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쓸모없는 작품만 만듭니다. 쓸모있는 물건은 이마트에서 찾으시는 게 좋습니다. "

채널 소개부터 범상치 않다. 오줌싸는 강아지 로봇, 치킨 무를 뜯어주는 기계, 프라이드 치킨에 허니콤보 소스를 묻혀주는 기계…. '긱'(Geek)스러운 느낌을 물씬 자아내는 콘텐츠들이 채널에 가득하다. 궁금한 건 무조건 직접 만들어보는 영상콘텐츠 제작사 '긱블'(Geekble)의 이야기다.

2017년 만들어진 긱블은 일상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실제로 구현하는 과학·공학 영상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이다. 사명은 괴짜라는 뜻의 '긱'(Geek)에 '할 수 있다'(able)는 단어를 합쳐 만들어졌다.

한경 긱스(Geeks)가 지난주 서울 성수동의 긱블 사무실에서 박찬후 창업자(26·전 대표)와 이정태 신임 대표(30)를 만났다. 창업자 겸 대표였던 박 전 대표가 이달 말 병역 의무를 이행하게 되면서 이정태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가 신임 대표를 맡게 됐다. 박 전 대표는 최근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난 상태다.
이공계 콘텐츠 스타트업 긱블의 박찬후 창업자 겸 전 대표(왼쪽)와 이정태 대표(오른쪽)가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있다. 최다은 기자
이공계 콘텐츠 스타트업 긱블의 박찬후 창업자 겸 전 대표(왼쪽)와 이정태 대표(오른쪽)가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있다. 최다은 기자

"핫한 이공계 미디어 만들자" 창업 결심

"제게 창업은 언제 할지의 문제지 하고 말고의 문제는 아니었어요. "(박찬후 전 대표 겸 창업자)

박 전 대표에게 창업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다. 2016년 뉴미디어 붐이 일자 그는 미디어 산업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고, 주요 언론사들과 함께 '구글 뉴스랩'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박 전 대표는 "2016년 미디어 소비 그래프를 봤을 때 인터넷 미디어 소비량이 늘어가고 있었다"며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이·공계를 조망하는 매체는 없다는 생각에 휴학을 결정하고 2017년 1월 법인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포항공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공대생이었다.
긱블 유튜브 채널. 7월 기준 구독자수는 92.6만명에 이른다.
긱블 유튜브 채널. 7월 기준 구독자수는 92.6만명에 이른다.
현재는 유튜브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게시하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페이스북 영상 바이럴을 통해 시작했다. 그러던 중 페이스북에서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터졌고 국내에서도 하향세를 탔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뉴스 중심에서 지인 기반으로 축소되면서 첫 위기를 맞았다. 당시 유튜브를 중심으로 빠르게 옮기는 전략으로 긱블은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박 전 대표의 1인 미디어처럼 운영되던 긱블은 2018년 이정태 현 대표가 합류하면서 새 국면을 맞이했다. 방송국 PD를 지망하던 이 대표는 긱블의 가능성을 보고 팀에 합류했다. 그는 "당시엔 찬후님이 홀로 이끌어가는 1인 미디어 느낌이 강했는데 그보다는 하나의 회사로 브랜딩 해야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콘텐츠 사업부에 합류하면서 '쓸모없는 걸 멋지게 만든다'는 컨셉을 내세웠다.

"긱블은 어떤 출연진이 등장해도 1~2개월이 지나면 캐릭터가 생겨요. 긱블은 특정 인물에 의존하지 않는 회사로 브랜딩을 구축해 '유튜버'가 아닌 안정적인 프로덕션으로 정착했어요. "(이정태 대표)

3040 젊은 아빠들 홀렸다

긱블팀에는 PD와 메이커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메이커들은 주로 공대나 미대 출신 인재들로 영상에 직접 출연해 원하는 걸 만들고, 제작 동기 등을 설명한다.

의료기기를 설계하던 직원도 있고, PD 업무를 맡고있는 공대생 출신 직원도 있다. 박 전 대표는 "방송사는 이공계 분야 사람들이 역량을 발휘하기에 경직된 부분이 있었다"며 "이공계를 포함해 인력 구성과 역할이 다양하다는 점이 긱블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치킨을 우주로 발사하는 실험을 한 긱블의 콘텐츠. 유튜브 캡쳐
치킨을 우주로 발사하는 실험을 한 긱블의 콘텐츠. 유튜브 캡쳐
제작비용은 천차만별이지만 하나의 콘텐츠당 평균 600만~700만원 선이라고 한다. 간단한 실험이나 작은 제조가 필요할 경우 50만~100만원 정도로 비교적 저렴한 경우도 있다. 긱블은 헬륨 풍선을 띄워 치킨을 우주에 날리는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이런 콘텐츠는 풍선을 한번 날릴 때마다 180만원이 들어 수백만 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었다.

긱블의 누적 콘텐츠는 400여 개에 이른다. 콘텐츠 광고로 수익을 내고 있으며 긱블 오리지널 콘텐츠 외에 협찬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한다. 가장 인기가 높은 콘텐츠는 조회수 1000만회가 넘는다.
디즈니 영화 '업'처럼 풍선으로 떠오르는 집을 제작한 긱블.
디즈니 영화 '업'처럼 풍선으로 떠오르는 집을 제작한 긱블.
재미있는 점은 구독자의 연령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사업 초창기엔 18~24세 남학생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엔 30~40대 남성 구독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아빠들의 육아 참여가 늘면서 긱블이 아빠와 아이와 함께 놀 수 있는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육아는 엄마, 아빠가 비슷하게 분담하게 될 것 같은데 아빠와 아이가 할 수가 있는 생각보다 부족해요. 매번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보니 집에서 놀아줘야 하는데 우리 콘텐츠는 아빠와 아이가 모두 즐길 수 있는 교육 영상이라고 생각해요. "

"한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 꿈꿔요"

긱블은 최근 현대자동차 제로원,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코사인인베스트먼트, 대교인베스트먼트, CKD창업투자 등으로부터 시리즈 A 브릿지 투자를 받았다. 투자금액은 50억원 상당이다. 이번 투자에 참여한 현대차의 경우 긱블에 전략적 투자(SI)를 단행했다. 현대차는 내년 상반기부터 긱블과 콘텐츠를 협력할 계획이다.

회사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커머스 사업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최근 플랫폼 사업부를 신설했고 개발인력 채용을 준비하고 있다. 긱블은 콘텐츠 관련 공학 완구 커머스 '긱블샵'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르면 하반기에는 커머스 앱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완구를 시작으로 교구, 잡화 등 다양한 상품를 만들어 판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긱블팀은 미국 다큐멘터리 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과 영국의 'BBC 사이언스' 등 프리미엄 이공계 콘텐츠 제작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최다은 기자
긱블팀은 미국 다큐멘터리 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과 영국의 'BBC 사이언스' 등 프리미엄 이공계 콘텐츠 제작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최다은 기자
긱블팀은 "미국 다큐멘터리 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과 영국의 'BBC 사이언스'를 뛰어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전세계에서 인정받는 수준의 이공계 콘텐츠 제작사가 되겠다는 포부다.

"학교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우리 영상을 틀어주고 싶다고 연락받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뭔가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단순히 돈을 잘 벌고 성공한 회사가 아니라 한 산업 분야를 개척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