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과 양자컴퓨터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그런데 최근 덴마크의 다국적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생명과학 분야에 활용될 수 있는 양자컴퓨터 연구에 2억달러(약 28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엔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이 양자컴퓨터 연구를 위해 구글과 손을 잡기도 했습니다. 양자컴퓨터는 어떻게 신약 개발에 활용될 수 있는 걸까요.양자컴퓨터의 최대 강점은 빠른 정보 처리 속도입니다. 기존 디지털 컴퓨터를 압도합니다. IBM에 따르면 현존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가 10억 년 걸리는 문제를 양자컴퓨터는 100초 만에 풀 수 있다고 합니다. ‘양자’의 영문이 ‘퀀텀(quantum)’인데, 획기적인 진일보를 흔히 ‘퀀텀 점프’로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양자의 정보 처리 속도가 디지털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이유는 정보 처리 방식의 차이에 있습니다. 디지털은 정보를 ‘0’과 ‘1’로 나눠 ‘비트’라는 단위로 처리합니다. 하지만 양자는 ‘0’과 ‘1’이 ‘큐비트’라는 단위로 함께 처리가 가능합니다. ‘중첩과 얽힘’이라는 양자적 특성 때문에 가능하다고 합니다. 박성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양자기술연구단장은 “엄청나게 많은 경우의 수 조합을 양자컴퓨터는 한꺼번에 계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양자컴퓨터의 이런 특성은 신약 개발에 안성맞춤입니다. 신약 개발은 질환과 관련된 유전자, 단백질을 찾아내 이를 없애거나 활성화시킬 수 있는 최적의 물질을 찾는 과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표적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최적의 구조를 가진 화합물을 찾는 게 핵심입니다. 하지만 수만 가지 화합물 조합을 일일이 실험해보는 건 불가능합니다.여기에 양자컴퓨터의 빠른 정보 처리 능력이 활용될 수 있는 겁니다. 최적의 화합물 구조를 찾는 데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구조를 찾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것이죠. 신약 개발 기간 단축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가장 원하는 목표입니다. 신약 개발 업계에서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입니다.노보노디스크는 생명과학 특화 양자컴퓨터 개발 프로젝트 기간을 12년으로 잡았습니다. 첫 7년간은 하드웨어 개발에 집중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산업에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플랫폼 사이즈를 키울 계획입니다. 이 회사는 특히 양자컴퓨터 기술이 곧 도래할 개인 맞춤형 의료의 핵심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유전체 데이터 분석과 100조 개 넘게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의 상호작용 연구를 통해서 말입니다.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간 이식은 말기 간질환자가 간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한 최선의 치료법이다. 이식받은 간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수술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면역력 관리가 관건이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체내 미생물인 장내 유익균(마이크로바이옴)이 간 등 면역 상태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증명했다.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최종영 교수 및 인천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이순규 교수팀이 간 이식 후 평균 10년 이상 지난 환자의 혈액을 분석한 결과, 건강한 사람에 비해 간 이식 환자는 기능성 장내균총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연구팀은 간 이식 후 장기간 지난 환자 27명과 건강한 대조군 20명의 혈액 및 장내균총을 비교했다. 환자들은 모두 혈액검사 결과 간 기능이 정상으로 유지됐는데 그중 22명은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고, 5명은 면역억제제를 중단한 면역관용 환자였다. 