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머크의 ‘354년 역사’는 ‘인수합병(M&A)의 역사’로 봐도 무리가 없다. 활발한 기업 인수와 보유 사업 매각을 통한 사업 재편을 회사의 지속 가능성 제고 수단으로 활용해와서다. 회사 공식 홈페이지에 ‘지분 인수·매각’ 코너를 별도로 운영할 정도다.

머크는 최근 20년간 무려 32개 기업을 사들였고, 13개 사업은 매각했다. 사업 재편을 위한 거래금액 기준으로 630억유로(약 87조원)에 이른다. 조(兆) 단위 기업 인수·매각만 8건(금액이 공개된 거래 기준)이다. 여기엔 머크가 전통 제약·화학기업에서 바이오의약품 토털 솔루션 회사로 탈바꿈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시그마 알드리치(131억유로), 세로노(103억유로) 인수가 포함돼 있다. 이 과정에서 일반의약품(49억유로)과 컨슈머 헬스케어(34억유로), 바이오시밀러(6억7000만유로) 사업 매각이 이뤄졌다.

머크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전략인 M&A 제1원칙은 잠재력이다. 벨렌 가리호 머크 최고경영자(CEO)는 “M&A 대상 기업의 가치를 얼마만큼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가장 까다롭게 심사한다”고 했다. 그는 “머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완하거나 공백을 전략적으로 메울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A 추진은 투 트랙으로 이뤄진다. 일상적인 M&A는 이사회 내 투자위원회 검토 후 이사회 승인 순서로 한다. 하지만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하는 전략적 M&A라든가, 투자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엔 머크 가문으로 구성된 가족위원회 등의 승인까지 얻어야 한다. 가리호 CEO는 “M&A로 인해 머크의 지속 가능성이 훼손돼선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탄’은 늘 넉넉하게 확보해 놓는다. 급변하는 산업 흐름 속에서 언제 어떤 사업 재편이 이뤄질지 알 수 없어서다. 가리호 CEO는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사업에 나서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늘 150억~200억유로의 재정 여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머크는 M&A에 매우 능하다”며 “2023년에도 대규모 M&A를 고려하고 있다”고 예고했다.

다름슈타트(독일)=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