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물류기업 마켄 "특허절벽 대응해 인천에 물류센터 개소"
“2024년 찾아올 ‘특허 절벽(Patent Cliff)’에 대응하기 위해 인천에 물류센터를 개소했습니다.”

15일 만난 애리엇 반 스트리엔 마켄 글로벌 대표(사진)는 인천에 대규모 물류센터를 세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특허 절벽이란 특허에 기반해 강력하게 시장을 장악하던 제품이 특허 만료와 함께 매출이 급감하는 현상을 말한다. 특허 만료로 경쟁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의약품의 경우엔 저렴한 가격의 복제약들이 시장에 쏟아져 기존 신약의 입지가 줄어드는 일이 일반적이다.

마켄은 글로벌 물류업체 UPS의 자회사다. 완제 및 임상 의약품을 배송하는 업체다. 마켄은 지난 9일 3305㎡(약 1000평) 규모 물류센터를 인천 청라신도시에 열었다. 이 회사가 아시아에 보유한 17개 물류센터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스트리엔 대표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시장은 더욱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며 세계는 지금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며 “인천 물류센터 개소는 여기에 한 발 앞서 대응하는 것은 물론, 마켄이 한국 고객사와 협력관계(파트너십)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2024년부터 주요 블록버스터(연매출 1조원 이상의 의약품) 바이오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위탁개발생산(CDMO) 공장이 위치한 한국에서 관련 물류가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다. 또 인천국제공항까지 물류 배송을 최소화하기 위한 위치 선정이었다.

현재 특허 절벽을 앞둔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은 바이엘의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 존슨앤드존슨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텔라라' 등이다. 아일리아 특허는 미국 2023년, 유럽 2025년 만료된다. 스텔라라는 미국 2023년, 유럽 2024년이다. 글로벌 매출 1위 의약품인 휴미라의 미국 특허도 내년 풀린다.

인천 물류센터는 상온(섭씨 15~25도), 냉장(2~8도), 냉동(-15~-25도), 초저온(-30,-40,-80도)까지 다양한 온도 제어시설을 갖췄다. 1800L급 극저온(-80도) 저장소 6기도 구축했다. 극저온 보관을 요구하는 세포 및 유전자 치료제를 위한 전용 저장소다. 마켄은 인천 물류센터급 물류거점을 세계 25개국에 32개소(인천 포함)를 갖고 있다.

스트리엔 대표는 “한국은 이미 바이오의약품 물류의 중심”이라며 “또한 우수한 의료 환경(인프라)으로 글로벌 제약사들이 선호하는 임상 거점”이라고 했다.

마켄은 극저온 유통이 핵심인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반 코로나19 백신은 물론, 1회 투여에 수억원 하는 세포·유전자 치료제를 세계 220개국으로 배송할 수 있는 저온유통망(콜드체인 네트워크)을 갖고 있다.

그는 “극저온 유통이 필요한 첨단 바이오의약품 시장의 성장, 국경의 의미가 사라진 희귀병 임상시험 증가가 의약품 물류를 바이오 산업을 지탱하는 기둥으로 키워놨다”고 말했다.

"콜드체인 의약품 계속 늘어날 것"

햇빛이 들지 않는 곳, 습기가 적은 환경에 온도는 섭씨 1~30도. 아스피린이나 인슐린 주사제 등 기존에 널리 쓰이는 의약품의 보관 기준이다. 저분자 화합물 의약품뿐 아니라 인슐린 같은 단백질 제제는 이전까지 까다로운 보관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이후 의약품 물류가 요구하는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다.

mRNA 기반 코로나19 백신을 운송하기 위해선 영하 20~70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지난해 세계로 공급된 mRNA 코로나19 백신 물량만 547억 달러(약 706조원). 콜드체인은 과거 특수한 의약품을 배송하던 ‘특별 코스’에서 주류로 자리 잡았다.

스트리엔 대표는 “최근 한 대에 8000달러(약 1000만원)인 냉동고를 1000개 구입했다”며 “계속 증가하는 콜드체인 물류에 대비해야 했다”고 말했다. 주문 후 6~8주면 받을 수 있던 냉동고를 이젠 6개월이 지나야 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콜드체인 물류의 성장으로 수요 증가를 공급이 따라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콜드체인 수요가 과포화될 경우 세계의 적재적소로 가야할 상당수 첨단 의약품의 발이 묶일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유행이 잠잠해지면 백신 등 콜드체인 물류량이 줄지는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한 스트리엔 대표의 답은 “절대 그렇지 않다”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mRNA 백신 임상만 148건”이라며 “여기에 쓰이는 임상의약품 물류 시장, 이후 허가를 받아 등장할 새로운 mRNA 백신 등 앞으로도 콜드체인 물류량은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모더나는 mRNA 기반 계절 독감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스트리엔 대표는 “콜드체인은 평가절하되던 세포치료제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날개'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국내에서도 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나 자연살해(NK)세포 치료제 연구개발이 한창이다. 그러나 대부분 환자의 피에서 면역세포를 직접 채취해 맞춤형으로 배양해야 한다는 점에서 국내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환자 유래(자가) 세포치료제를 개발 중인 각국의 세포치료제 업체 모두에 해당되는 얘기다.

스트리엔 대표는 “마켄은 초를 다투는 환자의 혈액 샘플과 세포치료제를 적시에 운송할 수 있도록 24시간 GPS 추적 및 콘트롤타워를 운영하고 있다”며 “세포치료제가 단순히 수억원에 이를 만큼 비싸서가 아니라 환자의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에 쏟는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마켄은 싱가포르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3곳에서 콘트롤타워를 배치했다.

증가하는 희귀병 임상…D2P가 핵심

마켄은 한국(코로나19 유행 중 임시)을 포함한 82개국에 의약품을 환자에게까지 직배송해주는 'D2P(Direct to Patient)' 서비스를 하고 있다. 단순히 의약품을 배송해주는 것뿐 아니라 투약이 어려운 의약품의 경우 의료진이 동행하기도 하고, 환자로부터 검체를 받아오는 일까지 하고 있다. 스트리엔 대표는 “콜드체인 물류 경쟁사는 일부 있지만 마켄 수준의 D2P 서비스를 함께 구축한 곳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D2P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큰 분야는 희귀병 임상시험이다. 희귀병은 환자가 적어 소수의 임상기관에서만 임상을 진행해선 충분한 환자를 모으기가 어렵다. 스트리엔 대표는 “코로나19 유행 당시 떠오른 분산임상과 함께 마켄의 D2P 서비스가 그 해결책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마켄이 맡는 D2P 운송만 한달에 1만5000건”이라며 “보수적으로 잡아도 매년 2배씩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