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미소녀' 캐릭터를 빠트릴 순 없죠. '미소녀 덕후'들은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들의 팬심은 여느 아이돌 팬들 못지 않습니다. 이들을 겨냥한 미소녀 RPG(역할 수행게임)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 미소녀 캐릭터와 아이템을 NFT(대체불가능토큰)로 만든다면 어떨까요. 자신이 게임속 주인공이 되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미소녀 캐릭터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수익도 기대할 수 있는 게임이 있다면 말입니다. 국내 게임 스타트업 링게임즈가 제작한 '스텔라 판타지' 이야기 입니다. 게임 아이템을 NFT로 발행하고, 토큰 경제를 기반으로 게임 내 경제 생태계를 구성했다고 합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이들의 새로운 시도를 살펴봤습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흔치 않던 20여년 전 만화방, 도서대여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소년이 있었다. 수도권 외곽의 작은 동네에 살던 그는 책방에서 읽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로 만화, 소설, 잡지 등을 탐독했다. 닥치는대로 콘텐츠를 흡수하며 당시 충족되지 않던 문화적 욕구를 채워나갔다.
윤주호 대표가 지난 달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한경 긱스와 인터뷰를 하고있다. 최다은 기자 그러던 그는 20대에 작은 게임사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하며 게임의 세계에 들어갔다. 이후 22년간 몸을 담으며 PC·모바일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 산업을 경험했다. 2019년에 새로운 게임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동료들과 게임사를 창업했다. 그는 국내 최초로 아니메 스타일 게임에 블록체인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로 게임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블록체인 게임 스타트업 링게임즈의 윤주호 대표(41·사진) 이야기다. 오는 11월 게임 '스텔라 판타지' 출시를 앞두고 분주한 그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났다.
블록체인을 입은 미소녀 액션 게임
링게임즈는 전세계 1000만 다운로드를 넘긴 흥행작 ‘킹스레이드’ 제작진이 모여 설립됐다. "우리가 만든 게임을 직접 서비스 하고싶다"는 게 창업 이유였다. 제작, 유통, 배급사가 따로 돌아가는 기존 게임산업의 한계를 넘어 제작사가 이용자와 직접 소통하고 싶다는 취지에서다.
윤 대표는 사용자에게 게임을 직접 유통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블록체인의 '커뮤니티 기능'을 눈여겨 봤다. 특정 블록체인 프로젝트에서 이용자들이 팬처럼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보고 이런 방식을 게임에 접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외에서 열풍이 불었던 엑시인피티니 등 블록체인 기반의 플레이투언(P2E) 게임의 영향도 받았다. 게임 이용자가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주주처럼 게임에 참여하고, 이용자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로 팬층을 확보하는 방식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커뮤니티형 게임이라고 판단이 들었다. 크립토 세계에 '딥 다이브'된 윤 대표는 첫 게임으로 만들던 ‘스텔라 판타지’를 지난해 블록체인 프로젝트로 전환했다.
스텔라 판타지의 두드러지는 외형적 특징은 '아니메' 스타일의 그래픽이다. 다양한 미소녀 캐릭터들이 등장해 '딸 키우기 게임'으로 유명한 '프린세스 메이커'가 연상되기도 한다. 윤 대표는 "아니메 장르는 지금의 한류 콘텐츠처럼 남미·북미 등 글로벌 시장에 오랜 기간 큰 인기를 끌었다. 유럽의 코믹콘 같은 행사를 가도 전세계 사람들이 이런 스타일을 굉장히 좋아한다"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아니메를 좋아하는 글로벌 고객들에 다가가고 싶다"고 설명했다.
팬 베이스 유저 + 수익 창출
"원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과 웹3.0 기술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
스텔라 판타지의 타깃은 기존의 게임 애호가들이다. 이들을 블록체인 세계와 연결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게임은 자체 토큰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토큰 소유는 게임의 운영에 참여하는 주주로서 역할도 하게 된다. 윤 대표는 "토큰은 단순 현금화를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게임 운영에 필요한 자산의 가치로 보존된다"라며 "이용자들이 자신의 자산 포트폴리오처럼 애정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자는 게임이 인기를 끌수록 토큰(자산)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게임 커뮤니티도 발전하고 이용자는 외부 평가도 신경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게임은 캐릭터 컬렉션 RPG(역할게임)의 재미와 P2E 게임의 요소를 두루 체감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판타지와 SF 장르가 공존하는 게임 세계관 속에서 미소녀 캐릭터가 다양한 모험을 통해 성장하고, 캐릭터와 재화는 모두 NFT로 성장 및 거래가 가능하다.
