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20만 명을 보유한 전업 유튜버 A씨는 콘텐츠 투자 목적으로 대출을 받기 위해 시중은행을 찾았다가 거절당했다. A씨의 직업이 일반 개인사업자나 법인처럼 확고한 수입 증빙이나 신용 확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앞으로 A씨와 같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들도 조회수나 구독자 수 등의 평가를 거쳐 대출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25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기술보증기금(기보)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위한 기술금융 모델’ 개발에 나섰다. 이르면 내년 초 실제 평가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기보는 담보 능력이 취약한 기술 중소기업들이 대출받을 수 있도록 기술성을 평가한 뒤 보증 지원을 해준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위한 기술 평가 모델을 만드는 것은 세계 최초다.
"조회수·구독자 많으면 高등급"…유튜버 맞춤 기술평가 나온다
기보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을 평가하기 위해 자체 기술평가 시스템인 ‘KTRS(Kibo Technology Rating System)’ 모형을 활용하기로 했다. KTRS는 3개년 매출을 넣으면 자동으로 신용가치를 선정해준다. 재무 위주의 신용평가모형에서 벗어나 선별과 지원이 어려운 무형의 기술, 지식을 기술성 사업성 시장성 등을 기준으로 평가해 등급화하는 시스템으로 2005년부터 활용됐다.

기보는 이를 응용해 콘텐츠 영상 링크를 넣으면 크리에이터 가치 평가가 되는 모델링을 구현하기로 했다. 인공지능(AI)이 기존의 성공한 콘텐츠 패턴을 학습하고, 여기에 전문가 평가를 종합해 크리에이터의 최종 등급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조회수, 콘텐츠 수, 구독자 수, 시청자 충성도 등이 평가 기준에 영향을 미치게 될 전망이다.

기보 관계자는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예비 사업자나 사업자로 등록한 유튜버 등을 대상으로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개발이 진행 중인 만큼 구체적인 기준은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보는 앞서 벤처·스타트업 특성에 맞게 설계한 기술사업평가모형(KTRS-SM)을 내놓고,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에 유럽형 기술평가모형을 개발·수출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크리에이터를 대상으로 삼아 글로벌 기술 평가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취지다. “대다수 크리에이터가 청년인 만큼 청년창업을 독려하기 위한 취지”라는 게 기보 측 설명이다. 유튜버에 대한 평가모델을 시작으로 장기적으로는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등 쇼트폼(짧은 영상) 크리에이터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멀티채널네트워크(MCN) 업계에서는 “크리에이터가 기술 보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한 MCN 스타트업 관계자는 “유튜버들은 은행 창구에서 대부분 ‘무직자’로 취급되다 보니 본인 명의 대신 가족 명의로 대출받는 경우가 많았다”며 “공공 부문에서 크리에이터를 위한 금융기술을 내놓는 것은 콘텐츠 업계에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