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감성은 인공지능(AI)에 가장 어려운 도전 영역입니다. 대표적인 분야가 미술·문학과 더불어 음악입니다. 곡에서 배어나는 짙은 서정성이나 활기, 애잔한 슬픔을 AI는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AI 작곡 스타트업 포자랩스(POZAlabs)의 허원길 대표(29)가 그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답합니다. 기사 서두에 AI가 작곡한 곡도 들을 수 있습니다. 한경 긱스가 '편안하고 차분한 음악'을 주문하자 포자랩스 AI는 5분만에 재즈 선율의 피아노곡을 내놨습니다. 감상해볼까요.
음악 분야 MZ(밀레니얼+Z) 세대 스타트업 대표라니, 어쩐지 상당한 ‘외향인’일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다. 예상과 달리 수줍은 인상에 조심스러운 말투를 지닌 '외유내강형' 창업가를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AI 작곡 스타트업 포자랩스의 허원길 대표(사진)가 주인공이다.
포자랩스의 허원길 대표가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포자랩스의 프로그램을 활용해 5분 만에 2분짜리 곡을 만들어냈다. (아래에 링크해 둔 음악이다.) '#편안한 #듣기좋은 #차분한 #카페 #피아노' 태그를 가진 재즈 발라드라고 한다. 기계적이거나 부자연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포자랩스가 자사의 AI 작곡 프로그램으로 만든 2분 길이의 잔잔한 재즈 음악. 이 음악은 포자랩스의 음악구독 플랫폼 'viodio'에 업로드 될 예정이다.
"창작자들 음원 사용 부담 덜어줄 것"
2018년 1월 만들어진 포자랩스는 편곡, 믹싱, 마스터링, 사운드렌더링 등 작곡 과정을 자동화하고 약 50만개의 데이터를 학습시켜 퀄리티를 높인 AI 작곡 스타트업이다. 허 대표는 "한 곡의 음악을 만드는데 사람이 2~3일 걸린다면 AI는 5분만에 가능하다"며 "직접 작곡한 다량의 음악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만든 음악들로 기존 AI 음악 가운데 퀄리티 측면에서 압도적"이라고 자신감을 비췄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네이버를 비롯해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KB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수십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있다. 최근 서비스 출시와 함께 새로운 투자 유치를 진행중이다.
포자랩스는 AI음악 구독 플랫폼 'viodio'를 오는 31일 출시할 예정이다. 사진은 샘플로 만들어진 viodio 사이트 화면. 포자랩스 제공지난달 31일엔 AI가 작곡한 음악을 제공하는 플랫폼 서비스 'viodio'를 정식 출시했다. 1인 크리에이터를 위한 구독 서비스로 AI가 작곡한 15가지 장르, 18가지 분위기의 음악 5000여 개를 월 1만 29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유튜브, 라이브커머스, 틱톡 등 1인 영상 크리에이터들이 급증하면서 BGM(배경음악) 시장도 함께 커지고 있다. 영상마다 여러 개의 BGM이 필요하지만 유튜브에서 무료 제공하는 음악은 3000여 개. 퀄리티도, 종류도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음악을 직접 제작 의뢰해 첨부하자니 저작권료가 만만치 않다. 1인 창작자에게는 시간적·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담이었다. 수요·공급은 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상황. 포자랩스는 이런 틈새를 겨냥해 첫 공식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설명했다.
'개인음악 시대' 연다
“일반 사람들이 음악을 잘 몰라도 대부분 좋아하는 음악은 있잖아요. 우리는 데이터를 통해서 음악을 만들다보니 그 음악에 들어가는 데이터들을 토대로 비슷한 곡을 새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
포자랩스는 이용자가 좋아하는 음악을 넣으면 비슷한 다른 음악을 만들어주는 기술을 개발했다. viodio에 해당 기능을 연내에 추가할 예정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크리에이터를 위한 BGM 시장만으로는 한계점이 분명했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는 쥬크덱(JukeDeck), AIVA(에이바), Amper Music(앰퍼뮤직) 등 여러 AI작곡 업체가 있다.
타사에 비해 음악의 퀄리티가 높다는 것만으로 지속가능성을 말하긴 부족했다. 온라인에는 무료 음원을 제공하는 사이트만 십여 곳이 넘는다. 그렇다고 어쩌다 얻어 걸릴 대작이나 히트곡을 기다리며 사업을 유지할 순 없는 노릇이다. 기술의 난이도나 들이는 품에 비해 수익성에는 의문이 남는 시장이었다.
