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약사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함께 개발하고 있는 알츠하이머 치매 후보물질 '레카네맙' 임상 3상시험의 세부 데이터가 공개됐다. 이 약을 투여한 환자의 인지능력 저하 속도를 27% 늦춰준다던 기존 발표 결과가 입증됐다.

레카네맙이 새로운 알츠하이머 치료 시대를 열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약 투여 후 부작용 환자도 비교적 많아 임상 현장에선 활용할 때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18개월 간 레카네맙 투여 임상 결과 발표

1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예일대 의대 연구진 등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레카네맙을 18개월 간 투여한 임상 결과를 공개했다.

북미와 유럽 아시아 등 235개 임상기관에서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 179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3상시험(Clarity AD) 결과다. 레카네맙은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으로 꼽히는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에 붙어 면역세포가 이 단백질을 없애도록 고안된 단일클론항체치료제다.

연구진은 경도 인지장애나 경도 치매를 앓고 있는 50~90세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이들은 양전자단층촬영(PET)이나 뇌척수액 검사를 통해 알츠하이머 질환이 확인된 환자들이다.

환자들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898명)에는 레카네맙을, 다른 그룹(897명)에는 가짜약을 투여했다. 레카네맙은 몸무게 1kg 당 10mg을 2주마다 투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분석+] 베일 벗은 레카네맙 임상 3상, 확인한 성과와 과제들
1차 평가지표는 임상치매척도(CDR-SB) 수치 개선 정도였다. CDR-SB은 1979년 미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 워싱턴의대 알츠하이머 연구센터에서 개발한 치매 평가 방법이다.

의사가 환자 보호자와 면담을 한 뒤 기억력, 지남력, 판단력과 문제해결능력, 외부활동 참여, 가사와 취미, 개인간병 등 6개 항목에 0, 0.5, 1, 2, 3점으로 점수를 매긴다. 이를 더해 수치화하는 방식이다. 0~18점까지 분포되고 점수가 높을수록 심각한 치매다.

임상 참가자들의 평균 CDR-SB 점수는 두 그룹 모두 3.2점이었다. 18개월 간 임상시험을 진행한 뒤 점수를 다시 확인해보니 레카네맙 투여군은 점수가 1.21점 올랐지만, 가짜약 투여군은 점수가 1.66점 올라갔다. 두 그룹간의 점수 차이는 0.45점(P<0.001)이었다. 레카네맙을 18개월 동안 투여하면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이 악화되는 속도가 27% 정도 느려진다는 의미다.

치료효과는 약을 투여한지 6개월되는 시점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3개월 마다 변화를 관찰했는데 레카네맙 투여군과 가짜약 투여군 간 증상 진행 속도는 점차 벌어졌다.

에자이 측은 레카네맙을 통해 18개월 간 약을 투여한 환자들의 알츠하이머 증상 진행 속도를 7.5개월 정도 늦췄다고 평가했다. 이를 전체 기간으로 보면 질병 진행 속도를 2.5~3.1년 늦출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토대로 업체 측은 "환자가 더 오랜 기간 초기 알츠하이머 단계에 머무르도록 도울 수 있다"고 밝혔다.

2차 지표에서도 효과 확인

에자이는 레카네맙 임상 2차 지표로 PET 검사상 아밀로이드 응집물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확인했다. 14개 인지 항목을 토대로 점수를 매기는 알츠하이머 평가척도(ADAS-cog14), 알츠하이머병 총합점수(ADCOMS), 알츠하이머 협력연구 경도인지장애 일상생활능력 평가검사(ADCS-MCI-ADL) 등도 확인했다.

ADAS-cog14는 0~90점까지, ADCOMS은 0~1.97점까지 구성된다. 점수가 높을수록 증상이 심한 환자다. ADCS-MCI-ADL는 0~53점이다. 점수가 낮을수록 장애 정도가 심하다는 의미다.

2차 지표 하위 연구에서 뇌속 아밀로이드 응집물은 레카네맙 투여 환자에게 더 적었다. 레카네맙 투여군은 치료 18개월이 지난 뒤 아밀로이드 응집물이 55.5센틸로이드 줄었지만 가짜약 투여군은 3.6센틸로이드 늘었다. ADAS-cog14는 레카네맙 투여군이 평균 1.44점(P<0.001) 낮았다. ADAS-cog14 점수 상 레카네맙 투여군의 인지기능 저하 속도는 평균 26% 정도 느려졌다.