캐릭터는 게임 내 활동으로 재화를 생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각종 재료를 모아 아이템을 강화게 만드는 수집형 RPG를 구조도 구현했다. 게임 콘텐츠를 즐기면서 게임 아이템 중 하나인 '캐릭터 조각'을 수집하면 새로운 캐릭터를 획득할 수도 있다. 게임 상에서 이용자가 강하면 캐릭터 조각을 많이 얻거나 좋은 캐릭터 조각을 획득할 확률이 높다. 보통 미소녀 게임은 시간이 지나면 그간 애정을 가지고 키웠던 캐릭터도 사라져버린다. 스텔라 판타지는 이런 불안요소를 해결한다. 스텔라 판타지에서 이용자가 보유한 캐릭터와 아이템은 모두 NFT로 만들 수 있어 영구적인 소유가 가능하다.
기존 P2E 게임의 '지루함'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그는 "'돈 버는 게임'의 노동적 요소 즉 단순 반복 플레이를 강요하는 방식은 한계가 명확했다"며 "이용자가 캐릭터와 성장하며 게임의 본질적 재미를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자가 게임 자체에 재미를 느끼게 되면 계속 게임을 하려고 할 것이다. 새로운 업데이트로 게임 운영사는 새로운 과금 요소를 추가하고, 이용자는 다양한 활동으로 아이템을 얻게 된다. 게임 자체의 재미뿐 아니라 게임 경험을 통해 특정 물건을 생산하거나 영지(게임 내 토지)를 관리하는 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용자 간 아이템 거래 NFT 판매 등으로 제작사는 수수료를 챙긴다. 이용자가 거래를 할 때마다 일명 아이템을 봉인하는 작업야하는데 봉인을 위해선 별도의 아이템이 필요하다. 이것도 게임 개발사의 수익 모델이다.
P2E 게임의 성공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엑시인피티니. 게임 캐릭터 및 상품을 NFT로 한정 판매하는 것 또한 기존 게임과 차별화된다. 보통 모바일 게임에서 새 캐릭터가 나오면 이용자는 돈으로 해당 캐릭터를 계속 살 수 있다. 하지만 링게임즈는 해당 콘텐츠를 시즌 별로 캐릭터별로 한정 판매한다. 나중에 특정 캐릭터나 아이템의 인기가 높아지면 해당 콘텐츠의 가격은 올라간다. 이를 통해 이용자도 돈을 벌 수 있다. 링게임즈는 장기적으로는 이런 게임 내 NFT를 지식재산권(IP) 사업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게임 캐릭터를 단순히 현금 가치로 판단하거나 활용가치로 생각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아이템을 인증하고 수집하고 싶다'는 수요가 있겠죠."
P2E 허용하는 글로벌 시장 노린다
NFT와 미소녀 캐릭터의 결합으로 스텔라 판타지는 벌써부터 팬덤을 결집하고 있다. 게임 정식 서비스 전에 북미, 일본, 중국, 동남아 등 전세계 게임 애호가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디스코드에 2만 3000명 정도 모여있는데 국가·언어별 방이 만들어져서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며 "지난 9월 1차 민팅(NFT 출시)에서 1800여개 NFT를 민팅했는데 완판됐다"고 덧붙였다.
스텔라 판타지는 전세계 가장 큰 블록체인 중 하나인 바이낸스 체인에서 운영하고 있다. 연내에는 이더리움 체인을 추가할 예정이며 향후 다른 여러 체인에서 게임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암호화폐 전문 미디어 더블록 산하 리서치기관인 '더 블록 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12월 21일 기준 블록체인 게임 생태계에 유입된 벤처 자금은 44억 7700만 달러로 전년(4200만달러) 대비 100배 이상 급증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아쉽지만 국내에서는 스텔라 판타지를 만나볼 수 없다. 현행법상 P2E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게임물관리법에 따라 정부는 '사행성 게임'을 금하고 있다. 게임을 통해 획득한 결과물을 환전하거나 환전을 알선하는 행위도 막고 있다.
링게임즈를 비롯해 국내 게임회사들은 P2E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링게임즈 역시 우선 글로벌 시장에서 안정화를 한 뒤 상황을 봐서 국내 서비스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아 600만달러(약 84억원) 규모의 프라이빗 라운드를 마무리했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회사이자 클레이튼 메인넷 개발사인 ‘크러스트 유니버스’, 블록체인 게임 퍼블리셔 ‘애니모카 브랜즈’, 블록체인 게임 기업 ‘플라네타리움’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특히 애니모카 브랜즈는 엑시인피니티 투자자로 홍콩의 가장 큰 크립토 투자회사로 알려져 있다.