이 가운데 포자랩스는 AI음악에서 나아가 '개인화 된 음악'에 초점을 맞췄다. 이용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넣으면 컬러링, 메타버스 등에서 활용가능한 나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 viodio에 특정 음악을 넣으면 비슷한 다른 음악을 만들어주는 기능을 연내에 추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기능은 영상제작 시장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게 허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저작권 문제로 같은 드라마라 해도 지상파, OTT, 유튜브 등 플랫폼마다 쓰이는 음악이 다 다르다보니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며 "같은 곡은 아니지만 비슷한 분위기로는 가야하기 때문에 이런 분야에 (포자랩스 기술이)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에 따라 어울리는 음악을 자동으로 생성해주는 기술도 개발중이다. 이를 위해 최근 김선주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를 기술 고문으로 영입했다. 김 교수는 컴퓨터 비전 분야 전문가로 AI를 활용한 영상처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난관1. 인내심..."재미와 확신으로 버텨"
AI에게 작곡을 학습시키는 것 자체가 큰 산이었다. 작곡가들은 직접 작곡을 하며 음악 데이터를 제작하고, 개발자들은 미디 파일을 AI가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로 가공처리하는 작업을 했다. 작곡가와 개발자의 합작품인 셈이다.
'음악다운' 결과물로 재조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음악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규칙도 학습해야 했다. 딥러닝 자연어처리(NLP) 기술이 적용됐다. AI는 이를통해 각각의 음표와 악보의 규칙을 일종의 언어로 해석한다. 이를테면 C Major(다 장조) 음계에서 '도레미파솔라시도'가 나와야 하는 것처럼 화성학 규칙, 조성 체계 등 다양한 음악 법칙과 데이터를 학습하게 된다.
포자랩스의 AI작곡 기술은 작곡가와 개발자의 합작품이다. 작곡가는 음악 데이터를 규정하고 학습데이터를 만들고, 개발자는 이를 AI가 이해할 수 있도록 가공처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생각보다 '노동집약적'인 작업이었다. 음악의 장르도 다양하고, 각각에 해당되는 데이터를 규정하고 이를 만들어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힙합에는 재즈, 로-파이(Lo-Fi), 얼터너티브 등 여러 하위 장르가 있다. 이를 잘 구분해주지 않으면 AI 입장에서는 학습 과정에서 혼란을 겪는다. 각 세부 장르에 대해서도 충분한 분석을 통해 음악 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시켜야 한다.
이런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포자랩스는 설립 후 약 5년 만에야 첫 공식 서비스를 출시하게 됐다. 2017년 첫 투자를 받은 이후 쭉 고난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이미 비슷하게 AI작곡·작사를 하던 다른 스타트업은 '피봇'(사업아이템 전환)을 했고 창업멤버들은 회사를 떠났다.
"노동집약적 작업이 수년간 이어지며 힘들었습니다. 이른바 '데스벨리'라는 기간에 힘든 과정을 많이 겪으며 지금의 상태에 이른 것 같습니다. 일단 (사업이) 되면 너무 재밌을 것 같았고 사업적 기회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
난관2. 개발자-작곡가 소통
허 대표는 음악의 언어, 컴퓨터의 언어를 모두 이해하는 ‘하이브리드형’ 인물이다. 5살때부터 15살까지 10년간 피아노를 쳤고 고교 시절 한창 '알파고 붐'이 불면서 AI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로인해 컴퓨터과학을 전공했지만 밴드 동아리에서 키보드를 담당하는 등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AI동아리에서 공모전을 준비하며 AI를 좋아하던 음악과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했다.
음악와 AI를 동시에 사랑해온만큼 작곡가와 개발자 양측의 소통에도 능하다. 포자랩스의 전체 25명의 직원 중 7명이 작곡가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개발자 직원이라고 한다. 양측이 끊임없이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하는 탓에 이들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잘 된 건 아니었다. 둘다 전문성이 강한 분야인 탓에 표현 방법, 주로 쓰는 용어, 사고방식 등이 달라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작곡가님이 리버브 효과, EQ를 추가하거나 어떤 악기 구성을 바꾸는 작업들이 필요할 때, 왜 필요한지에 대해 설명을 개발자님에게 해줘야 되잖아요. '이게 뭐가 달라졌다는 거지 ...' 하는 질문에 '웅장함과 공간감을 주기 위해서 이런 기능들이 필요하다' 이런식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줄 알아야하는 거죠. "
포자랩스는 소통을 강조할 뿐 아니라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공지능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개발자에게 작곡 강의를 제공하며 서로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돕고있다고 한다.
