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시절처럼 '아나바다' 바람 불어
강남 대신 스타트업 입주 공간으로 이동
식비도 지원하는 네이버·삼성 사무실
아산나눔재단, 입주사에 40여종 혜택
#1. 지난해 말 직원의 절반 이상을 구조조정한 A 플랫폼 스타트업은 건강 음료가 꽉 차 있던 냉장고를 텅텅 비웠다. 다양한 칼로리 바와 과자도 사라졌다. 월 100만원 정도 들었던 탕비실의 간식비를 줄였다.
#2. B 플랫폼 기업은 직원에게 무제한 제공하던 스마트 기기와 이용료를 대폭 줄였다. 노트북 사양도 한 단계 낮췄다. 주차 이용은 무제한에서 쿠폰제로 바꿨고, 점심과 저녁 다 제공하던 식대는 점심에만 주고 있다.
그래픽=허라미 기자 벤처투자 혹한기가 해를 넘어 이어지면서 스타트업들이 허리띠를 본격적으로 졸라매고 있다. 지난해엔 정리해고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면 올해는 임차료부터 서버 사용료, 식비·간식비까지 줄이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스타트업이 밀집해 있던 서울 강남 지역의 테헤란로엔 사무실 품귀 현상이 일었지만 지금은 딴판이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창업 기업 입주 공간으로 들어가거나 공유오피스로 옮기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일었던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운동이 스타트업 업계에 불고 있다”며 “간식비, 소모품 비용이라도 아끼면 한 사람 월급을 줄 수 있으니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기 높아진 스타트업 입주 공간
8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아산나눔재단은 최근 얼어붙은 벤처투자시장 상황을 고려해 올해부터 입주 공간 마루360·180의 임대 기간을 최대 1년에서 1년6개월로 늘리기로 했다. 임차료와 사무실 운영비 부담을 호소하는 스타트업이 많아져서다.
온·오프라인 동영상 교육 플랫폼인 탈잉은 지난해 11월 삼성동의 비싼 사무실을 정리하고 성수동에 있는 서울창업허브로 이전했다. 당시 서울창업허브 입주사 3곳을 모집하는 데 99개사가 몰려 33 대 1의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12일 여의도에 이어 마포에 ‘제2서울핀테크랩’을 개관했다. 설립 3년 이내 스타트업 25곳이 최대 3년간 낮은 임차료로 사무공간을 확보하게 됐다.
입주 공간을 찾는 이유는 임차료 때문만이 아니다. 식사비와 간식비부터 건강검진 비용 할인, 클라우드 제공 등 입주사 혜택이 많다. 네이버 D2SF에 입주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아침엔 무료로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고 점심값도 5000원씩 지원한다”며 “직원 복지 비용만 계산해도 아끼는 돈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C랩은 출퇴근 교통편도 제공한다. 디캠프는 입주사에 자란다 키즈존 및 산돌폰트 이용권을 주고 있다.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는 입주 스타트업에 2년간 최대 20만달러(약 2억5200만원) 상당의 구글 클라우드 크레디트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엔 스타트업 전용 크리에이터 스튜디오도 마련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입주사에 MS 클라우드(애저) 사용권 제공, 각종 기술 지원 등의 런처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아산나눔재단은 건강검진 할인 등 40여 종의 혜택을 주고 있으며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1억7000만원에 이른다.
정규직 대신 계약직 채용을 늘리는 스타트업이 증가하면서 공유오피스업체 스파크플러스는 고정석을 줄이고 사무공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을 선보여 호응을 얻기도 했다.
“BEP 맞춰라”…사업 전략 확 바꾸기도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사업 전략을 수정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손익분기점(BEP)을 돌파하지 못하면 투자 유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는 “고정비용을 최소화하고 신규 투자와 인건비를 절감하면서 런웨이(보유 현금을 월 사용 현금으로 나눈 값)를 극대화해 혹한기를 버텨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패션 플랫폼 브랜디는 그동안 신규 고객 유입을 위해 적극 발행해온 이벤트 쿠폰 지급을 대폭 축소했다. 소비자가 구매할 때 쓰는 적립 포인트 최대 사용률을 낮추고, 적립률도 하향 조정했다. 물류 원가를 낮추기 위해 직매입 상품 비중을 높였다. 매년 공격적으로 진행해온 신사업 확장도 멈췄다. 2021년 연간 적자 595억원을 낸 브랜디는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월 단위 흑자를 기록했다.