"게임을 블록체인 방식으로 전환하고 지금까지 해외에서 IR를 220번 정도 했어요. 이 게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떤걸 만드려고 하는지 홍보를 계속 했죠."
"콘텐츠 흡수하며 내공 쌓아야"
국내에서 NFT 기반 수집형 RPG은 전에 없던 시도다. 윤 대표는 '창작자' 정신을 강조했다. 직원들에게도 항상 무언가를 보라고 조언한다. 창작자로서 내공을 평소에 꾸준히 축적해야한다는 취지에서다.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등 최근 인기를 끈 일본 만화는 신인 작가의 작품이이에요. 창작자들은 자기 내면에 감명받은 어떤 것들을 쌓아 글, 아트, 프로그램 등으로 재창조하는 거에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결국 고갈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으로 필요하죠. 일에 치여서 이를 게을리하면 퍼포먼스나 발상이 떨어지기 쉬워요. 그래서 이 분야의 직업 수명이 길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있죠. 게임, 영화 등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무한한 나선을 올라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만의 내공을 쌓아 경쟁력을 계속 길러야 합니다. "
보라색 동그라미 안에 표시된 작은 원(암호화폐 지갑)을 누르니 '하마스(Hamas)'라는 이름이 떴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즘 무장단체인 그 하마스다. 이 지갑에서 다른 지갑으로 화살표가 이어졌다. 화살표에는 여러 개의 비트코인이 작년 특정 시점에 이동됐다는 내용이 나타났다. 이 비트코인 가운데 일부는 한 암호화폐 거래소로 흘러갔고, 일부는 대체불가토큰(NFT)으로 거래됐다. 일부는 디파이(탈중앙화 금융) 서비스를 통해 다른 지갑으로 유입됐다. 이후로도 10여 차례 다른 지갑을 거쳐 한 지갑에 보관 중이라고 표시됐다. 암호화폐 거래소 쿠코인과 코인베이스에 있는 하마스의 지갑도 첫 지갑과 묶여 보라색 원 안에 구현됐다.18일 캐나다 암호화폐 추적업체인 블록체인인텔리전스그룹(BIG)의 솔루션 '클루'가 추적 중인 하마스의 자금세탁 흐름도다. 이날 BIG가 진행한 클루 설명회는 50명 가량의 국내 로펌과 육군·검찰·국정원·한국인터넷진흥원 등의 관계자들로 가득 찼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BIG는 약 60명의 개발자와 수사전문가 등이 모여 만든 '클루'로 알려진 암호화폐 범죄 추적 솔루션 업체다. 미국 국토안보부를 비롯해 세계 100여개 수사기관이 '클루'를 활용 중이다. 클루의 고객 41%는 정부 기관이며 11%는 로펌, 33.3%는 가상자산사업자 등이다. 신흥철 BIG 아시아 총괄은 "암호화폐 범죄는 급증하고 있지만 전문인력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며 "나날이 진화하는 불법 암호화폐 거래와 검거율 향상에 기여하는 동시에 수사 인력의 업무효율을 배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암호화폐를 이용한 범죄자금 세탁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마약이 대표적이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암호화폐를 이용한 마약사범은 2018년 85명에서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696명으로 8배 이상 폭증했다. 서울중앙지검이 수사에 착수한 약 10조원 규모 불법 해외송금 사건도 암호화폐 구입자금으로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윌리엄 캘러헌 BIG 전략담당이사는 "스페인 범죄조직이 중남미 거래소를 통해 자금세탁을 하고, 아프리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폰지사기가 성행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북한이 정부 지원 하에 사이버공격을 자행하는 등 국제적으로 암호화폐를 이용한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SNS상에서 마약 밀거래나 인신매매, 매춘이 모두 암호화폐를 통해 이뤄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한 국가 내에서의 협업이 아니라 국가간 협업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수사기관들이 어려움을 겪는 건 지갑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령 마약의 경우 국내 구매자와 판매자, 판매총책, 국제 마약 카르텔 주소까지 자금흐름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마약 자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암호화폐 거래 데이터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오픈 데이터지만, 앞선 '하마스' 사례에서처럼 범죄집단의 자금세탁 흐름을 알기 쉽게 보여주는 것이 추적 솔루션의 특징이다. 암호화폐 추적 솔루션을 원하는 국내 수사기관들도 늘고 있다. 앞서 경찰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4월 미국 체이널리시스의 암호화폐 추적 솔루션을 사들여 마약 수사 등에 활용하고 있다. 국세청도 이미 솔루션을 구입해 작년부터 서울지방국세청 첨단탈세방지담당관실 중심으로 암호화폐를 이용한 탈세 등을 추적하고 있다. 