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아웃소싱’. 셀프 스토리지 시장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1인 가구 확산 등 주거 문화 변화에 맞춰 이제 국내에서도 매월 일정 금액을 받고 짐을 창고 공간에 보관해주는 셀프 스토리지 서비스가 잇따라 선보이고 있습니다. 셀프 스토리지는 수집품·취미용품을 보관하는 매니아층의 비밀 보관 장소로도 인기라고 합니다. 국내 시장 규모는 아직 1000억원 규모에 머물고 있지만 성장 가능성은 높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톡톡 튀는 서비스로 초기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을 만나봤습니다.
"안 쓰는 짐 놓을 곳 없는데…" 100조 시장된다는 '이 사업' [긱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집에는 1년에 한 번도 쓰지 않는 물건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이사를 갈 때 엄청나게 많은 짐을 버리게 됩니다. 불필요한 짐 놓는 공간을 아웃소싱하면 내 집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8일 판교에서 열린 카카오벤처스 브라운백 미팅, 카카오벤처스의 포트폴리오 회사들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날 참석한 홍우태 세컨신드롬 대표는 눈을 반짝였다. 세컨신드롬은 이른바 '셀프 스토리지'라고 불리는 공유 창고 서비스 '미니창고 다락'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현재 60여곳인 다락 지점을 올해 안에 100곳까지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셀프 스토리지 시장이 커지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재택 근무의 보편화로 주거 생활에서 '경험'이 중요해진 결과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아이마크그룹에 따르면 세계 셀프 스토리지 시장 규모는 2021년 약 513억달러(약 67조원)에서 2027년 714억달러(약 94조원)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셀프 스토리지 플랫폼을 주력 사업모델로 내세운 스타트업들이 이 시장을 겨냥해 앞다퉈 경쟁하고 있다.
"안 쓰는 짐 놓을 곳 없는데…" 100조 시장된다는 '이 사업' [긱스]

공유창고 시장 진입한 스타트업들

셀프 스토리지는 이용자들이 매월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짐을 창고 공간에 보관할 수 있는 서비스다. 옷이나 신발 같은 패션 잡화부터 책, 가구, 이삿짐 등 맡길 수 있는 품목도 다양하다. 특히 습도나 온도 같은 보관 환경이 중요한 수집품·취미용품을 맡기는 데도 안성맞춤이라는 평가다. 창고 크기나 업체별로 다르지만 통상 월 5만~20만원 수준에서 보관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셀프 스토리지 플랫폼은 세컨신드롬이 운영하는 '미니창고 다락'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 60개 지점이 있다. 누적 창고 계약 건수는 8만 건이 넘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서비스 재이용률은 91.5%에 달한다. 각 창고는 '유닛'이라 불린다. 신발 박스 48개가 들어가는 가장 작은 사이즈의 유닛부터 우체국 5호 박스 72개가 들어가는 대형 유닛까지 총 5종류로 나뉘어 있다. 가장 큰 유닛은 월 23만원을 내야 한다.

영남권에선 알파박스가 셀프 스토리지 사업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점 14곳 중 8곳이 부산, 경남 김해, 양산 등에 위치해 있다. 건물 안에 있는 실내형 지점과 나대지에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실외형 지점으로 나뉜다. 실외형 지점의 가장 큰 창고는 13㎡ 이상의 공간을 확보했다. 5t 탑차 한 대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개인 이용자 말고도 사무실 공간이 부족한 소규모 사업자들이 창고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그밖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16개 지점을 보유한 큐스토리지, 경기권을 주로 타깃으로 한 네모스토리지, 비대면 픽업·배송 서비스를 선보인 아이엠박스 등이 이 산업에서 경쟁하고 있다.
"안 쓰는 짐 놓을 곳 없는데…" 100조 시장된다는 '이 사업' [긱스]

주거 변화·취미생활 증가... VC도 '러브콜'

셀프 스토리지가 트렌드로 떠오른 건 주거 문화가 변화한 영향이다. 우선 1인 가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원룸이나 오피스텔 거주 인구가 증가했고, 이는 '공간' 자체가 부족해지는 현상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국내 1인 가구 인구는 약 716만가구로 전체의 3분의1을 차지한다. 1인당 주거 면적은 33.9㎡로 10평 남짓에 불과하다.

