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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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물량기반조달(VBP)을 통해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 60개에 대한 가격을 48% 낮췄다고 13일 밝혔다.

중국의 VBP 정책은 2018년 도입됐다.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의약품을 제공하는 제약사에게 국공립 병원에 납품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입찰에 실패한 제약사들은 시장 비중이 작은 민간 병원에 납품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 국영방송인 CCTV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VBP에 포함된 약품이 차지하는 중국 의약품 시장은 300억위안(약 5조8200억원) 규모다.

이번 VBP에는 에자이의 간암 치료제 ‘렌비마’, 아스트라제네카의 고혈압 치료제 ‘셀로켄(토프롤 XL)’, 화이자의 신장암 치료제 ‘수텐’, 베링거인겔하임의 2세대 EGFR 폐암 치료제 ‘지오트립’, 로슈의 1세대 EGFR 폐암 치료제 ‘타세바’와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 길리어드사이언스의 항바이러스제 ‘베믈리디’, 노바티스의 항구토제 ‘조프란’과 호르몬제 ‘산도스타틴’ 등이 포함됐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렌비마 제네릭(복제약)의 평균 약가는 108위안(약 2만원)이지만, VBP를 통해 최종적으로 낙찰된 가격은 18위안(약 3500원)이었다. 6분의 1 정도로, 치료 주기당 약 8100위안(약 157만원)이 저렴하다.

이처럼 제네릭을 생산하는 제약사들이 값싼 가격으로 입찰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위장약 ‘오메프라졸’의 경우 총 27개의 제약사가 입찰하기도 했다.

중국 의약품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바이엘의 고혈압 치료제 ‘아달라트’와 일본 스미토모 제약의 항생제 ‘메로페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번 VBP 경쟁에서 바이엘과 스미토모는 입찰을 따내지 못하고, 제네릭에 자리를 내줬다. 두 의약품(제네릭 의약품 포함)이 중국 국립 병원에서 벌어들이는 매출만 매년 10억달러(약 1조3046억원)다.

이번 입찰에서 계약에 성공한 오리지널 의약품은 단 4개다. 화이자의 항생제 ‘티가실’, 아스텔라스의 항진균제 ‘마이카민’, 알미랄의 항생제 ‘케스틴’, 이탈리아 브라코이미징의 수용성 조영제 ‘이소부’다.

제약업계 전문가는 “여러 나라에 의약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중국에서만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하기란 어렵다”며 “국립 병원을 포기하고 민간 병원들에 집중하거나 신약 개발에 투자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해 입찰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부 글로벌 빅파마는 VBP 정책이 시행된 이후 중국에서의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VBP에서 바이엘은 항응고제 ‘자렐토’의 계약에 실패했다. 다른 지역에서 자렐토의 매출이 모두 올랐음에도 올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억4000만유로에서 10억900만유로로 5% 감소했다.

아스트라제네카 역시 위기다. 아스트라제네카는 글로벌 빅파마 중 중국에서 가장 큰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VBP에서 셀로켄의 계약 실패가 매출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2021년 셀로켄 매출 9억5100만달러 중 98%가 중국을 포함한 신흥 시장(emerging market)에서 발생해서다. 아스트라제네카에서 해외사업판매를 총괄하는 레온 왕 책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문제와 VBP 등으로 인해 “올해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중국 사업이 가장 어려운 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중국은 지난해 말 당뇨병 치료를 위한 인슐린 제품 16종(42개)에 대해 VBP를 시행했다. 그 결과 평균 48% 저렴한 가격으로 의약품을 제공받는다. 인슐린 제품을 판매하는 노보노디스크, 사노피, 일라이 릴리 등은 제품의 가격을 대폭 할인했다. 중국 인슐린 시장의 절반을 점유하는 릴리는 올해 글로벌 매출이 3% 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