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벤처들이 1~2년 전에 대거 발행한 전환사채(CB)가 주가 하락 국면에서 ‘부메랑’으로 돌변했다. CB 전환가격보다 주가가 낮아지자 ‘원금이라도 건지자’는 심리가 확산되며 채권자들의 CB 조기상환 요청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에만 프로스테믹스, 셀리버리,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 유틸렉스 등 바이오 기업 여덟 곳이 CB 조기상환 공시를 냈다. 프로스테믹스는 한 달 새 두 차례 상환이 이뤄졌다. 만기 전 CB 취득이 무조건적인 악재는 아니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바이오업계는 현금 상환이 쉽지 않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각에선 소형 벤처들의 줄도산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CB 조기상환이 발등의 불로 떨어지자 ‘급전’을 구하려는 바이오벤처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유상증자가 대표적이다.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는 지난달 26일 채무상환을 위해 599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에스디생명공학도 오는 10월 말부터 가능해지는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 행사에 대비해 유상증자로 352억원을 조달했다. 이 자금은 전액 채무 상환에 쓸 계획이다. 유틸렉스, 카이노스메드 등도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 수혈에 나섰다.

대주주가 지분을 매각해 회사에 대여하는 사례도 있다. EDGC는 창업자인 이민섭 부회장이 장외에서 주식을 팔고 그 대금을 회사에 대여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수혈했다. 대표이사가 개인 자금을 동원하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 빙하기인 상황에서는 3자 배정 유상증자가 여의치 않다”며 “지분율 희석 등의 문제도 있어 최근엔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실탄을 확보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문제는 지난 2년간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발행한 CB 총액이 ‘역대급’이라는 점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0~2021년 국내 바이오기업이 발행한 CB는 3조1650억여원어치에 달한다. 2015~2019년 5년간 발행한 CB(2조5900억원)보다도 22%가량 많다. 신약 연구개발과 임상이 활발해지면서 바이오벤처들이 CB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한 결과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이라는 본업을 제쳐두고 위탁생산(CMO),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 매출을 낼 만한 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바이오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