 경도인지장애 영역으로 넓히고 있다. 경도 인지장애 환자는 사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능을 이것저것 넣기보단 빼는 게 일이다. 코그테라 플랫폼을 보면 단순함의 극치다. 성능이 거의 없다. 모든 문항을 음성으로 천천히 말해준다.
경도인지장애 환자를 위한 디지털 치료제 '코그테라'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 / 사진=이솔 기자
경도인지장애 환자를 위한 디지털 치료제 '코그테라'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 / 사진=이솔 기자
Q. 경도인지장애와 치매는 어떻게 다른가.
A. 경도인지장애는 버스에서 내렸는데 어딘지를 모르거나 집 현관 번호를 모르는 게 반복되는 수준으로 인지훈련을 통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치매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인지능력이 소실된 경우다. 노인의 25%가 자주 깜빡깜빡하는 수준의 '인지 저하', 15%가 경도인지장애, 10%가 치매 환자로 분류된다. 치매라고 하면 불구덩이로 들어간다고들 생각하지만, 노인의 절반이 인지장애를 겪는 셈이다. 학회에서도 치매라는 병명을 '인지병'으로 바꾸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치매라고 하면 불구덩이로 들어간다고 생각... 병명을 '인지병'으로 바꾸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Q. 치매는 못 고치나.
A. 치매를 완전히 치료하는 것은 어렵다. 환자의 지금 상태 그대로 돌아가시게 하는 게 목표다. 일상생활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치매를 조기에 선별해 관리하는 게 관건이다.
혈액 분석으로도 치매 진단이 가능하다. 올해 말이면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을 진단할 수 있는 혈액진단 서비스 '코그체크'를 출시한다. 또 경도인지장애 환자를 빠르게 선별 검진할 수 있는 웰니스 기기도 출시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치매 환자 관리비용이 1년에 16조4500억원에 이른다. 고학력 고소득자일수록 조기 검진을 통해 관리가 되고 있지만, 지방에 사는 노인들은 치매 발병률이 높다. 동네 병원이나 치매안심센터, 건강검진센터에서 혈액검사나 디지털 인지검사가 가능하기만 하면, 치매 발병률을 확실히 낮출 수 있다.

Q. 국내 임상 진행 상황은 어떤가.
A. 지난해 9월 경도인지장애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코그테라의 확증 임상 계획을 승인받고, 현재 전국 6개 병원에서 임상 시험 중이다. 연말까지 임상 시험을 완료한 후, 내년 상반기 중 품목허가를 예상하고 있다. 경도인지장애는 신경과와 정신과에서 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다. 서울과 지방간 노인의 특성도 다르다. 그래서 서울, 인천, 강원 지역 대학병원의 신경과 정신과에서 나눠서 진행하고 있다.

Q. 미국 임상 계획은 없나.
A. 독일과 미국에서 이미 코그테라의 위해성 여부를 판정받았지만, 미국에서 임상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진행을 못 하고 있다. 내년 식약처 품목허가 받으면 투자를 유치한 뒤 미국에서 임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Q. 어린이의 인지장애 치료제는 없나.
A. 내년 초 난산증 디지털 치료제를 출시할 예정이다. 수 개념이 없는 아이들이 전체의 10%가 넘는다. 난독증이 있어도, 워낙 많이 연습하기 때문에 글은 다 읽어내지만, 난산증이 있으면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되기 일쑤다. 난산증 어린이들도 공간에 수학적 개념을 대입하는 방식의 치료적 개입을 지속해서 하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

Q. 디지털 치료기기가 '웰니스' 기기와 무엇이 다른가.
A. 웰니스 기기는 임상 시험을 하더라도 그 기준을 정부 당국에서 확인하지 않는다. 반면 식약처에서 허가받은 디지털 치료제는 의료기기로 피험자 모집기준, 처방의 기준이 있다. 따라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 의사의 진료 행위를 돕고, 그 진료가 집에서까지 이어지도록 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의료기기다.

Q. 바이오 기업은 기술특례로 상장하는데, 디지털 치료제는 어떻게 다른가.
A. 바이오 벤처기업은 기술특례 상장을 많이 했지만, 디지털 치료제는 치료 의료기기이기 때문에 특례상장은 쉽지 않다. 매출과 이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기업공개(IPO)까지 가는 디지털 치료제 기업은 많지 않을 수 있다. 의약품은 임상 1~4상을 거치지만, 디지털 치료제는 임상 2, 3상에 해당하는 탐색 임상과 확증 임상만 한다는 점에서 임상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또 위해성이 없기 때문에 품목허가도 의약품보다 쉽다. 하지만, 의약품은 판매가 시작되면 대부분 잘 팔리지만, 디지털 치료제는 품목허가를 받더라도 매출을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진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게 관건이다.

Q. 결국 디지털 치료제가 잘 팔리려면, 제약사와 손잡아야 하는 게 아닌가.
A. 녹십자홀딩스도 주주 가운데 하나다. 제약사도 디지털 치료제가 관심이 있지만, 전자의무기록(EMR) 회사들도 디지털 치료제 검사 도구 데이터를 EMR과 연동하는 데 관심이 있다.

Q. 디지털 치료제 대중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높아 보인다.
A. 먼저 시행한 미국만 보더라도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재처방 비율이 떨어진다. 보험수가 지정이 중요한데, 본인 부담률이 90%나 된다. 하지만 5년 이내에 확실히 달라질 것으로 생각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선 치료사들을 훈련 교육하는 것도 보험수가로 인정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디지털 치료기기를 도구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의료진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의료행위를 확장하기 위한 도구다. 일단 디지털 치료기기 사용이 확산한 후에야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것으로 본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