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군이 인공지능(AI), 드론 등 첨단기술 전력화에 힘을 실으면서 다양한 스타트업이 국가 방위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이들 스타트업은 신속한 기술 개발과 시장 검증을 통해 군, 방산기업 등과 협력하며 줄어드는 병력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AI, 자율비행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군 전력 강화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다.

안전점검하던 드론, 적진에도 뛰어든다

 그래픽=허라미 기자
그래픽=허라미 기자
최근 북한의 무인기 도발로 드론의 전략적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우리 군도 드론 부대를 창설해 무인기 대응 체계를 갖추고, 스텔스 무인기 개발 등을 앞당긴다는 방침이다.

자율비행 드론 솔루션 스타트업 니어스랩은 ‘안정성’을 무기로 국방산업 진출에 시동을 걸고 있다. 2015년 설립된 니어스랩은 25개국에서 드론을 활용해 풍력발전, 건설 등 산업 안전점검 사업을 펼쳐온 회사다. 드론으로 풍력발전 시설을 점검하기 위해서는 바람이 강한 해상에서도 안정적인 비행이 이뤄져야 한다. 니어스랩은 자체 보유한 드론 제어 기술을 통해 풍력발전 분야에서 사고 없이 안전점검을 해왔다.

최재혁 니어스랩 대표는 “로켓, 인공위성 기술에 사용되는 수준의 정밀한 드론 비행과 자세 제어 기술을 바탕으로 적국 무인정찰, 테러 드론 감시, 실시간 데이터 수집 등을 할 수 있다”며 “그동안 다양한 정부 과제를 해오면서 국방에 접목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2018년 설립된 파블로항공은 국방기술진흥원, 국방과학연구소를 비롯해 주요 방위산업체와 협력하고 있다. 이 회사는 드론 군집 비행과 자율비행 기술, 통합관제플랫폼 개발 등에 강점을 지닌 스타트업이다.

전장에서 드론의 존재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소형 무인기를 통한 도발은 적은 비용으로 적국에 큰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침범한 드론을 격추하려면 고가의 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어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손실을 일으킨다.

이런 이유로 탐지·식별 기능에서 나아가 적국 드론 격추 및 무력화를 위한 ‘안티 드론’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팩트닷MR은 글로벌 안티 드론 시장이 2032년까지 연평균 20.9% 성장하며 74억달러(약 9조12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소속 스타트업 토리스는 북한의 소형 무인기를 8㎞ 밖에서 탐지해 떨어뜨릴 수 있는 레이더 기술을 개발해 국방용으로 납품하기도 했다. 이 기술이 적용된 드론 요격 체계는 이르면 내년께 군에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해양 안보에도 스타트업의 기술이 활용될 예정이다. AI 기반 자율운항 스타트업 씨드로닉스는 방산업체, 국방 관련 연구소 등과 해양 국방 시스템에 적용할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선박 자동 주차, 레이더 기반 해상물체 탐지가 가능한 자율운항 무인 수상정을 개발해 해양 정찰 업무를 도울 계획이다.

미군도 활용하는 ‘소리 감별사’

선명한 시청각 정보를 제공해 군 지휘관과 병사들의 판단을 돕는 스타트업도 있다. 미국의 넬리스 공군기지는 국내 청각 AI 스타트업 코클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코클은 주변 소리에 머신러닝(기계학습) 알고리즘을 결합한 오디오 AI 플랫폼을 개발해 일상생활의 모든 소리를 의미 있는 정보로 변환해준다. 마이크를 부착한 네 발 보행 로봇이 돌아다니며 각종 소리를 분석해 총과 비행기의 종류, 적의 위치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저격수의 위치도 총소리를 분석해 실시간으로 찾을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모빌테크는 라이다 센서로 특정 공간을 고정밀 입체 영상(3D) 지도로 재현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현실 공간을 데이터로 그대로 옮기는 실감형 ‘디지털 트윈’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국방 분야에 적용하면 적진의 변화를 감지해 적의 동태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웨어러블 카메라 스타트업 링크플로우는 목에 두르는 360도 카메라와 자체 영상 합성 기술을 통해 사각지대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게 해준다. 전방 경계, 해안선 감시 등에 활용할 수 있으며 특전사들이 침투 작전을 할 때도 실시간으로 전 방향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위성 데이터도 분석하는 AI

우주에서 받는 정보도 국방에 필수적이다. 인공위성 데이터의 최대 장점은 직접 가지 못하는 지역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 위성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에스아이에이(SIA)는 AI로 인공위성 영상을 분석한다. 이 회사는 국내외 군사 및 정보기관 등을 대상으로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공간정보 기업 메이사도 지난해 4월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함께 합작법인 메이사플래닛을 설립해 위성 영상 분석 서비스에 나섰다.

위성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미사일 기지, 대포, 장갑차 등의 변화를 자동으로 분석해주는 방식이다. 항공기, 차량, 선박 등 다양한 물체를 탐지하고 기종을 식별할 수 있다. 영상 위치 오차 등도 자동 보정해준다.

이를테면 장사정포의 포신이 위로 올라가 있는지에 따라 경계를 강화할 수 있고, 미사일 기지에 갑자기 차량이 들어와 파이프를 연결한다면 ‘미사일 발사를 준비한다’고 추정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영상과 과거 영상 사이 변화 탐지가 가능해 전투 피해 평가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방산 유니콘’도 탄생

그간 방산은 스타트업이 진출하기 까다로운 분야 중 하나였다. 시장에 진입한 뒤 피드백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해가는 기존 스타트업과 달리 국방 분야는 오랜 인증 과정을 거쳐 기술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스타트업은 많지 않다. 보안상 문제로 정보가 많지 않은 점도 어려움 중 하나다.

하지만 군사 능력에 첨단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군에서도 혁신적인 민간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방산 기업들도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 나서 신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겠다는 분위기다. 작년 상반기 유진투자증권과 LIG넥스원이 방산 벤처투자펀드 만들었으며 한화시스템 역시 군인공제회와 손잡고 작년 8월 1000억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해 방산 스타트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해외에서는 방산 스타트업이 대규모 투자를 받거나 군과 계약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스카이디오는 드론 기업 최초로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반열에 올랐다. 스카이디오는 작년 2월 미 육군에 수색용 드론을 납품하기로 했다. 규모는 5년간 1억달러(약 1232억원)에 달한다.

방산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 앤듀릴은 미국 특수 작전 사령부와 드론 시스템 통합 작업을 주도하는 10억달러(약 1조2300억원) 규모 대형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지난달 약 15억달러의 투자금을 받을 당시 기업 가치는 85억달러로 평가받았다. 탐사 로봇 및 드론을 개발하는 실드AI는 기업 가치가 23억달러에 이른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