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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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2주 내로 새 휴대폰에 들어갈 스피커를 만들어주세요."

1997년 휴대폰 '거물' 모토로라의 제안을 받은 중국의 작은 음향기기 제조업체 대표는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모토로라는 새 휴대폰에 들어갈 소형 스피커 공급 업체를 찾고 있었는데, 기존 일본 대기업이 갑자기 "못하겠다"며 포기 의사를 표시해 신제품 출시에 차질을 빚는 상황이었습니다. 미국 시장 타진을 위해 샘플을 들고 여러 회사 문을 두드렸지만 문전박대를 당하던 이 스타트업은 결국 이 '황당한' 제안을 결국 수락합니다.
모토로라 공급사로 알려져…기업가치 '2조800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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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귀국한 제조업체 대표는 부랴부랴 스피커 신제품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보름 안에 스피커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계약은 파기될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모토로라의 요구는 상당히 까다로웠습니다. 인맥을 동원해 난징대 전기음향학 교수를 영입하는 등 천신만고 끝에 소형 스피커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시련은 또 있었습니다. 모토로라는 계약 조건으로 기존 일본 납품업체가 보유한 휴대폰 코일링 원천 기술을 새로 개발해 내라는 요구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밤낮으로 기술 개발에 몰두해 결국 이 역시 성공했습니다.

무사히 수주를 따낸 'AAC 테크놀로지'는 이를 계기로 단숨에 글로벌 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현재 전세계 플래그십 스마트폰 2대 중 1대꼴로 AAC 제품을 탑재하고 았습니다. 이 회사는 애플에게 매년 최대 171억위안(약3조4000억원) 상당의 제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애플을 고객사로 둔 700여개 부품 공급업체 가운데 마진이 TSMC에 이어 두 번째라는 게 업계 관측입니다.

AAC 테크놀로지의 특허는 8000개 이상에 달한다고 합니다. 애플뿐 아니라 삼성전자, 화웨이, 샤오미, 오포, 비보 등 내노라하는 스마트폰 제조사에게 부품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AC 테크놀로지는 2005년 홍콩증시에 상장하며 기업가치 2조8000억원(153억홍콩달러)에 이르는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스타트업 대표 역시 단숨에 중국의 유력 부호가 됐습니다.
간호사 사직서 던진 우춘위안…단숨에 유력 재력가로
사진=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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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AAC 테크놀로지를 설립한 부부 우춘위안과 판정민은 전직 간호사, 교사 커플입니다. 휴대폰 음향 부품 제조업체와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보이는 직업을 가졌던 이들은 어떤 계기로 회사를 설립하고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것일까요.

1971년 중국 장쑤성 창저우에서 태어난 우춘위안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지역 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였습니다. 그러던 중 수학교사 판정민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평범한 생활을 하던 이 부부가 음향 장비를 접하게 된 것은 시아버지 때문입니다. 당시 시아버지는 전기 제품 공장에서 개발자로 근무하면서 일본 등 해외 고급 전자기기를 접했는데 기기에 탑재되는 전자식 스피커에 대한 잠재력을 발견하고 전자 장비 제조업체를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빛을 본 것은 며느리인 우춘위안이 뛰어들면서입니다. 우춘위안은 특히 휴대폰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안정적 직장을 나와 1993년 선전에서 '위안위실업발전'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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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춘위안은 자금을 모아 주택 4채를 빌렸고 직원 10여명을 고용했습니다. 첫 번째 목표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국내 시장을 빠르게 점유하기', 두 번째 목표는 '글로벌 시장 개척하기' 였다고 합니다. 회사 성장을 위해서는 미국 시장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3년 뒤인 1996년에 미국에 음향 전문 부품 제조업체 AAC 테크놀로지를 설립했습니다. 통역사를 대동하고 방문한 미국 시장에서 이들 부부는 회사 안내데스크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97년 천신만고 끝에 모토로라 수주를 따내며 글로벌 시장에 등장한 겁니다.

당시 세계 최초의 폴더형 휴대폰 '스타텍'을 출시하고 급성장하던 모토로라를 고객사로 둔 덕분에 AAC 테크놀로지도 자연스럽게 '낙수효과'를 봤습니다. '기술력'과 '가성비'를 내세워 삼성전자, 노키아, 소니 등 유수의 기업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모토로라가 몰락한 뒤에도 2010년 애플의 공식 공급업체로 선정되는 등 부품 공급사로 압도적 양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매출액 10%는 R&D 투자…누적 특허 1만400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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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의 여왕'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사업이 안정됐지만 우춘위안과 남편 판정민은 도태되지 않기 위해 기술 투자에 매진했습니다. 전자업계의 빠른 세대 교체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해외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유수 기업을 인수하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에는 세계적 연구기관인 싱가포르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연구소를, 2010년에는 일본 오사카와 교토에 있는 광학렌즈 설계회사를 인수하는 등 공격적으로 특허 확보에 나섰습니다. 5년간 연구개발(R&D) 자금 4000억원 이상 쏟아부어 2018년에는 연간 출원한 특허가 2000건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AAC 테크놀로지는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싱가포르, 덴마크, 핀란드 등 세계 곳곳에 18개의 R&D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6300명 이상의 연구인력을 두고 있으며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이 10%에 달한다고 합니다.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누적 특허 출원 건수가 1만4000건으로 상당한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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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매출 176억7000만위안(약 3조6000억원)을 거둔 AAC 테크놀로지의 총이익률은 24.7%에 달했습니다. 음향 솔루션 외에도 최근 분야를 확장해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햅틱(촉각 기술), 광학 분야의 다양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스마트카, 스마트홈 기기, 증강현실(AR) 및 혼합현실(MR) 대중화를 대비한 부품 공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AAC 테크놀로지는 특히 스마트카 시장이 미래에 큰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더 많은 개발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자동차 업체와 적극 협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회사 관계자는 "휴대폰 사업에서는 높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사물인터넷(IoT), 스마트 홈, 웨어러블 디바이스 및 자동차 시장 등에서 추가 성장동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