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들이 몰려있는 판교 테크노밸리 전경 /사진=허문찬 기자
게임사들이 몰려있는 판교 테크노밸리 전경 /사진=허문찬 기자
네이버카카오가 임직원들에게 근무 형태 선택권을 부여하면서 재택 비율이 높아진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게임사 개발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게임업계 특성상 전문 툴을 다루는 시간이 많아 재택이 쉽지 않고 하반기 신작 출시 일정이 몰려 대면 회의가 워낙 잦아졌기 때문. 게임사 직원들은 재택을 더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반면 사측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기간 신작 출시가 밀린 만큼 앞으로는 회사에 나와 업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네이버 카카오 재택이 게임계에 끼친 영향

21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국내 게임계 맏형격인 3N(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은 코로나19로 시행했던 재택 근무제를 지난 달부터 종료하고 전면 출근 체제로 전환한 상태다.

하지만 최근 네이버, 카카오, 우아한형제들을 비롯한 정보기술(IT) 기업과 삼성SDS, 롯데정보통신 등 IT 서비스 기업들이 출근과 재택근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시스템을 가동하면서 게임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다. 동종 업계인 카카오게임즈와 크래프톤마저 근무 형태를 유연하게 가져가고 있어 직접 비교가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네이버는 이달 4일부터 직원을 대상으로 '커넥티드 워크(원격근무)' 제도를 시행 중이다. 이 제도는 주 5일 내내 전면 재택근무(R타입·Remote-based Work)를 하거나 주 3일 이상 회사로 출근(O타입·Office-based work)하는 2가지 근무형태 중 하나를 자유 의지에 따라 고르는 된다.

네이버 전체 직원 4000여명 가운데 55%가 R타입 근무를 선택해 재택근무 선호도가 다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집과 카페, 호텔 등 원하는 장소 어디서나 업무를 볼 수 있다. R타입 근무를 선택한 직원들은 회사에 있는 개인 짐을 쌌다. 회사는 인당 4박스씩 무료로 짐을 옮겨주는 택배 서비스까지 지원했다.
네이버 카카오 사옥 [사진=각사]
네이버 카카오 사옥 [사진=각사]
O타입 근무를 선택한 나머지 45% 직원들 중 일부는 사무실로 출근했다. 다만 바로 출근하지 않은 직원들도 있다. O타입은 원하는 요일, 원하는 시간에 주 3회 이상 출근하면 된다. O타입 직원들에게는 사무실 고정 좌석이 배정되며 회사가 점심과 저녁까지 모두 제공한다. 선택한 타입이 자신과 맞지 않을 경우 교체할 수도 있다.

카카오도 이달부터 임직원이 자신이 선택한 장소에서 자유롭게 근무하는 파일럿 근무제와 '격주 놀금'(격주 주 4일 근무) 제도를 도입했다. 오후 2시부터 5시 집중 근무 시간으로 설정, 이 시간 음성 채널 활용을 권장하는 것 외에는 전면 자율성을 부여했다.

"판교러들은 네이버·카카오 소식에 민감"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게임사 개발자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판교의 한 카페에서 만난 게임사 현직 개발자는 "밀렸던 신작 출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윗선에서 개발자들을 엄청 압박하는 상황"이라며 "일하는 것 자체는 별로 불만이 없었는데 같은 업계에서 근무 형태에 대한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우리만 강제로 출근 당한다'는 심리가 판교에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개발자의 동료는 "개발자들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다. 회사에 나와야 성과가 나는 사람도 있고, 아무도 없어야 집중이 잘 되는 유형도 있다"며 "게임사들 몸집이 거대해지면서 초기와 달리 모든 걸 획일적으로 적용하려는 경향이 생겼는데 게임 개발은 행정이 아니다. 개발자들 특성을 고려한 근무 제도를 가동했으면 좋겠다"고 보탰다.

다른 관계자는 "네이버·카카오 영향이 크다. 판교러(판교 지역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을 지칭)들은 네이버·카카오 소식에 민감하다"며 "회사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게임사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무리라는 입장인데 그 회사 개발자들도 새로운 서비스를 계속 내놓고 업데이트도 자주 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판교역 개발자 채용 광고 /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판교역 개발자 채용 광고 /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이어 "하반기에 신작 출시 일정이 몰려 있기 때문에 재택은 꿈도 못꾼다"며 "야근 아니면 퇴근 후 재택 야근이라는 선택지만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반면 개발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집에서 근무하면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의견도 일부 눈에 띄었다.

사측 "신작 출시 앞두고 반드시 출근 필요"

게임사들은 최근 코로나19 확산이 다시 거세진 가운데 정부의 방역 지침이 변경되지 않는 이상 대면근무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게임 개발에 비대면 근무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모 게임사의 인사총무 직군에 재직 중인 한 임원은 "개발자 전용 업무 툴 같은 경우 꼭 회사에 나와야만 쓸 수 있다"며 "신작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는 다 같이 모여 회의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완전히 다른 영감이 나오기도 한다. 또 버그(오류)도 잡아야 하고 테스트도 계속 돌려야 하는데 이런 과정들을 재택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게 회사의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게임사들은 지연된 신작들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출근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다. 게임은 신작 효과가 사라지면서 이용자 수의 자연 감소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매출 하락과 직결돼 신작 출시와 정기적인 업데이트를 위해선 출근이 필수라는 것.

지난해 4월 게임개발자컨퍼런스(GDC) 조직위원회가 전세계 게임 개발자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4%가 코로나19로 게임 개발이 늦어지는 상황을 겪었다고 응답한 점도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근거로 쓰인다.
판교테크노밸리 / 사진=허문찬 기자
판교테크노밸리 / 사진=허문찬 기자
신작 부재가 장기화하면서 게임사들은 줄줄이 부진을 겪었다. 넷마블은 올 1분기 10년 만에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고 지난해 오딘 신화를 쓴 카카오게임즈도 올 1분기 전분기 대비 매출, 영업이익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웹젠, 펄어비스 등도 신작을 내놓지 못하면서 올 상반기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뿐만 아니라 국내 게임사의 올해 2분기 실적 역시 기대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대부분의 증권가 게임산업 보고서는 '올 2분기 실적은 컨센서스 하향'으로 의견이 모였다. 특히 매출 주 수입원인 모바일 게임 경우 시장 규모 자체가 줄어들어 실적 기대치가 낮아졌다. 게임담당 연구원들은 각 게임사가 신작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대형 게임사들은 신작을 쏟아내 매출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다만 지난달 17일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사내 간담회에서 재택근무 도입 여부에 대해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도 최근 사내 간담회에서 재택근무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져 장기적으로는 근무 형태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IT 업계의 근무 형태 논란은 애플, 구글, 테슬라,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에서도 벌어지는 문제"라며 "결국 소수의 고액 연봉 개발자들만 일부 출근하고 전체적으로는 재택으로 가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