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내거는 '핵심 가치'는 그 회사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요? 멋들어진 '미사여구'를 벽에 붙여놓고 직원들을 독려하다는데 그친다면 아마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그 핵심 가치를 지속적으로 공유한다면, 그리고 기업이 펼치는 모든 활동의 근간으로 삼는다면 회사를 바꿀 수 있을 겁니다.

세계 최고의 혁신가로 꼽히는 스티브 잡스는 누구보다 '핵심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인물입니다. 회사의 모든 제품과 서비스가 일관되게 핵심 가치를 실현하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했죠.

'핵심 가치'가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조직원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추가영 레몬베이스 콘텐츠 리드가 한경 긱스(Geeks)를 통해 설명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누군가 회사의 핵심 가치(core value)를 묻는다면, 바로 답할 수 있나. ‘회사 홈페이지에서 봤는데, 회의실로 가다가 벽에 적혀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 있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핵심 가치란 리더가 조직의 성공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 구성원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데, 이들이 각기 다른 가치를 우선시하며 일한다면 성장이 둔화할 수 있다. 그런 사태를 막아주는 ‘필터’ 역할을 하는 것이 핵심 가치다.

맥스 리트빈 그래멀리 공동창업자는 포브스 기고를 통해 “핵심 가치는 지속할 수 있는 성장에 필요한 ‘비판적인 눈’이자, 중요한 비즈니스 결정을 내릴 때 필터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래멀리의 핵심 가치는 EAGER(Ethical(윤리), Adaptable(적응력), Gritty(투지), Empathetic(공감), Remarkable(주목성))이라고 명문화하고 있다. 이 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공감’을 핵심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사용자의 피드백에 공감하며 새로운 기능을 개발한다는 설명이다. 조직에서 핵심 가치가 살아 움직이기 위해선 일상적인 업무와 행동에서 가치가 실현되어야 한다. 특히, 지속적인 혁신과 확장이 이뤄지는 고성장 기업에서 핵심 가치의 이러한 역할은 더욱 강조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온라인 문법 검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그래멀리는 누적 4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하고 130억달러(약 17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아이디어스를 운영하는 백패커의 김동환 최고경영자(CEO) 역시 핵심 가치를 명시한 문화를 중심으로 채용이 이뤄지면서 성장 정체에서 벗어났다고 밝혔다. 백패커는 One Team(회사와 서비스 전체의 이익을 추구), Be Open(개방적인 커뮤니케이션) 등을 문화로 강조한다. 김 대표는 레몬베이스와 인터뷰에서 “일하는 방식을 명문화하면서 이런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기준이 생겼다”며 “그러면서 채용에 속도를 낼 수 있었고, 비즈니스적으로도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대비 아이디어스의 누적 거래액은 15배 이상 늘었다. ‘10인 이상 기업 중 최근 3년간 연평균 매출 혹은 고용이 20% 이상 증가한 기업’이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고성장기업(Scale-up)의 정의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알렉산드르 이조시모프 전 빌펠콤 CEO가 2008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를 통해 제시한 ‘초성장(hypergrowth)’의 정의인 연평균 성장률(CAGR) 40% 기준도 뛰어넘는다.

핵심 가치의 의미를 공유


오늘날 많은 기업이 핵심 가치를 수립하고, 문서로 공유하고 있다. 도널드 설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S&P 500 기업의 85%가 홈페이지에 핵심 가치를 공개하고 있다. 그는 또 1990년부터 2019년까지 HBR 인터뷰를 살펴본 결과, 250명 이상 규모의 영리기업 CEO 중 4분의 3 이상이 꼭 질문하지 않더라도 회사의 문화와 가치에 관해서 설명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기업 전부에서 리더가 전하는 대로 가치가 실현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설 교수의 연구에서도 기업이 강조하는 핵심 가치와 실제로 구성원들의 행동으로 관찰되는 문화 간의 상관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핵심 가치가 벽에만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행동으로 나타나려면 채용, 평가, 리더십 등에 모두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 채용을 예로 들자면, 가치 적합성(value fit)이 필터로 작용할 수 있다. 회사에서 제시하고 있는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 지원자는 걸러내야 한다는 의미다. 그동안 개인적, 직업적 삶에서 내린 의사결정의 이유에서 회사의 가치가 실현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가치와 문화 간의 관계는 다음의 정의에서 잘 드러난다. 제프리 레이포트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문화는 조직에서 구성원들이 상호작용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서로 협력하는 방식을 정의하면서 공유된 가치와 신념이다.