최근에는 10조원 이상의 불법 해외송금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추적 솔루션 구매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어떤 조직이 무슨 목적으로 누구에게 암호화폐를 보냈는지 시각화해 보여주는 솔루션이다. 암호화폐 범죄를 추적하는 국가 기관을 잡기 위한 업체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국내에서는 옥타솔루션이 자리를 잡았고, 체이널리시스와 BIG·웁살라시큐리티 등도 경쟁자들이다. 암호화폐 자금세탁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점도 수사기관의 이목을 끄는 이유로 꼽힌다. 거래소나 개인간 거래가 암호화폐 자금세탁의 주축을 이뤘다면, 지금은 스마트컨트랙트나 NFT·디파이를 이용한다.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디파이로 전송된 범죄자금의 규모는 작년에 이미 1조원을 넘어섰다. 클루는 ERC-20 토큰 40여만종, ERC-721계열 NFT 10만여개를 추적할 수 있다는 게 BIG의 설명이다. 가령 '피싱'으로 도난당한 BAYC(지루한원숭이요트클럽)가 어느 거래소에서 언제 이더리움으로 바뀌어 현금화됐는지도 '흐름도'로 보여주는 식이다. 신 이사는 "조사관이 자금의 방향과 흐름을 시간 순서에 따라 추적할 수 있다"며 "어떤 흐름으로 자금이 이동됐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수사 '트레이닝'도 BIG의 차별화 포인트다. 미국 마약단속국(DEA) 출신의 캘러헌 이사의 수사경험이 참석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캘러헌 이사는 미국 마약단속국(DEA)에서 뉴욕과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등을 관할지역으로 두고 20년 이상 근무한 자금세탁 수사 전문가로 작년 BIG에 합류했다. 그는 클루를 채택한 수사관들에게 암호화폐 자금세탁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제공할 전망이다.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인플레이션에 경기둔화가 겹치며 고가 물품들을 중고시장에 내놓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골프채 매물이 아주 많아졌고요. 샤넬 가방도 많이 나왔습니다. 물량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격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 관계자)중고거래 플랫폼이 경기 변동에 따른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비스 초기 대비 이용자 수가 늘어나고 거래하는 품목도 다양해지면서 시장이 안정기에 접어들며 의미 있는 통계 결과물을 도출할 정도로 누적된 빅데이터가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중고거래 시장 규모, 2008년 4조원에서 지난해 24조원으로18일 중고나라에 따르면 자사 플랫폼에 올라온 골프 드라이버 판매 게시글 수는 올해 1월 2218건에서 9월 6179건으로 급증했다. 샤넬 클래식백(모든 사이즈 포함) 가격은 같은 기간 1110만8444원에서 1025만3234원으로 떨어졌다.중고나라 관계자는 이 같은 데이터에 대해 "경기가 둔화하는 시기에 진입하다 보니 중고거래 양상을 통해 소비패턴을 분석하려는 수요가 많아 관련 데이터를 준비했다"며 "골프채, 명품가방 등 고가의 물품을 중고시장에 내놓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경기 변동 상황에 맞춰 이런 수치를 공개한 건 중고나라뿐만이 아니다. 번개장터는 올해 1~9월 남성 골프의류 거래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8%, 여성 골프의류 거래액이 76% 늘었다고 지난 13일 발표했다.업계에선 중고거래 플랫폼 시장의 규모가 일정 수준으로 커지며 안정기에 접어들었기에 이같은 데이터를 공개할 수 있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2008년 4조원 규모였던 국내 중고시장 규모는 지난해 24조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개별 플랫폼의 회원 수도 많아졌다. 이달 기준 당근마켓의 회원 수는 3200만명을 돌파했고 중고나라의 회원 수 역시 2500만 명에 달한다. 빅데이터 기반으로 수익성·마케팅 강화불어난 회원 수와 거래건수를 토대로 빅데이터를 누적한 중고거래 플랫폼들은 해당 데이터를 수익성 강화 및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치기반 서비스를 강조하는 당근마켓은 다른 중고거래 플랫폼 대비 지역과 관련한 데이터를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중고거래품목·거래액에 지역데이터까지 추가로 활용할 수 있는 당근마켓은 이 때문에 광고 수익모델로도 지역 자영업자 가게를 소개하는 시스템에 주력하고 있다. 가게의 위치와 이용자들의 거래 지역을 분석해 어느 지역의 이용자들에게 광고를 노출할지 효율적으로 타겟팅할 수 있는 것이다.