중국 전문 크리에이터 스타트업 아도바는 크리에이터 매니지먼트 사업 확장을 멈추고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sS)인 ‘아도바로’를 돌파구로 삼고 있다. 자동화 솔루션을 통해 크리에이터 관리에 투입되는 인건비를 줄이고 장기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회사 관계자는 “아도바로 출시 후 3개월 만에 크리에이터 약 250개 팀이 몰렸지만 아도바의 별도 인력 투입 없이 채널 개설, 수익화 인증을 마쳤다”고 설명했다.
기업 전문가 매칭 플랫폼 탤런트뱅크는 올해 정부 지원사업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 진행하는 회생 기업 지원 사업을 시작으로, 올해 500개 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전문가를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반려동물 헬스케어 기업 핏펫은 영업 손실을 줄이기 위해 경쟁이 치열해진 동물 등록제 서비스를 정리하기로 했다. 고급 자체브랜드(PB) 상품을 연내 출시해 마진율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는 또 서버 사용료를 낮추기 위해 불필요하게 사용하는 서버 용량을 줄이고 개발 기간도 단축했다. 내부 개발자가 직접 해온 품질 테스트도 SaaS인 테라폼을 이용해 비용을 줄일 예정이다.
낮아진 개발자 몸값
투자 혹한기에 개발자 몸값도 덩달아 낮아졌다. 운영 자금이 바닥난 스타트업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반면 여력이 있는 스타트업은 글로벌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메타, 아마존, 트위터 등 빅테크마저 대규모 정리해고를 하면서 ‘한국행’을 택한 한국 개발자가 늘어나고 있다.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는 최근 메타에서 일한 개발자를 채용했다. 3차원(3D) 모델링 스타트업 엔닷라이트, 소통 플랫폼 클라썸도 미국에서 인재를 영입했다. 미국 법인 설립을 준비하는 차량용 전자장비 및 인포테인먼트 기업 드림에이스도 실리콘밸리에서 경험을 쌓은 인재를 물색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출신 개발자 영입에 성공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지금 같은 투자 혹한기가 좋은 개발자를 확보할 기회”라며 “연봉 4억원을 받던 개발자에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없이 연봉 1억원을 제시했는데 수락했다”고 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 관계자는 “예전엔 개발자를 채용하려면 ‘연봉이 얼마냐’란 질문부터 나왔지만, 지금은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느냐’는 답이 돌아온다”며 “망하는 스타트업이 늘면서 개발자 몸값이 확 낮아진 덕분”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필터 하나로 미세먼지와 유해가스를 동시에 제거하는 ‘공기정화 필터’를 개발했다. 물로만 씻어도 되며 최대 20년 동안 쓸 수 있다.삼성전자 SAIT(옛 종합기술원)는 이 같은 내용의 공기정화 필터 신기술 연구 결과가 우수성을 인정받아 최근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실렸다고 16일 발표했다. 삼성전자 SAIT 연구진은 “세계 최초로 아산화동(CuO), 이산화타이타늄(TiO) 등처럼 빛을 이용하는 광촉매를 적용해 신개념 필터와 관련한 기술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미세먼지와 유해가스 필터의 이중 구조를 단일화한 게 이 기술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기존에는 공기정화 시스템을 구성할 때 미세먼지와 유해가스 제거를 위한 필터가 각각 필요해 공기정화 설비의 공간 효율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아산화동과 이산화타이타늄은 방수 특성을 가진 소재여서 물로 씻어도 성능이 유지된다. 권장 사용기간은 10년이지만 2년에 한 번 물 세척을 하면 최대 20년간 사용이 가능하다. 기존 헤파필터는 재사용이 어려워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 필터를 교체하는 걸 고려하면, 수명이 길게는 기존 제품보다 40배 늘어난 것이다.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구글의 가장 성공적인 제품들이 모두 시장에 가장 먼저 출시됐던 것은 아니었습니다."인공지능(AI) 챗봇 경쟁에서 뒤늦은 대응으로 비난을 받았던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가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오답을 내놓으며 체면을 구긴 바드에 대해서는 전직원들의 피드백을 받아 수정, 보완하기로 했다. 15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피차이 CEO가 전직원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통해 "첫 출시가 아니었다고 해서 성공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며 "사용자들의 중요한 요구사항을 해결하고 심도 깊은 기술적 통찰력을 기반으로 구축됐기 때문에 시장에서 추진력을 얻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초 제품이 아니었음에도 세계 최고로 성장한 구글의 제품은 많다. 1996년 검색시장에 구글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야후, 네스케이프 등 다른 검색엔진들이 있었지만 구글이 시장을 장악했다. 모바일 OS도 블랙베리 등이 인기를 얻고 있던 때 시장에 나왔던 안드로이드는 이후 애플의 iOS와 더불어 양대 산맥으로 성장했다. 