혈액 면역세포 분석 결과, 간 이식 환자들은 대조군에 비해 면역항상성 유지에 중요한 조절 T세포가 감소했고, 염증성 세포인 T 도움 17세포는 증가했다.장내균총 분석 결과에서 간 이식 환자들은 이식 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대조군에 비해 장내균총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균총의 구성이 달랐다. 면역력을 높이는 장내 유익균인 페칼리박테리움이 가장 감소했다는 것도 확인됐다. 간 이식 환자의 페칼리박테리움 감소와 불안정한 면역상태가 연관돼 있다는 뜻이다. 또 간 이식 환자의 혈액을 이용한 실험에서 페칼리박테리움을 투여해 보니 감소된 조절 T세포가 회복됐다.이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기능성 장내균총을 규명할 수 있었다”며 “간 이식 환자의 면역상태를 예측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 및 면역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약제 개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최 교수 역시 “기능성 장내균총을 이용한 신약이 개발된다면 간 이식 후 면역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방사선 치료의 수십 배 효과를 내며 ‘꿈의 암 치료법’으로 불리는 중입자 치료 시대가 열린다. 연세의료원이 3000억원을 투자해 최신 중입자치료기 및 관련 센터를 완공하고 내년 3월부터 국내 최초로 중입자 암 치료를 시작한다. 세계 16번째다. 국내 암 치료 판도에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2분 만에 치료 후 귀가…통증 없어윤동섭 연세의료원장(사진)은 지난 19일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미래 치료 패러다임을 밝혔다. 윤 원장은 “중입자치료기는 탄소 원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뒤 치료기를 통해 에너지빔을 암세포에 정밀 조사한다”며 “질량이 무거운 만큼 기존 양성자치료기와 방사선치료기보다 월등한 치료 효능을 보일 것”이라고 했다.중입자가 암에 닿는 순간 강력한 방사선 에너지를 방출해 암세포 DNA를 없애는 원리다. 이때 암세포 주변 정상세포는 거의 파괴되지 않는다. 중입자는 양성자보다 질량이 12배가량 무거워 암세포를 훨씬 많이 파괴할 수 있다. 국내 처음으로 도입하는 중입자치료기는 고정형 한 대와 회전형 두 대다. 회전형은 360도 회전하며 중입자를 쬐기 때문에 어느 방향에서든 환자의 암세포를 목표로 할 수 있다. 치료기는 입자를 가속하는 장비인 싱크로트론과 치료장비인 회전 갠트리로 구성됐다. 싱크로트론은 가로 20m, 높이 1m 크기로 만들어진다. 회전 갠트리는 무게 200t에 길이는 9m에 달한다.치료 횟수와 기간도 짧다. 초기 폐암은 1회, 간암은 2회로 치료가 끝난다. 환자 1인당 치료 시간은 2분 정도로 매우 짧은 데다 통증도 없다. 입원하지 않아도 되며 치료 후 바로 귀가할 수 있다. 치료 준비 과정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석 대로 하루에 환자 50여 명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본격적인 환자 치료는 시험 가동을 거쳐 내년 3월부터 이뤄질 예정이며, 치료 예약은 오는 10월부터 받는다. 연세의료원은 중입자치료기 의료장비와 전용 건물, 의료진 연수 등 이번 프로젝트에 3000억원을 쏟아부었다. “난치암 생존율 향상”…비용은 고가윤 원장은 “중입자 치료는 암세포 외에 다른 정상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 보니 부작용과 후유증 위험이 낮아진다”며 “중입자 치료를 통해 3대 난치암으로 꼽히는 췌장암과 폐암, 간암의 생존율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어 “중입자 치료가 가능한 암은 혈액암을 제외한 모든 고형암이지만 특히 산소가 부족한 환경의 암세포에 강력한 효과를 보인다”며 “골·연부 조직 육종, 척삭종, 악성 흑색종 같은 희귀암 치료는 물론 전립선암 치료 등에도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세계적으로 중입자 치료가 가능한 병원은 10여 곳에 불과해 해외 원정 치료 시 소요되는 비용은 1억~2억원에 달한다. 국내 환자가 주로 찾는 일본은 1994년 세계 처음으로 중입자 치료를 시작한 이후 현재 중입자 치료센터 일곱 곳을 가동 중이다. 연세의료원은 중입자 치료 시설이 완공되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협의를 거쳐 치료비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외국 사례를 고려하면 국내 치료비 역시 수천만원에 달할 전망이다.윤 원장은 “그동안 연세의료원이 국내 의료계를 선도해 온 로봇수술 외에도 빅데이터, 유전체 정보 등 데이터사이언스와 세포치료제 기반 정밀의료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