"모두가 음악하는 것이 목표"
국내외 다양한 빅테크 기업들도 AI 음악에 관심을 갖고있다. AI음악이 플랫폼에서 활용될 여지가 많다는 관측이다.
지난 2월 애플이 인공지능(AI)으로 작곡하는 영국 스타트업 ‘AI 뮤직’을 인수한 것이 눈에 뛰는 사례다. 이 스타트업은 AI가 상황·연령·용도에 따라 알맞은 음악을 창작한다. 아마존 웹서비스(AWS)는 작곡하는 AI 기술 '딥컴포저'를 2020년 출시했다. 선율 한 소절을 입력하고 장르를 정하면 AI가 몇 초 만에 원하는 음악을 완성해준다. 틱톡이 인수한 '쥬크덱'도 코카콜라나, 구글 등 대기업과의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AI음악에 대한 기대가 커져가는 가운데 포자랩스의 궁극적 목표는 누구나 음악을 만들고 활용하는 것이다. 카메라가 많은 사람을 크리에이터의 세계로 이끌었듯 전문화된 영역이던 음악도 기술의 도움으로 누구나 작곡을 할 수 있게끔 한다는 취지다.
허 대표는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의 음악을 만들어 컬러링으로 사용하고, 자신의 메타버스에서 배경 음악으로 넣는 등 다양하게 활용 수 있도록 기술을 더욱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참, 한 가지 더
AI가 만든 포자랩스 음악, 정말 표절 이슈는 없을까?
포자랩스는 이미 있는 음악 데이터로 학습시키지 않는다. 자체 작곡한 음악을 만들어 학습시키기 때문에 저작권에서는 자유롭다.
그러나 하루에 올라오는 음악만 해도 몇 만 개가 넘는 요즘, 사실 최근엔 표절이 아닌 음악들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BGM용 음악의 특성상 서로서로 비슷한 느낌이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아무리 자체 데이터를 활용해도 우연의 일치로 AI가 이미 있는 음악이랑 똑같은 음악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확률적으로 낮지만 0%라고 말하긴 어렵다는 것.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AI 학습 데이터 안에 이전에 있던 데이터가 없고 나름대로 창작의 과정이 있으니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는 게 포자랩스의 설명이다.
뇌 질환 영상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뉴로핏이 정부 지원을 받아 ‘치매 전자약’ 개발에 나선다. 전자약은 전기신호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장치로, 최근 치매나 뇌전증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뉴로핏은 보건복지부가 공모한 ‘2022년 제1차 보건의료기술 연구개발 사업’의 전자약 기술 개발 분야 연구 기관으로 선정됐다고 14일 밝혔다. 오는 2026년까지 19억원을 지원받을 예정이다.선정된 연구 과제는 ‘고정밀 경두개 직류 전기자극을 이용한 알츠하이머병 치료 기술 개발’이다.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광주과학기술원(GIST)과 함께한다. ‘고정밀 경두개 직류자극기(tDCS)’의 임상 근거를 확립하는 것이 주요 목표다. 최종적으론 tDCS의 식품의약품안천처 3등급 의료기기 허가를 획득한다는 계획이다.뇌 자극 치료는 알츠하이머 발병 원인 물질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 생성 지연 및 배출 촉진에 효과가 있다는 평가다. 뇌 염증 반응 조절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위축된 뇌를 자극하는 치료다 보니 두뇌 구조를 고려한 정밀 자극이 필요하다.이번 과제에서 쓰이는 기술은 뉴로핏이 개발한 뇌 영상 치료 설계 소프트웨어(SW) ‘뉴로핏 테스랩’과 tDCS ‘뉴로핏 잉크’를 결합한 형태다. 뉴로핏의 AI 기반 뇌 분석 기술을 토대로 기존 tDCS와는 달리 환자별 뇌 구조에 최적화된 치료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뉴로핏은 2016년 설립됐다. 뇌 구조 분석 AI 플랫폼 ‘뉴로핏 세그플러스’, 퇴행성 뇌 질환 진단 솔루션 ‘뉴로핏 아쿠아’ 등을 만들었다. SBI인베스트먼트, 코오롱인베스트먼트 등이 주요 투자자다. 지난해 말 19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를 진행하기도 했다.빈준길 뉴로핏 대표는 “인구 고령화로 인해 국내외 치매 환자가 지속해서 증가 중이고 사회·경제적 비용도 늘고 있다”며 “뇌 자극 치료를 기존 대증 치료제 처방과 병행하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 시기다. 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사람들은 대출 문턱도 높다. 대형 은행 등 제1금융권에 가면 대출이 거의 안 되고, 저축은행을 찾으면 연 20% 가까이 이자를 내야 한다. 