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열기가 예전같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메타버스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고, 이름까지 '메타'로 바꾸며 애쓰고 있는 페이스북은 시장에서 외면받는 중이다. 금리인상을 계기로 경기가 위축된 영향이 크다. 국내 기업들도 불과 1년 전에는 메타버스에 열광하는 분위기였지만, 요즘엔 꼭 그렇지도 않다.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냉정한 계산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메타버스에 '목숨을 거는' 기업들도 여전히 있다. 메타버스에 미래가 있고, 이것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기업들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돈을 번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들의 접근법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1. 땅을 판다

첫째는 '땅을 판다'는 점이다. 온라인이니까 무한한 공간을 열어둔다는 개념을 가질 법도 하고, 실제로 네이버제트의 '제페토' 등 무한한 영역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메타버스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영역을 구체적으로 분배하고 더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영역을 유한하게 설정하는 것이 편리하다. 수익화가 더 쉽다.
롯데정보통신의 메타버스 자회사 '칼리버스'가 판매하는 빌딩 모습. /칼리버스 홈페이지.
롯데정보통신의 메타버스 자회사 '칼리버스'가 판매하는 빌딩 모습. /칼리버스 홈페이지.
롯데그룹 계열 정보통신기술(ICT) 회사인 롯데정보통신이 인수해서 키우고 있는 칼리버스나 게임회사 컴투스의 컴투버스는 메타버스 내 부지를 판매해서 자금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칼리버스는 NFT 땅과 빌딩을 판매한다. 스몰 / 미디엄 / 라지 / 엑스트라 라지 4가지 크기를 상업적 용도와 비상업적 용도로 나눠서 파는데, 스몰 사이즈 빌딩은 250~400㎡ 크기, 엑스트라 라지 빌딩은 6400~7056㎡다. 이 안에서 생성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제약이 있다. 스몰사이즈는 인스턴스 룸을 2개까지, 엑스트라 라지는 20개까지 가능하다.

컴투스의 컴투버스도 이와 비슷한 컨셉트다. 총 9개의 섬으로 구성돼 있고 한국버전인 첫 번째 섬은 종로구 크기(약 24㎢)로 설정됐다. 송재준 컴투스 대표는 이와 관련해 "'원조 메타버스'인 게임 업계에선 가상공간에 대한 최적의 설계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며 "무제한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설명했다. "유한한 영역을 설정해야만 그 안에서 중심과 주변이 구분되고, 상대적으로 땅값이 비싼 '서울'이나 '강남'에 해당하는 곳이 생겨나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다"는 논리다.

크래프톤이 메타버스 '제페토' 운영사인 네이버제트와 함께 개발하고 있는 '미글루' 역시 유한한 공간으로 구성된다. 가로 2㎞, 세로 2㎞ 가량으로 300~500명을 수용하는 도시를 여러 채널로 만들 예정이다. MMORPG 게임에서 여러 개의 서버가 있고 각 서버별로 입장 가능한 인원이 정해져 있는 것과 유사한 구조다.
컴투스의 메타버스 자회사 '컴투버스'가 운영하는 가상공간의 모습. /컴투버스 제공.
컴투스의 메타버스 자회사 '컴투버스'가 운영하는 가상공간의 모습. /컴투버스 제공.
2. B2B가 주력

둘째는 기업고객을 주로 상대한다는 것이다. 메타버스 내 지역이나 빌딩을 유상으로 판매할 때 개인이 살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요 타깃은 아니다. 이미 현실에서 대규모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주체들을 상대로 기업 간 거래(B2B) 영업을 할 수 있어야 수익성을 담보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하려면 기업들에게 소구할 만한 마케팅 포인트가 존재해야 하는데, 가상 오피스나 가상의 판매공간이 가장 쉬운 접근법이다. 컴투버스는 하나금융과 교보문고, 교원, 영실업, 닥터나우 등 파트너십을 체결한 기업들의 메타버스 가상오피스를 오는 3월께 선보일 예정이다. 아바타가 기본적으로 있지만 실물 얼굴을 작게 띄워서 현실과 가상세계 간의 중첩을 유도하는 등 실제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내년에는 이를 점포 등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칼리버스는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가전 쇼 'CES 2023'에서 유통 명가의 강점을 살려 지방시 록시땅 메이크업포에버 등 유명 브랜드가 다수 입점한 메타버스 쇼핑몰의 모습을 실감나게 구현해 눈길을 끌었다.

MS가 소비자 대상 메타버스에 대한 미련을 접고 '산업용 메타버스'에 집중하기로 한 것도 결국 수익성을 고려한 결정이다. 단지 소비자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기만 해서는 '쇼' 이상의 것이 되기 어렵고 진짜로 메타버스에서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수요에 맞는 메타버스의 운영 방식을 발견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시한 산업용 메타버스 이미지. /마이크로소프트 제공.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시한 산업용 메타버스 이미지. /마이크로소프트 제공.
3. 자체 화폐 활용한 메타노믹스 설계

셋째는 경제활동, '메타노믹스'에 대한 고민이다. 단지 즐거움을 주려는 목적으로는 장난감 노릇에 그치기 쉽다. 물론 결제 행위를 일반적인 온라인상거래처럼 운영할 수도 있지만, 암호화폐를 통해 자신만의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려고 시도하는 경향이 보인다. 메타버스 내에서 구매 욕구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실제 현금이나 카드결제를 수반하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장벽이 있는 반면, 포인트 제도나 암호화폐 등은 보다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활용할 수 있고 사용자를 가두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서다.

칼리버스와 컴투버스는 모두 토큰 활용 계획이 있다. 칼리버스는 홈페이지에 1분기 중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을 것이라고 공지한 상태다. 컴투스는 이미 보유하고 있는 엑스플라 등을 활용하고, 장기적으로 컴투스 계열 게임과 컴투버스 내에서 같은 화폐를 쓸 수 있게 해서 컴투스 생태계의 핵심 요소로 삼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메타버스 콘서트 등으로 주목을 받아 온 SK텔레콤의 메타버스 '이프랜드'도 지난해부터 이프랜드 포인트를 도입했다. 본격적인 암호화폐의 형태는 아니지만 쌓인 포인트를 메타버스 내 모임을 운영하는 호스트에게 후원하거나 아바타의 옷을 사는 데 쓸 수 있다. 옛날 싸이월드의 도토리에 가까운 느낌이다.

메타버스의 이용자, 특히 커뮤니티 활성화에 기여하는 창작자들에게 보상을 하기 위해서도 자신만의 화폐가 활용된다. 당장 현금을 주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자체 화폐는 큰 부담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게임사 넥슨의 메이플스토리월드, 크래프톤의 미글루 등에서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
칼리버스 내 메이크업포에버 매장 모습. / 칼리버스 홈페이지.
칼리버스 내 메이크업포에버 매장 모습. / 칼리버스 홈페이지.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