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아제넥스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블루버드바이오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우선심사권(PRV) 바우처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 금액은 1억200만달러다. 아제넥스는 이 바우처를 회사의 주력 물질인 '비브가르트'(성분명 에프가티지모드) 허가 신청에 사용할 계획이다. PRV 바우처는 FDA의 신약허가 심사 기간을 단축시켜주는 제도다. 통상 FDA 허가 심사에는 약 10개월이 소요된다. PRV 바우처 행사 시 이 기간이 6개월로 줄어든다.FDA는 2007년 희귀 소아 질환의 예방 및 치료제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PRV 바우처는 획득 당시 신청한 후보물질 외에 다른 물질 허가 신청에도 사용 가능하다. 판매 및 양도도 가능하다. 양도 횟수에는 제한이 없다. 팀 반 하우어메런 아제넥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번에 획득한 PRV 바우처를 2025년까지 비브가르트의 15가지 적응증에 대해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다만 바우처가 '6개월'이라는 심사기간을 100%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FDA는 바우처 사용 지침에서 '우선검토 대상 약물의 90%를 6개월 내에 심사 완료하는 게 목표'라고 언급하고 있다. 유전자치료제 개발기업인 블루버드는 올해 베타지중해빈혈(Beta thalassemia) 치료제 '진테글로'와 초기 활성 대뇌 부신백질이영양증 치료제 '스카이소나'의 승인으로 두 개의 PRV를 획득했다. 이번 첫 번째 PRV 판매에 이어 회사는 두 번째 PRV도 시장에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앤드류 오벤샤인 블루버드 최고경영자(CEO)는 "PRV 바우처 판매로 재정 전망이 크게 강화됐다"며 "이는 최근 승인된 두 가지 유전자 치료제의 지속 출시 등의 이정표 실행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브가르트는 FDA의 승인을 받은 첫 'FcRn' 저해제다. MG는 자가항체인 ‘면역글로불린G(IgG)’가 아세틸콜린 수용체(AchR)에 작용해 신경과 근육 간 신호전달을 방해해 발병한다. 이에 따라 근육이 약화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심할 경우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중증근무력증 환자의 약 85%가 24개월 이내에 gMG로 진행된다. 비브가르트는 IgG가 분해되는 것을 막는 FcRn의 작용을 저해하는 기전의 약이다.FDA는 지난달 말 아제넥스가 제출한 피하주사(SC) 제형의 비브가르트 gMG 우선심사 신청을 수락했다. 처방약허가신청자수수료법(PDUFA)에 따른 FDA의 허가 여부 결정 기일은 내년 3월 20일이다. 비브가르트는 앞서 gMG에 대해 FDA로부터 정맥주사(IV) 제형으로 먼저 승인을 받았다.아제넥스의 PRV 인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회사는 2020년 바이엘로부터 980억달러에 PRV바우처를 구매했다. 당시 바이엘은 소아 샤가스병 치료제 '램핏'으로 PRV를 획득했다.이도희 기자 tuxi0123@hankyung.com
‘불멸의 기업’. 1668년 문을 연 글로벌 제약·소재 기업 독일 머크(Merck KGaA)에 붙는 수식어다. 자그마한 동네 약국에서 시작한 머크는 올해로 창립 354년을 맞았다. 수차례의 전쟁과 경제 위기, 급격한 기술 진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머크 가문은 무려 13대째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한 나라도 갖기 어려운 ‘354년 역사’의 비결은 뭘까. “사업 기회 포착 DNA 탁월”벨렌 가리호 머크 최고경영자(CEO·62·사진)는 독일 다름슈타트 집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머크는 아주 작은 트렌드 변화(microtrend)도 알아채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이런 역량을 바탕으로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고 기회를 낚아채지 않았다면 지금의 머크는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 머크 CEO에 오른 그가 한국 언론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가리호 CEO는 머크 가문 사람이 아니다. 스페인 태생의 의사 출신 전문경영인이다. 대규모 투자와 굵직한 인수합병(M&A)은 머크 가문과 논의하지만 회사 경영 전반은 가리호 CEO의 몫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다. 머크 가문의 구성원이 아닌 그가 머크에서 12년 가까이 일하며 깨달은 ‘354년 기업의 비결’은 바로 회복 탄력성이다. 위기가 찾아와도 회사 경영이 이내 정상궤도에 들어올 수 있는 힘이 장수 기업의 비결이라는 설명이다.그는 “산업 변화의 흐름 속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는 DNA가 머크의 회복 탄력성을 강화시킨다”고 했다. 머크가 거대한 변화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바이오산업이 급성장할 무렵 조(兆) 단위 M&A를 통해 머크는 첨단 바이오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스위스 최대 생명공학 기업인 세로노(14조원·2006년) 인수를 비롯해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필요한 각종 시약과 장비,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는 미국 밀리포어(7조원·2010년), 시그마 알드리치(18조원·2015년)를 연이어 사들였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신축 붐이 반도체 수요 증가로 이어질 것이란 판단에 반도체용 가스·전구체 생산업체인 버슘 머티리얼즈(8조원·2019년)를 인수했다.M&A로 사업 영역을 문어발처럼 확대하지는 않는다. 몸집을 불리기보다 정리할 사업은 정리하며 내실 있는 성장을 추구한다. 