이처럼 주요 의사결정의 기준으로서 핵심 가치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각각의 가치에 대한 회사의 해석이 공유돼야 한다. 핵심 가치가 조직의 성과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의미다. 홈페이지에 핵심 가치를 공개하는 기업 가운데 4분의 1만이 이러한 의미까지 설명하고 있다고 설 교수는 전했다.
벽에 걸린 '멋들어진 문구'가 회사를 바꿀 수 있을까 [긱스]

공감대가 형성되면 성과 향상


초기 스타트업에선 창업자 개인의 일하는 방식, 성공에 대한 가치관이 기업의 핵심 가치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구성원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핵심 가치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리더와 구성원 간의 공감대가 있으면, 조직의 성과가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 큰 틀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이해함으로써 구성원 개인의 업무 목적에 대해서도 더 높은 이해를 가질 수 있어 몰입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그렇다면, 구성원의 몰입도가 높은 기업들은 어떤 핵심 가치를 내세우고 있을까.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드러커인스티튜트의 조사에서 구성원 몰입과 개발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상위 5개 기업의 핵심 가치를 취합해보았다.

혁신(innovation, innovative), 존중(respect), 진실성(integrity)이 중복되어 나타났다. 이러한 핵심 가치가 실제로 구현되기 위해선 관찰할 수 있는 행동 지침 혹은 행동 원칙으로 가치가 정의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구체적인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거나,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혁신만 놓고 보더라도 엔비디아, 세일즈포스, 어도비의 정의가 다르다. 엔비디아는 혁신에 대해 ‘크게 꿈꾸고 작게 시작하라. 위험을 감수하고 빨리 배워라’라고 설명하지만, 어도비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비즈니스로 실현하기 위해 늘 노력한다’고 강조한다.

조직적인 학습을 위한 콘텐츠 제공


핵심 가치가 뿌리 내리고 지속해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조직적으로 학습이 이뤄져야 한다. 구성원들은 활자화된 가치를 암기함으로써 가치를 체화하는 것이 아니다. 리더들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어떻게 행동했을 때 보상받거나 처벌받는지를 경험하면서 회사가 어디에 가치를 두는지를 판단한다.

관리자(manager)의 역할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는 관리자의 역할을 ‘Model Coach Care‘라고 정의하고 있다. 리더는 모범을 보이고, 구성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코치하고 돌보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갤럽에 따르면, 이처럼 구성원들의 성장과 몰입을 돕는 관리자가 있는 팀의 수익성이 23%, 생산성이 18% 높고, 이직률은 최대 43%까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리더와 잠재적인 리더인 구성원을 교육하는 것이 조직의 다음 과제다. 조직적인 학습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 중요한 것이 접근성이다. 즉,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는 사티아 나델라 CEO가 직접 관리자의 역할을 설명하는 짧은 영상을 링크드인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칭찬 역시 핵심 가치를 조직 전체에 퍼뜨리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구성원이 핵심 가치를 실현한 행동을 했을 때, 리더가 공개적이고 구체적으로 칭찬하고 인정할 때 이러한 행동을 강화할 수 있다.
벽에 걸린 '멋들어진 문구'가 회사를 바꿀 수 있을까 [긱스]
추가영 | 레몬베이스 콘텐츠 리드(Content & Communications Lead)
일하는 사람들이 성과를 내고 성장하는 방식을 혁신하는 스타트업 레몬베이스에서 쌓은 지식을 콘텐츠에 담아 널리 알리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레몬베이스에 합류하기 전엔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며 창업 정책, 혁신 기업을 일군 기업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으며 넷플릭스의 ‘자유와 책임의 문화’를 담은 『파워풀』을 번역했다. 이후 혁신을 이끄는 사람과 문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