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로서의 대가는 크다.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그만한 노력을 요구한다.”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는 창업을 ‘고난의 길’로 묘사했다. 그럼에도 스타트업 대표들은 꿈꾼다. 창업은 부와 명예, 자아실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가치까지도 담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벤처캐피털(VC) 앤틀러는 지난 7월부터 한국에서 초기 창업자를 발굴하고 있다. 20대 청담동 바 주인부터 중견기업 전문경영인 출신의 50대 중년까지 다양한 예비 창업가가 모였다. 이들은 서울 공덕역 인근에 있는 서울창업허브 4층에서 창업을 준비 중이다. 약사 변호사 등 이른바 ‘전문직’도 눈에 띈다. 누군가는 동경하는 삶을 살아왔지만 다시 ‘전장’에 몸을 던진 사람들에게 창업 이유를 물었다. 공통으로 돌아온 말은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하는 인생은 아깝지 않다”는 것이었다.
로스쿨 나온 청년, CEO 출신 중년…"제가 고난의 길 걷는 이유는요"

“무료함 없다”…‘다이내믹’ 창업의 매력

“한 번에 반병 이상은 먹습니다. ‘피트 위스키’가 제일 좋아요.” 1998년생 황태웅 씨는 위스키 바 ‘퍼밋 청담’의 젊은 사장이다. 지난해 5월 미국에서 귀국해 가게를 차렸다. 퍼밋 청담은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공간이자 창업을 준비하는 전초 기지다. 오전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직접 손님을 만나며 창업 아이디어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그래픽=신택수 기자
그래픽=신택수 기자
일곱 살 때부터 외국에 살던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창업 명문’ 뱁슨칼리지에서 창업학을 전공했다. 고교 시절 발명가를 꿈꿨던 그는 “사업까지 연결되지 못하면 기술은 그 순간 끝나버린다”는 생각에 진학을 결심했다. 뱁슨의 수업은 자양분이 됐다. ‘창업 금융’ 수업은 황씨가 꼽는 가장 인상 깊은 수업이다. 팀별로 회사와 VC 역할을 맡아 협상하고 투자 계약을 체결하는 훈련을 한다. 황씨는 “기업 가치 산정부터 투자사에 ‘당하지 않는’ 실무적 기법까지 배운다”고 설명했다.

캠퍼스 내엔 창업가들이 많았다. 그 역시 고가의 새 패션 제품을 경매에 부치는 플랫폼을 만들어 ‘엑시트(매각)’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미국 본토에 한국의 빠른 전자상거래 배송 시스템을 접목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내 아이디어가 실생활에 변화를 일으키는, 그래서 영향력을 끼치는 광경을 보고 싶다”는 게 황씨가 창업을 꿈꾸는 이유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출신 황서형 씨는 변호사 일이 어느 순간 무료해졌다. 법무법인을 거쳐 대림산업(현 DL그룹) 법무팀에서 일했던 그는 2020년 음이온 촉매 기반 합성고무 제조업체 카리플렉스 인수합병(M&A)의 실무진 중 하나였다. 이후 한국어음중개로 넘어가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일까지 경험하면서 “이제는 내 사업을 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난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창업 준비에 들어갔다. 프로덕트 매니지먼트(PM) 관련 교육 과정을 수강하고, 개발자를 구하지 못해 직접 코딩도 배웠다. 험난한 과정을 겪었지만 그는 “다시 변호사 일은 하기 싫다”고 했다. “법률 업무는 항상 똑같은데 창업은 ‘다이내믹’하다”는 것이 이유다. 황씨는 변호사들의 법률 문서 작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성장’ 갈망이 스타트업 만든다

이승현 씨는 올해로 쉰두 살이 된 중년이다. 광고대행사에서 일을 시작해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싸이월드’ 서비스를 맡은 것이 커리어의 시작이다. 그해 SK커뮤니케이션즈가 인수한 싸이월드는 연간 광고로 버는 돈이 1억원도 되지 않았다. 이씨는 “광고 기획을 통해 3년 만에 싸이월드 광고 매출을 1000억원으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2008년엔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의 제의를 받아 뷰티 분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온라인 부문 매출이 전 세계 러쉬 지사 중 46위였는데, 나올 때 1등으로 만들어놓고 나왔다”고 했다. 이후엔 로레알그룹, 제너럴밀스코리아, 슈레피 등에서 임원·부대표 등으로 일했다. 마지막엔 의료기기 업체 세라젬의 뷰티 계열사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그는 살아온 방식과 스타트업 창업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이직할 때마다 허허벌판에서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고, 이를 해결하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창업은 ‘성장’에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했다. 그는 “과거 화장품 사업을 해본 적이 있는데, 사업은 단순히 내가 가진 지식과 네트워크로 돈만 버는 행위였다”며 “스타트업은 소비자들의 ‘페인 포인트(불만 사항)’를 해결해 모두가 성장한다는 매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최근 시니어 네트워킹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그대로 살면 편했겠지만 지금도 떠오르는 아이템이 매우 많다”며 “실패해도 한 번은 더 창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소정 씨는 고려대 약대 최고 우등생 중 하나였다. 시험만 보면 5등 안에 들었다. 약대에서 밤을 새워 공부하고, 서울대 약학대학원에 진학해 또다시 공부했다. “신약 개발로 성공한 연구자가 돼 부모님을 모시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2017년 여름이 분기점이었다. 석사 과정 재학 중 그의 어머니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병원 측 말을 듣고 하늘이 노래졌다. 다행히 어머니의 몸은 회복됐지만, ‘대학원의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신약은 만드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10년, 20년 해도 안 될 수도 있어요. 연구실에서 성공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리겠다 싶었어요.”

이른 성공에 대한 갈망은 그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다. 약대에서 실험하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경험은 영양제 스타트업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 그는 “당시 바이러스 질환에 노출돼 자가면역 질환자가 됐는데,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몸이 호전됐다”며 “어머니도 뇌 손상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영양제가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2019년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다가 첫 실패를 맛봤다. 마음이 괴로울 때는 글을 썼다. 이런 글들이 모여 이씨는 3개 시리즈를 출판한 장르 소설 작가가 되기도 했다. “창업 실패로 인해 불면증을 겪는 등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는데, 독자들 응원 댓글이 재기의 발판이 됐다”고 했다. 그는 이전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영양제 추천 솔루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창업으로 가족을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게 목표라고 했다.

앤틀러는 이들 4인의 창업가를 포함해 80명의 창업가를 6개월간 육성하고 있다. 우수 스타트업은 시드(초기) 투자 기회가 주어진다. 결과는 내년 1월 발표될 예정이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