ADCOMS은 레카네맙 투여군이 0.050점(P<0.001) 낮았다. 레카네맙 투여군은 ADCOMS 점수 상 24% 정도 질병이 더디게 진행됐다. ADCS-MCI-ADL도 레카네맙 투여군이 2점 높았다. 레카네맙을 투여한 환자들의 일상생활 활동 감소 속도가 가짜약 투여군보다 37% 정도 느려졌다는 의미다.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 속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줄여 인지와 기능 저하 속도를 늦춘다는 게 확인된 것이다. 일부 환자들을 대상으론 뇌 속 타우 단백질에도 변화가 있는지 관찰하는 후속 연구도 했다.

ARIA-H 17.3%, ARIA-E 12.6%

약을 투여한 환자들에게선 이상반응도 확인됐다. 레카네맙 투여군에선 약물 주입 관련 부작용을 호소한 환자가 26.4%였다. 가짜약 투여군 중 주입 부작용을 호소한 환자는 7.4%였다. 레카네맙 투여군 중 주입 관련 부작용을 호소한 환자 96%는 증상이 심하지 않은 1~2등급 부작용이었다. 주입 부작용을 호소한 환자의 75%는 첫 투여 후 발생했다.

레카네맙 투여군 중 뇌영상에서 부종 등 비정상소견(ARIA-E)을 확인한 환자는 12.6%였다. 가짜약 투여군은 이런 이상반응을 보인 환자가 1.7%였다. 복합성 뇌출혈(ARIA-H) 등의 이상반응은 레카네맙 투여군이 17.3%, 가짜약 투여군이 9% 호소했다. 두통은 레카네맙 투여군이 11.1%, 가짜약은 8.1%였다.

에자이는 NEJM에 공개된 논문보다 더 상세한 부작용 데이터를 공개했다. 임상시험 기간 레카네맙 투여군과 가짜약 투여군에서 사망환자는 각각 0.7%, 0.8% 발생했다. 18개월 연구 기간 동안 레카네맙과 관련되거나 ARIA 때문에 사망한 환자는 없었다. 레카네맙 투여 환자의 6.9% 정도는 부작용 때문에 약물 투여를 중단해야 했다.

ARIA-E가 확인된 환자의 71%는 치료 후 3개월 안에 이상 소견이 확인됐다. 81%는 이상 반응을 확인한 지 4개월이 지나자 이상 반응이 사라졌다.

후속 임상 기간을 포함해 뇌출혈로 사망한 환자는 위약군 897명 중 1명, 레카네맙 투여군 1608명 중 2명이었다. 사망자는 대부분 항응고제 등을 복용하는 등 뇌출혈 위험 요인을 갖고 있었다. 이들 사망 사례는 레카네맙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에자이 측은 평가했다.

다만 임상에 참여한 뒤 NEJM 논문을 쓴 연구팀은 좀더 신중한 견해를 내놨다. 이들은 논문을 통해 "레카네맙 투여가 부작용과 연관이 있다"며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레카네맙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려면 장기 연구 결과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새역사 썼다" vs "후속 약이 나을 것" 엇갈려

이번 임상 결과에 대해 알츠하이머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들은 대체로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알츠하이머 가설을 세운 연구진으로 알려진 존 하디 영국치매연구소 교수는 영국 BBC를 통해 "알츠하이머 치료법이 시작되는 역사를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폭넓게 활용되는 약은 대부분 증상을 관리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질병의 진행 자체에 영향을 주는 약은 없었다. 이런 면에서 큰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취지다.

레카네맙이 임상 3상 시험에서 1차 지표를 충족했지만 증상 개선에 미치는 영향은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총 18점까지 구성된 CDR-SB를 0.45점 낮추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수잔 콜하스 알츠하이머 연구소 연구원은 "작은 발판을 제공한 수준"이라며 "차세대 후속 약물이 더 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부작용 우려도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다. 레카네맙 투여 환자 중 뇌출혈로 사망한 환자를 두고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들 환자의 사망 직후 사인을 분석한 조사관들은 약물과의 연관성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알츠하이머임상학회(CTAD)에서 레카네맙 임상 결과 발표를 맡은 마완 사바 배로신경학연구소 교수는 "ARIA 관련 사망은 없었다"고 했다. 레카네맙 투여군의 사망 원인은 약이 아니라 뇌출혈, 심근경색, 코로나19 등이라는 것이다.

레카네맙 투여 후 ARIA-E 이상 반응이 확인된 환자의 78%는 무증상이었다. 환자 25명은 착란, 시각이상, 두통 등을 호소했지만 대부분 치료를 시작한 지 6개월 안에 이상반응이 나타났고, 이상 반응을 확인한 뒤 4개월 안에 해결됐다.

사바 교수는 "ARIA-E가 생길 가능성이 높은 시기와 해결되는 시기를 알고 있다"고 했다. 임상 현장에서 환자를 지켜보면서 이상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