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투자가 망설여지는 이유 중 하나는 어렵다는 것이다. 용어부터가 생소하다. 하나의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단어를 찾아봐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바이오 용어(꼬.꼬.바)’에서 낯선 제약·바이오 관련 용어를 알기 쉽게 풀어본다.[편집자주]
로이반트는 글로벌 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를 표방하는 회사입니다. (7월 2일 기사)
최근 SK플라즈마는 개발전문사업(NRDO) 비중을 늘리고 있다. (8월 10일 기사)

NRDO는 ‘(No Research Development Only’의 약어입니다. 일부 신약개발사가 추구하는 사업 전략 중 하나입니다.

‘연구 없이 개발만’이라는 직역으로는 어떤 전략인지 쉽게 와닿지 않습니다. 의약품의 연구개발(R&D·Research & Development)에서 연구를 배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겠습니다.

NRDO, 물질 도입해 가치 높여 되파는 전략

NRDO 기업은 학계 및 연구소, 기업 등에서 도입한 물질로 전임상과 임상 등을 진행합니다. 개발 단계를 진척시켜 후보물질의 가치를 높인 후 다국적제약사 등 다른 기업에 다시 기술이전하는 사업 전략입니다.

먼저 전통적인 신약 개발 과정이 크게 연구와 개발 단계로 나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연구단계는 새로운 후보물질들을 탐색하고 하나의 최종 물질을 확정하는 단계입니다. 대부분 어떤 질환을 목표로 신약을 개발할지 결정하는 일부터 시작됩니다.

질환의 원인이 되는 치료 표적을 정하고 수많은 후보 물질에서 몇 개의 물질을 선별하는 일, 물질을 최적화하고 최종적인 후보 물질을 선정하는 작업까지 통틀어 연구 단계라고 합니다.

의약품 개발 단계는 전임상과 임상 1~3상을 진행하고 규제당국으로부터 품목허가를 받기 전까지의 과정을 말합니다. 최종 신약 판매를 허가받기 위해 도출된 물질이 안전하고 효과가 있다는 것을 검증하는 단계입니다.

NRDO는 연구 단계를 수행하지 않고 다른 바이오기업이나 연구소로부터 이미 도출된 물질을 도입합니다. 이후 후속 단계의 임상을 진행한 후 다시 기술이전합니다.

예를 들어 전임상 단계에서 도입한 물질을 임상 1상 진행 중에 기술이전할 수 있습니다. 임상 1상을 마친 물질을 도입해 임상 2상 종료 후에 되팔 수도 있습니다.

도입한 물질의 개발 및 판매 권한을 되파는 경우에도 개발에 대한 일부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향후 진행될 단계별(마일스톤)과 경상기술사용료(로열티) 등을 받도록 계약하는 것입니다.

넓게 보면 NRDO가 포함된 신약개발은 여러 기업이 단계를 나눠 협업하는 전략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신약개발 전략을 통틀어 네트워크 R&D라고도 합니다.

미국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NRDO 기업 급증

미국에서 NRDO를 표방하는 바이오 기업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 이후입니다. KDB미래전략연구소는 신약개발 비용이 급격히 늘어나며 벤처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된 점을 그 배경으로 지목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신약개발 1건당 R&D 비용이 2억달러(약 2605억원) 수준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 10억달러(1조 3028억원) 이상으로 증가했습니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과감한 인수합병(M&A)도 NRDO 양산에 일조했다고 봤습니다. M&A 이후 인수한 기업의 비핵심 신약 후보물질을 기술이전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입니다.

개발 중인 물질에 대한 가치를 이른 시점에 인정받고 투입한 자금을 조기에 회수할 수 있다는 점은 NRDO의 강점입니다.

대표적인 NRDO 기업은 로이반트사이언스입니다. 2014년 설립된 이 회사는 현재 임상 2상 또는 3상 단계의 파이프라인이 10개가 넘습니다. 설립된지 10년도 안된 바이오기업으로는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는 이 회사의 독특한 사업 전략 때문입니다. 후기 임상단계의 파이프라인을 들여와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죠.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세 번의 상장 도전


국내 기업 중에서는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가 NRDO 전략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힙니다. 브릿지바이오는 코스닥시장 상장에 도전하며 NRDO를 추구하는 기업임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2018년과 2019년에 코스닥시장 상장을 위한 기술성특례평가에서 탈락했습니다.

당시 업계에서는 NRDO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평가에 반영됐다는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후보물질을 자체 발굴하지 않는 기업이기에 기술력에 대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분석입니다.

반전의 계기가 된 건 2019년 7월 베링거인겔하임과의 1조5000억원 규모 기술이전 계약입니다. 브릿지바이오는 2017년 레고켐바이오에서 도입한 BBT-877을 임상 1상 단계에서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이전했습니다.

대규모 기술이전 이후 브릿지바이오는 기술성 평가에 재도전해 각각 A와 A의 성적을 받았습니다. 코스닥 상장에 필요한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브릿지바이오는 2019년 12월 20일에 상장했습니다.

박인혁 기자 hy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