구글이 내놓은 AI 챗봇 바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 직원의 동참을 요청했다. 피차이는 전 직원들에게 "2~4시간 가량 사용해달라"며 "모든 구글 직원들이 바드를 함께 만드는 데 기여해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것은 현장의 모든 직원들에게 긴 여정이 될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일은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책임감 있게 개발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피차이 CEO는 "수많은 겨울과 봄을 거친 AI가 다시 꽃을 피우고 있다"며 "도전을 받아들이고 계속 반복해야 할 때"라고 이메일에 썼다. 그는 "순간의 에너지와 흥분을 제품에 전달해달라"며 "음유시인(바드)를 시험하고 제품을 개선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생성형 AI가 학습을 통해 훈련을 받는 시스템인 만큼 구글의 직원들이 함께 사용하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자는 전략이다. 구글의 검색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프라바카르 라그하반 부사장은 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바드는 예시를 통해서 가장 잘 학습한다"며 "다시 작성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면 제품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썼다. 그는 "올바른 작업을 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보완 작업에 참여하면 모델의 훈련을 가속화하고 부하 용량을 테스트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실리콘밸리=서기열 특파원 philos@hankyung.com
챗GPT의 개발사인 오픈AI의 공동 설립자인 일론 머스크가 최근 챗GPT 열풍에 대해 규제 받지 않는 AI 기술이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머스크는 15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정부정상회의에 온라인으로 등장해 챗GPT 개발을 언급한 뒤 "문명의 미래에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는 AI"라고 참석자들에게 말했다. 그는 "AI가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부정적이며 유망하면서도 능력이 뛰어나지만 큰 위험이 따른다"고 지적했다.머스크는는 "AI가 한동안 발전했지만 그동안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용자 환경을 제공하지는 못했다"면서 "챗GPT는 AI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챗GPT는 일반인들도 쉽게 대화하는 방식으로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글을 쓰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등의 작업을 수행한다. 오픈AI가 개발한 GPT-3이라는 대규모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AI 기반 챗봇이다. 챗GPT로 인해 AI가 대중들에게 확산됐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챗GPT의 순기능을 인정하면서도 머스크는 AI 챗봇의 한계와 위험성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자동차, 비행기, 의약품 등이 표준 안전 규제가 있는 반면 AI는 아직 개발을 규제하는 규칙이나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머스크는 "AI가 자동차, 비행기, 의약품 등보다 사회에 더 큰 위험"이라며 "AI 안전성을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규제로 인해 AI의 발전 속도가 늦춰질 수도 있겠지만 그게 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안전성에 대한 규제 없이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AI를 막아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제기한 것이다.머스크는 2015년 오픈AI 설립 당시 샘 올트먼 현 최고경영자(CEO) 등과 함께 10여명의 공동 창업자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이후 2018년에 오픈AI 이사회를 떠났고 현재는 더이상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머스크는 "오픈AI는 처음에는 오픈소스 비영리 단체로 설립됐지만 이제는 영리를 추구하는 조직으로 변했다"며 "현재 오픈AI에 공개 지분이 없으며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오픈AI는 머스크가 회사를 떠난 뒤 영리 단체로 전환했다.오픈AI의 설립 초기를 이끌었던 사람으로서 머스크는 그동안 무분별한 AI 개발에 대해 경고해왔다. 그는 "AI가 핵탄두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다. 특히 그는 "오픈AI를 설립하기로 결정한 것은 구글이 AI 안전성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오픈AI와 손잡은 마이크로소프트와 AI 전통의 강자 구글의 경쟁에 규제가 가해지지 않으면 인류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실리콘밸리=서기열 특파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