김성준 렌딧 대표가 중금리 대출 시장에 뛰어든 계기도 자신의 '대출 좌절'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유망 스타트업을 운영했던 그가 한국에서 P2P(개인 간 거래) 대출 서비스를 내놓게 된 스토리를 한경 긱스(Geeks)가 들어봤다. P2P 금융 서비스로 익숙한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온투업) 1호 스타트업인 렌딧의 김성준 대표. 그는 창업에 큰 영향을 줬던 인연으로 스티브 블랭크 전 스탠퍼드대 교수를 꼽는다. 블랭크는 스스로 연쇄 창업가이자 '린 스타트업' 이론의 토대를 구축한 인물이다. 국내에서《린 스타트업》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에릭 리스의 스승이다. (*린 스타트업은 기사 맨 아래 추가 설명이 있다.)"스탠퍼드 대학원 시절 블랭크 교수님이 하신 '린 런치패드'라는 창업 관련 수업이 있었습니다. 학생이 40명인데 멘토도 40명 들어와요. 학생 4명씩 팀을 짜서 10팀 정도로 구성되는데 팀마다 멘토가 4명씩 붙는 거죠. 우리로 따지면 김택진(엔씨소프트 창업자) 같은 분들이 멘토로 들어옵니다. 그 수업에서 저의 두 번째 창업인 '스타일세즈'가 시작된 거죠." '린 스타트업' 창시자 수업 들으며 창업 도전김 대표가 이 수업을 듣게 된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학생들은 수강 신청을 할 때부터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 프로젝트 제안서를 내야 한다. 그 제안서를 평가해 수강생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김 대표는 '그루폰' 같은 공동 구매 커머스 플랫폼의 대안을 제시했지만 수강 신청에 실패했다. 블랭크 교수를 찾아가 따졌지만 "공동 구매 모델은 이미 너무 많이 다뤄졌다"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러면서 블랭크는 한마디 덧붙였다. "나중에 자네의 자서전에 '스티브(블랭크의 이름), 당신이 그때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내가 증명해냈어'라고 적힌 문구가 나오길 기대하겠네. 오랫동안 실리콘밸리에 있었지만 나 역시 자주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학생들이 있었지. 나는 자네처럼 창업가 마인드를 갖춘 학생들이 정말 좋네."이 말을 들은 김 대표는 거절당했다는 좌절감보다는 더욱 의지가 솟았다고 했다.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창업가 교수님의 진심 어린 말씀이어서 더 각인됐던 거 같습니다. 20대 중반까지 한국에서 교육받고 일해왔던 저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김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두 번째 수업 전에 공동 교수였던 앤 미우라-고를 찾아가 다시 설득했고, 블랭크도 또 한 번 찾아갔다. 결국 '끈질김'에 두 손을 든 교수님들의 허락에 린 런치패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수업을 통해 창업한 패션 커머스 플랫폼 스타일세즈는 창업 초기 꽤 잘나갔다. 김 대표는 대학원 2년 과정 중에 1년이 남아있었지만 결국 자퇴를 결심하고 사업에 몰두했다. 사진 기반 소셜미디어 핀터레스트를 통해 홍보를 강화하자 가입자도 크게 늘었다. "어느 날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사 앤드리슨호로위츠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앤드리슨호로위츠는 핀터레스트 투자사이기도 했죠. 저희에게 흥미로운 모델이라며 핀터레스트에 합류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인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당시 핀터레스트는 그냥 예쁜 이미지를 모아둔 플랫폼이란 느낌이었고, 우리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스타일세즈는 이용자들이 빠르게 늘었지만 미국 특유의 '물류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서비스였다. 미국은 배송료도 비쌀 뿐만 아니라 거리에 따라 배송되기까지 일주일 이상 걸리기도 했다. 구매 한 달 이내에는 무조건 반품을 보장해야 하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작은 규모로 시작했을 때는 괜찮았지만 서비스를 확장하면서 늦은 배송과 반품 문제 등에 고객 불만도 늘어갔다. 스타일세즈는 서비스 개시 3년가량을 지나면서 매출이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같이 일하던 팀원들도 떠났다.