좁아진 주거 공간은 물건의 보관 수요를 끌어올렸다. 미니창고 다락의 경우 2019년 8400여 건이던 신규 계약 건수가 지난해엔 3만 건을 넘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2030세대 소비자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존스랑라살(JLL)은 보고서를 통해 "셀프스토리지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기 쉽지 않거나 주택 내에 필요한 저장공간을 만들기 여의치 않은 경우에 비용 절감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취미·여가 활동 인구가 늘어난 점도 궤를 같이 한다. 레고나 피규어 같은 수집용품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다는 점이 매니아층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값비싼 신발이나 서적처럼 보관 환경이 중요한 물품이나, 부피가 커 보관하기 어렵지만 필요할 때엔 재빨리 쓸 수 있어야 하는 물품들도 맡기기 편리하다. JLL은 "훌륭한 접근성으로 비수기 동안 스키 장비를 셀프 스토리지에 보관할 수 있는 등의 편의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국내에서도 이 산업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각 회사들은 다양한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을 접목해 스마트폰으로 물건의 보관 상태를 확인하거나, 온·습도를 알맞게 조절하고 향균 기능을 제공하는 식이다. 또 24시간 무인으로 운영되는 건 기본이고, CCTV 등으로 보안에도 신경을 썼다.

자연스럽게 이런 플랫폼 회사들엔 투자금도 몰린다. 1위 사업자인 세컨신드롬은 시리즈B 투자 라운드까지 130억원을 유치했다. 카카오벤처스 등 주요 재무적투자자(FI)뿐만 아니라 KT에스테이트로부터 전략적투자(SI)도 유치했다. KT그룹의 부동산 ICT 인프라를 접목해 셀프 스토리지에 들어가는 디지털 기술을 고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큐스토리지 운영사 큐비즈코리아도 NHN으로부터 4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안 쓰는 짐 놓을 곳 없는데…" 100조 시장된다는 '이 사업' [긱스]

미국 시장은 이미 40조원... 한국도 연평균 7.5% 성장

셀프 스토리지는 국내에선 걸음마 단계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커진 시장이다. 아시아 최대 셀프 스토리지 회사인 싱가포르의 엑스트라스페이스 아시아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 일본 등에 진출해 있다. 2007년 문을 연 이 회사는 국내에도 7개 지점을 보유 중이다. 이미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반열에 올랐다. 2003년 설립된 스토어허브 역시 싱가포르 기반 회사다. 전 세계 4만7000여 개의 유닛을 갖고 있다.

미국은 셀프 스토리지의 본거지로 불린다. 땅이 넓은 데다가 도시화가 빨리 시작된 영향이다. 업계에서는 미국 시장 규모만 4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미국 회사 퍼블릭스토리지는 시가총액이 500억달러(약 64조원)에 달한다. 미국에서만 3000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큐브스마트나 라이프스토리지 같은 회사들도 상장 기업가치가 10조원이 넘는다.

1인 가구 비중이 큰 이웃 나라 일본도 국내보다 큰 시장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일본의 셀프 스토리지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820억엔(약 8000억원)으로 나타났다. 큐라즈, 헬로스토리지, 미니쿠라 등이 주요 업체다. 이 중 헬로스토리지는 일본 전역에 9만8000여 개 유닛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시장 규모는 1000억원 미만으로 추정된다. 주거 문화 변화에 맞춰 관련 시장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JLL은 앞서 보고서에서 "셀프 스토리지는 단순히 창고 역할만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 및 업무 공간의 확장 수요도 충족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조사기관 모도인텔리전스는 한국 셀프 스토리지 시장의 크기가 올해부터 2028년까지 연 평균 7.5%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