시장 경쟁이 치열한 일반의약품과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사업을 접은 게 대표적이다. 가리호 CEO는 “우리는 효율적 성장을 추구한다”며 “기존 사업을 발전시키는 게 우선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손을 떼는 것도 옵션”이라고 했다. ‘멀티 인더스트리’ 전략으로 위험 분산머크는 쉬지 않고 사업재편을 지속했고 지금은 헬스케어(바이오 신약 개발), 라이프사이언스(바이오 소부장), 일렉트로닉스(반도체·디스플레이 소부장) 등 3대 사업부문 체제를 구축했다. 이는 모태가 된 전통 제약·화학 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유망한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한 결과다. 이 같은 ‘멀티 인더스트리’ 전략은 머크가 회사의 영속성을 높이는 핵심 전략 가운데 하나다.가리호 CEO는 “‘멀티 인더스트리’ 사업 모델은 회복 탄력성에 대한 머크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고 했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분산해 경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이다. 한 사업이 부침을 겪어도 다른 사업이 이를 보완한다. 그는 “팬데믹과 전쟁이라는 어려운 경영 환경에 처해 있지만 우리는 매우 유망한 사업 분야에 진출해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고 했다.머크는 사업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업 부문별 핵심 사업으로 구성된 ‘빅3(프로세스 솔루션·라이프사이언스 서비스, 혁신 신약, 반도체 솔루션)’에서 2025년까지 회사 매출 성장의 절반 이상을 이끌어낼 계획이다. 이를 통해 3년 후엔 매출 250억유로를 달성하는 게 목표다. 지난해 매출(197억유로)보다 26.9% 많은 규모다.변화무쌍한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에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과학기술 기반의 혁신 추구라는 대원칙이다. 가리호 CEO는 “회사가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 와중에도 그 중심에는 늘 과학기술 중심 경영이라는 원칙이 있다”며 “머크의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은 바로 기술 혁신”이라고 했다. “머크家와 유기적 협력…가족 기업 장점 극대화”지배구조도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머크 지분은 오너 일가가 소유한 E.머크가 70.3%를 보유해 확고한 오너십을 보여준다. 나머지는 기관투자가 등 시장에 풀렸다. 과거엔 머크 가문이 지분 100%를 소유했는데 1990년대 말 투자 확대를 위해 외부 투자가를 받아들인 결과다.머크 가문과 투자가는 때론 협력하고, 견제하며 머크의 지속 가능성을 지탱한다. 가리호 CEO는 “머크의 지분 구조는 오너 경영과 전문 경영의 장점을 모두 살릴 수 있다”며 “머크 가문의 장기적 안목과 이익 추구 중심인 투자가 관점의 결합은 머크만의 특별함”이라고 했다.전통적인 가족 기업을 이끄는 전문경영인으로서 가리호 CEO의 목표도 명확하다. 가족 기업이 역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는 “오너 일가가 회사를 더 좋은 모습으로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리더로 남고 싶다”고 했다.다름슈타트(독일)=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독일 머크의 ‘354년 역사’는 ‘인수합병(M&A)의 역사’로 봐도 무리가 없다. 활발한 기업 인수와 보유 사업 매각을 통한 사업 재편을 회사의 지속 가능성 제고 수단으로 활용해와서다. 회사 공식 홈페이지에 ‘지분 인수·매각’ 코너를 별도로 운영할 정도다.머크는 최근 20년간 무려 32개 기업을 사들였고, 13개 사업은 매각했다. 사업 재편을 위한 거래금액 기준으로 630억유로(약 87조원)에 이른다. 조(兆) 단위 기업 인수·매각만 8건(금액이 공개된 거래 기준)이다. 여기엔 머크가 전통 제약·화학기업에서 바이오의약품 토털 솔루션 회사로 탈바꿈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시그마 알드리치(131억유로), 세로노(103억유로) 인수가 포함돼 있다. 이 과정에서 일반의약품(49억유로)과 컨슈머 헬스케어(34억유로), 바이오시밀러(6억7000만유로) 사업 매각이 이뤄졌다.머크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전략인 M&A 제1원칙은 잠재력이다. 벨렌 가리호 머크 최고경영자(CEO)는 “M&A 대상 기업의 가치를 얼마만큼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가장 까다롭게 심사한다”고 했다. 그는 “머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완하거나 공백을 전략적으로 메울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M&A 추진은 투 트랙으로 이뤄진다. 일상적인 M&A는 이사회 내 투자위원회 검토 후 이사회 승인 순서로 한다. 하지만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하는 전략적 M&A라든가, 투자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엔 머크 가문으로 구성된 가족위원회 등의 승인까지 얻어야 한다. 가리호 CEO는 “M&A로 인해 머크의 지속 가능성이 훼손돼선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실탄’은 늘 넉넉하게 확보해 놓는다. 급변하는 산업 흐름 속에서 언제 어떤 사업 재편이 이뤄질지 알 수 없어서다. 가리호 CEO는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사업에 나서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늘 150억~200억유로의 재정 여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머크는 M&A에 매우 능하다”며 “2023년에도 대규모 M&A를 고려하고 있다”고 예고했다.다름슈타트(독일)=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