당근마켓은 향후에도 누적된 빅데이터를 토대로 지역 비즈니스를 활성화할 예정이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농수산물·신선식품 등 지역 상권과 주민들을 더욱 긴밀하게 연결하는 온-오프라인 연계 로컬 비즈니스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2003년 네이버 카페로 시작해 오랜 업력을 자랑하는 중고나라는 풍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용자 맞춤형 거래를 제안하고 소비재의 라이프 사이클을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인공지능(AI)을 통해 이용자가 관심을 가질 법한 제품을 추천하듯, 중고거래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e커머스나 오프라인 매장이 제품을 판매하고나면 해당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을 더이상 추적할 수 없지만 중고나라는 최초 판매 이후의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중고나라 관계자는 "특정 기종의 휴대폰이 출시 이후 가격이 얼마까지 떨어지고, 언제까지 감가상각이 일어나는지 등 추가적인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시장 공략에도 활용될 듯최근 중고거래 플랫폼 업체들이 해외 시장 공략에도 적극 뛰어들고 있는 터라 빅데이터의 활용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해외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 당근마켓은 현재 캐나다·미국·일본 등 4개국 440개가 넘는 지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캐나다에서는 김용현 대표가 장기 출장으로 머물며 지역 문화와 이용자 반응을 살피는 등 사업에 힘을 주는 상황이다.최근에는 네이버가 북미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 '포쉬마크'를 16억달러(약 2조3441억원)에 인수했다. 네이버는 이를 통해 중고거래 플랫폼을 한국(크림)·일본(빈티지시티)·유럽(베스티에르)를 넘어 북미로 확장한 셈이다.한 중고거래 플랫폼 관계자는 "국내 거래로 쌓인 데이터를 그대로 해외 시장에 적용할 수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분명 국가와 상관없이 공통적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데이터를 토대로 각 국가의 특징을 고려하면 각 국가와 지역에 맞는 최적화된 전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
“딱 한가지 이루고 싶은 건 나스닥에 입성하는 거에요. 한국의 기술 스타트업이 나스닥 시장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렇게 외화를 벌어오는 회사들이 많아져야 우리나라가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지난달 한경 긱스(Geeks)와 만난 이한빈 서울로보틱스 대표(31·사진)는 사업 원동력으로 ‘창업보국’을 꼽았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을 강조한 고(故) 이병철 회장, '인류를 구하기 위해 화성으로 이주한다'는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연상되기도 한다. ‘한국을 빛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는 “일론 머스크의 화성 이주 수준의 규모는 아니지만 저희 능력으로 가능한 기술 창업으로 한국을 더 잘 살게 하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영리한 피봇팅으로 타깃 좁혔다기술로 국가 경제에 기여하겠다는 기업답게 투자 혹한기에도 지난달 약 308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이끌어내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2017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 3~4년간 3차원(3D)센서 컴퓨터 비전에 주력해왔다. 이 기술을 토대로 개별 고객사에게 소프트웨어를 공급해오던 중 지난해 말부터 물류업계 인프라 자율주행으로 타깃을 바꿨다. 회사는 3D 라이다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기술(ATI)'을 개발해 독일의 대표 자동차 업체인 BMW에 적용했다. 라이다는 레이저를 쏴 빛 주위의 물체에서 반사되어 오는 거리를 측정해 주변의 모습을 정밀하게 그려내는 기술이다. 소프트웨어는 라이다가 그려낸 3D 이미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장애물이 무엇인지 식별·인지한다. 고객 문제에서 출발최첨단 자동차 회사인 테슬라의 제조공장 주차장에도 수십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차가 만들어지고 트럭, 배, 기차 등에 실려 다음 차고지까지 차를 이동시키기 위해서다. 소비자에게 신차가 도착하기 까지 이같은 주차장을 3~6곳 정도 지나게 되고, 적어도 수십만원의 비용이 들게된다. 새 차를 뽑아도 몇백 km 정도 주행거리가 찍혀있는 있는 이유다.고객사는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력과 비용문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고객사의 고민을 들으며 그는 "미들마일 물류시장이 20~30조 정도 규모인데 조단위를 바라보는 대기업 제조사들이 진입하기에는 규모가 작고, 경쟁사에 비해 상용화를 먼저 한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서울로보틱스는 물류시장에 자율주행을 접목해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일반적인 자율주행은 개별 차량 안에 센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을 적용하지만 서울로보틱스는 프레임을 바꿔 인프라에 자율주행 시스템을 달아놓은 것이다. 