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부회장이 29일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주총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SK하이닉스 제공
박정호 부회장이 29일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주총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SK하이닉스 제공
반도체 기업의 영업기밀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보조금 신청 여부에 대해 SK하이닉스가 “고심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기업으로선 받아들이기 난감한 조건이지만, SK하이닉스는 현지에 패키징(후공정) 공장 건립을 추진 중이어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는 점도 감안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정호 대표이사 부회장(사진)은 29일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미국 반도체 보조금 신청 계획에 대한 취재진 질의에 “많이 고민해보겠다”고 답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보조금 신청 기업에 수익성 지표뿐 아니라 수율을 포함한 반도체 소재, 판매가 변화 등도 제출하도록 했다. 이들 사항은 기업들이 공시하지 않는 영업기밀에 속한다. 특히 수율은 예민한 사안이다. 낮은 수율이 공개되면 고객사가 떨어져 나가고 수주도 어려워질 여지가 크다.

미 상무부는 이 같이 세세한 내용을 담은 여러 자료를 엑셀 파일 형태로 제출하게 했다. 박 부회장은 “엑셀도 요구하고, 신청서가 너무 힘들다”고 전제한 뒤 “패키징이라 전체 수율이 나오는 건 아니니 (전공정) 공장을 지어야 하는 입장보다는 (부담이) 약간 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과도한 요구에 반도체 업계 일각에서 “투자를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격앙된 반응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박 부회장의 이러한 언급은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한경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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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는 미국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공장 건립을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입장. 단 부지 등 세부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이 패키징 기술에 중요해지고 있는데, HBM을 요구하는 기업들이 (주로) 미국에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미국 정부의 대중(對中) 반도체 첨단 장비 수출통제 조치에 대해 1년 유예 조치를 받은 것과 관련, 유예 기간이 끝나는 올 10월에 또 한 번 신청할 것이라고도 했다.

앞서 박 부회장은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 여파에 대해선 “한 회사가 대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각국 정부와 고객 니즈에 반하지 않으면서 최적의 해법을 찾기 위해 매일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업황은 하반기 개선이 기대되나 불확실성도 여전해 비용 최적화 등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 그는 “하반기 업황 개선 요인은 있지만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크레디트스위스(CS) 인수·합병(M&A) 등 예기치 못한 이벤트로 인해 거시경제의 전체적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도 공존한다”고 부연했다.

이어 “서버 시장에서 고성능·고용량 메모리 채용이 증가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챗봇 등 신규 수요가 확대되면 올해 DDR5가 명실상부한 주력 제품 포트폴리오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