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바이오벤처 웰마커바이오가 미국 머크(MSD)와 항암제 공동 임상에 나선다.웰마커바이오의 폐암 치료제 후보물질과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함께 투여하는 임상이다.MSD가 키트루다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내 바이오벤처가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을 병용 파트너로 삼은 일곱 번째 사례다. 키트루다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209억 달러(약 26조원)가 팔린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웰마커바이오는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내 임상 1상을 MSD와 함께 한다고 4일 밝혔다. 웰마커바이오의 폐암 치료 후보물질(WM-A1-3389)과 MSD의 키트루다를 함께 투여해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임상이다.WM-A1-3389는 아직 동물실험에서만 효능을 확인한 전임상 단계 신약 후보물질로, MSD가 사람 대상 임상에도 들어가지 않은 후보물질을 키트루다 병용 대상으로 삼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WM-A1-3389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MSD는 웰마커바이오에 키트루다를 무상 제공할 계획이다. 키트루다 약값이 환자 한 명당 한 해 1억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웰마커바이오는 수십 억원의 임상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웰마커바이오는 치료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생체 표지자)를 기반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다. 진동훈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부교수(사진)가 2016년 창업했다. '서울아산병원 1호 스핀오프' 바이오벤처다.키트루다와 병용 임상에 들어가는 웰마커바이오의 WM-A1-3389는 약물 반응이 잘 일어날 수 있는 특정 단백질이 발현된 사람을 대상으로 투여하는 바이오마커 기반의 약물이다. MSD가 키트루다의 병용 약물로 WM-A1-3389를 낙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약발이 들을 만한 환자'를 대상으로 키트루다를 투여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키트루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항암제이지만, 특정 단백질(PD-L1)이 발현되지 않았거나 발현율이 낮은 비소세포폐암 환자에게서는 반응률이 20~30%로 낮다는 한계가 있다. 웰마커바이오는 키트루다 같은 PD-L1 계열 면역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 환자에게 높은 비율로 발현되는 특정 단백질을 찾아냈다. 이들 환자에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단백질과 '암세포 공격수'인 T세포가 만나면 암세포 공격을 방해한다는(면역관문) 사실을 확인했다. WM-A1-3389는 이 둘의 결합을 막아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원리의 항암제다.진 대표는 "키트루다가 PD-L1 발현이 적거나 없는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적응증)으로 하는 약물과 공동 임상을 하는 건 WM-A1-3389가 세계 최초"라고 했다. 웰마커바이오와 MSD는 임상 1상 설계를 함께 했다.웰마커바이오는 키트루다 내성을 가진 마우스 대상 전임상 실험에서 WM-A1-3389와 키트루다를 함께 투여하면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는 점을 확인했다. 폐암 환자에게서 유래한 말초혈액을 활용해 사람의 면역 환경을 만들어 놓은 마우스 모델에서도 병용 투여의 높은 효능을 확인했다고 회사 측은 강조했다. 진 대표는 "MSD와의 공동 임상 협력은 새로운 기전(원리)의 신약을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전임상에서 병용투여 효능을 확인한 만큼 임상 1상에서 추가 치료 효과 가능성을 기대한다"고 했다.웰마커바이오는 병용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WM-A1-3389 기술수출도 추진할 계획이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인천 송도를 국내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 거점으로 낙점했다. 송도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이 들어서 있어 바이오사업을 위한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다고 판단했다. 송도는 명실상부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생산 허브로 도약하게 됐다.3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최근 인천경제자유구역청(IFEZ)에 CDMO 사업의향서를 제출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내부 검토 결과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 입지로 송도가 가장 적합하다고 결정했다”며 “구체적인 투자 조건에 대해서는 인천시와 추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롯데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하며 CDMO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2030년까지 30억달러(약 3조7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12만L 규모의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 3개를 건설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이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송도와 충북 오송 등을 후보지로 선정해 저울질해왔다.롯데바이오로직스는 이르면 올 하반기 국내 첫 공장 건설에 들어갈 예정이다. 2025년 하반기 준공해 2027년 상업 생산을 시작하는 게 목표다. 바이오의약품 ‘대세’인 항체의약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시러큐스 공장과 국내 공장 가동을 통해 2030년까지 매출 1조50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했다. 회사는 시러큐스 공장에 인수 비용 1억6000만달러에 7000만달러를 추가 투자해 생산능력을 확대할 예정이다.롯데바이오로직스가 국내에 계획하고 있는 총 36만L 규모 ‘메가플랜트’ 건설은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장을 가동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1공장은 3만L 규모고, 2공장과 3공장은 각각 15만L와 18만L다. 지난해 10월 부분가동에 들어간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인 4공장은 24만L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롯데그룹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선정한 바이오 CDMO 사업에 공격적인 투자 확대와 인재 확보로 시장에 조기에 안착하겠다”고 했다.롯데바이오로직스가 송도에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송도는 세계적인 바이오산업 허브로 거듭날 수 있게 됐다. SK바이오사이언스도 경기 판교에 있는 본사를 송도로 옮기기로 하고 연구개발(R&D) 시설을 짓고 있다.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국내에 본사를 둔 A사는 아직 세계적으로 시도된 적이 없는 방식의 항암제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사람 대상 임상의 첫 관문인 임상 1상은 국내가 아니라 미국에서 진행 중이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우선 국내에선 임상 허가를 받기가 수월치 않아서다.국내 혁신 신약 개발 바이오벤처 중에는 A사처럼 국내를 건너뛰고 미국 임상을 택한 사례가 적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새로운 방식의 신약후보물질 임상과 품목 허가에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임상컨설팅업계 관계자는 “임상 허가를 내줬다가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문제 등의 위험 부담을 피하려는 것”이라고 했다.미국 유럽 등 해외 분위기는 다르다. 약물의 안전성만 확보되면 임상 허가를 받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임상 허가를 내주되 효능을 입증하는 건 어디까지나 회사 몫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임상 결과에 따른 평가는 시장에서 받으면 된다는 시각이다. 실제 미국 바이오기업 바이오젠이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아두헬름’은 효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전문가 의견이 우세했음에도 미 식품의약국(FDA)은 허가를 내줬다. 치료제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선 환자가 선택하도록 하자는 취지다.이렇다보니 국내에선 혁신 신약이 나오길 기대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선 지금까지 없던 기술을 찾는 데 집중하지만 한국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모험에 가깝다”고 했다.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신약 개발 역량이 급성장한 만큼 규제당국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식약처의 보신주의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FDA에 비해 식약처의 예산과 전문성이 크게 부족한 구조적 현실 때문이다. 식약처에 신약 허가 심사를 받을 때 내는 심사수수료는 800만원 수준이지만 FDA는 30억원이 넘는다. 심사 인력도 FDA는 1700여 명이지만 식약처는 350여 명에 그친다.업계 관계자는 “혁신 신약이 국내에서 개발되는 환경을 만들려면 규제기관인 식약처의 경쟁력부터 높여야 한다”고 했다.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