대부분의 차량에 GPS와 커넥티드 기능이 있어 인터넷이 연결되기 때문에 이같은 기술이 가능해졌다. 인프라에 적용된 시스템이 차를 원격으로 자율주행 시키는 원리로 회사는 이를 '3인칭 자율주행'이라고 표현했다. 회사는 공장·자동차 물류 분야에서 BMW와 자율주행을 처음 상용화했다. 핵심기술인 3D 컴퓨터 비전은 독일 산업 리포트에서 세계 1위 기술력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이같은 높은 인지도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톱11 완성차업체 중 9곳과 협업을 준비 중이다.일반 자동차 공장에 300~400대의 자율주행 인프라가 들어가는데, 이 인프라가 한번 구축되면 매달 들어가는 인건비를 감축할 수 있다. 특히,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있는 해외 물류공장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해외 제조공장은 대부분의 외지에 있고, 단순 업무가 많아 근로자들이 근무를 기피하는 데 이들 대신 자율주행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노조의 파업이 벌어지면 완성차 조달이 막히는 사태가 벌어져도 공급에 차질이 없게된다. 트럭, 렌터카...마을까지 확대현재 차량 자율주행 기술은 레벨 3수준이다. 도심이나 주차장에서는 불가능하고 고속도로에서만 가능하다. 운전자가 개입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자율주행은 레벨 4 이상이 돼야 하는데 그 수준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서울로보틱스의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기술(ATI) 기술인 '레벨 5 컨트롤타워'는 레벨 5 자율성을 달성해 완전 자동화 방식으로 수백 대의 차량을 군집주행 할 수 있다. 개별 자동차의 센서에 의존하지 않고 건물이나 가로등 같은 인근 인프라에 배치된 센서·컴퓨터 메시 네트워크로 정확한 주변 환경을 포착해 독보적인 정확도, 효율성, 안전성을 갖췄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기존의 자율주행은 개별 차량에 고성능 센서와 컴퓨터를 장착해야 했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반면,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은 지능형 교통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사각지대를 없애 안전성을 높였다. 이같은 기술은 자동차뿐 아니라 여타 위탁제조업체(OEM)에게 적용할 수 있는 문제인만큼 회사는 향후 자동차에서 트럭, 렌터가 운송으로 시장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공장의 크기가 작은 마을 정도인데 거기서 수백대를 자율주행한다면 지역도 가능할 것 같아요. 조만간에는 도시가 차량을 움직이게 되는 세상도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많은 기업들이 차에서 최고가 되기위해 열심히 하고있듯, 저희는 인프라 자율주행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투자 혹한기 뚫고 생존하반기부터 본격화된 투자시장 냉각은 이제 돛을 펼치려는 서울로보틱스에게 악재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27세에 창업 전선에 뛰어든 이 대표에게는 전에 없는 위기가 닥쳤다. 회사는 커져가고 방향은 물류 자율주행으로 잡았지만 확장성이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자금 조달이 늦어지는 것도 실질적인 위기로 다가왔다. 투자 라운드가 끝나자마자 국내 투자시장 본격적으로 위축되면서 예상보다 자금확보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해외에서는 미리부터 겨울을 준비한다며 냉각돼 있었고 그 기세가 국내로 번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때는 정말 두번 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토로했다. 예상한 시기에 자금을 확보하지 못한 그는 사비로 직원들의 월급을 주고, 연대보증 대출까지 받게될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그는 "막바지에 투자유치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다행히 평생 빚쟁이 신세에서는 면하게 됐다"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믿어준 사람들에게 결과를 보여야한다는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보여줘야한다'고 거듭 반복했다. 더이상 가능성이 아닌 숫자로 결과를 증명할 시기가 왔다며 무거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제 매출 발생이 될거고 자생할 수 있으니까 정말 달려야죠. 투자받았다고 기쁘다고 파티할 여력 없어요. 저희는 생존했고, 약속한 만큼 우리를 믿어준 사람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 뿐이에요. "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