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신약 후보물질로 임상 2상 중인 바이오벤처 A사는 임상에 들어가는 연구개발(R&D) 지출 대부분을 비용으로 회계 처리하고 있다. 이는 회사 손익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자금 조달에도 악영향을 준다. 회사는 신약 후보물질 상업화를 위한 R&D 지출은 ‘비용’이 아니라 ‘무형 자산’이라고 주장하지만 회계법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임상 3상 승인 전까지는 R&D 비용을 자산이 아닌, 비용 처리하도록 한 금융당국 감독지침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감독지침 내용을 바꾼 새로운 제약·바이오 산업 주요 회계처리 지침을 23일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신약 개발 산업의 특성을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회계기준적용 지원반을 구성해 지난 4월부터 석 달간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

제약·바이오 업계가 주목한 감독지침 변화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신약 개발에 드는 비용에 대한 자산 인정 범위 확대다. 지금까지 신약은 임상 3상 승인 전까지는 비용 처리하라는 게 당국 지침이었다. 임상 단계가 낮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실패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는 임상 1상 승인이 기준이었다.

새 지침은 임상 3상 승인 전이라도 R&D 비용을 자산화할 수 있도록 했다. 바이오시밀러는 임상 1상 승인 이전 지출도 자산 분류가 가능해졌다. 신약 벤처인 A사의 경우 임상 2상 개발 비용 일부를 자산화할 수 있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다. 신약이든 바이오시밀러든 후보물질이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비슷한 임상 개발 사례가 있거나 해외에서 유사한 후보물질로 임상 1상 승인이 난 경우 등을 실현 가능성 입증의 예시로 제시했다. 한 바이오벤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임상 3상 이전에도 자산화가 가능하다지만, 전임상이나 임상 1상에서 실현 가능성을 입증하긴 쉽지 않다”며 “당국이 지침 완화 생색만 냈을 뿐 회계 처리가 크게 바뀔 것 같진 않다”고 했다.

후보물질 기술이전 수익에 대한 회계처리 지침이 명확해진 것도 달라진 점이다. 통상 기술이전을 하면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업프론트)을 일정액 수령하고, 이후 임상개발 진행 상황에 따라 추가 수익(마일스톤)을 얻게 된다. 지금은 기술이전을 해 임상개발 과정이 완전히 회사 손을 떠났음에도 업프론트와 마일스톤에 대한 회계 처리를 계약 기간 동안 나눠 반영해야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술을 가져간 회사뿐만 아니라 제3자(임상수탁기관)가 자체적으로 임상개발을 수행할 수 있다면 기술이전 시점에 그에 대한 매출을 수익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짧은 기간에 기술이전에 따른 매출 증대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신약 개발 자금 조달 등이 좀 더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한재영/남정민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