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략 3000만원 정도면 미국에서 라면 먹고 살면서 4~5개월 정도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죠. 미국에서는 사업 자금을 위한 대출이 어려울 거라 생각하고 2014년 12월 한국에 잠깐 왔죠." 은행 대출 거부당하고 중금리 시장 개척김 대표는 먼저 3000만원을 빌리기 위해 제1금융권을 찾았다. 하지만 번번이 대출을 거절당했다. 할 수 없이 저축은행으로 발길을 올렸다. 그런데 저축은행도 3000만원을 다 빌려줄 수는 없고, 절반인 1500만원까지 대출해주는데 금리가 연 22%라고 했다. 제1금융권 대출 금리가 연 4~5% 정도였던 때다. 좌절하던 김 대표는 우연히 미국의 렌딩클럽 상장 소식을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 앱을 깔아봤다."정말 신기하게도 다다음 날이 렌딩클럽 상장일이었어요. 저축은행에서 충격받고 나서 서울에서 렌딩클럽 앱을 내려받아 대출을 시도해봤죠. 대출 3만달러 정도 알아봤는데 이자가 연 7.8%로 나오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죠. 미국에서 그리 오래 생활하지도 않은 외국인에게 3만달러를 이 정도 금리에 빌려준다는 게 놀랄 만한 일이었어요."김 대표는 렌딩클럽이라는 회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이 금융 서비스가 얼마나 클 수 있을지 연구했다. 한국 시장이 놓치고 있는 중금리 대출 서비스의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급하게 미국으로 돌아가 5년 정도 생활하며 쌓인 짐을 다 욱여넣고 창고에 맡겼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그렇게 그는 2015년 초 P2P 대출 서비스업체 렌딧을 창업했다. 자신의 좌절 경험과 함께 '왜 한국에는 제1금융권과 제2금융권 사이에 중간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곳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결합한 창업이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작년 6월 국내에서도 온투법(온라인 투자 연계 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발효되면서 렌딧은 날개를 폈다. '2021-1'이라는 등록번호가 말해주듯 렌딧은 국내 온투업 1호 업체가 됐고, 개인 신용대출 1위 회사로 우뚝 섰다.개인 투자자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을 온라인으로 빌려주는 P2P 대출. 이제 많은 사람에게 낯설지 않은 서비스가 됐다. 신용등급이 은행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제2·제3금융권의 고금리 대출로 내몰리는 이들에게 새로운 대출 창구로 떠올랐고, 투자자들에겐 쏠쏠한 수익을 안겨주는 투자처로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이제는 P2P보다는 온투업이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 온투업법 발효 등으로 단순히 개인 간 거래를 넘어 법인들도 시장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투업체들은 개인 또는 법인에서 투자금을 받아 개인이나 기업에 대출을 해준다. 은행과 달리 예금은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투자받은 만큼만 대출해준다. 따라서 투자 총액이 곧 대출 총액이다.온투업법이 발효된 이후 지금까지 약 50개사가 온투업체로 등록됐다. P2P 사업 초기에 수백 개에 이르는 스타트업이 뛰어들었던 것에 비하면 ‘우량 업체’와 ‘부실 업체’의 옥석이 가려지는 분위기다. 온투업 1호 '렌딧' 누적 대출 2700억원렌딧은 2015년 5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누적 대출액 2700억원에 이른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정교하게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렌딧 스코어'(LSS)라는 자체 평가 기준을 개발했다. LSS는 한국신용정보원과 신용정보업체 나이스신용평가에서 받은 300여 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개인 신용도를 1000점 만점으로 점수화한 지표다.대출 신청자의 월 소득, 부채 정보, 신용카드 사용액, 통신비와 공과금 연체 여부, 거주 지역의 전셋값, 매맷값 변동 추이 등을 AI로 분석한다. 예컨대 소득액이나 소비액이 들쭉날쭉하면 위험도가 올라가는 구조다.LSS 점수를 기준으로 대출자의 신용을 평가해서 금리를 차등 적용한다. 연 4.5~19.9%까지 적용되고, 평균 적용 금리는 10%대 초반이다. 저축은행 금리가 최고 20%, 신용카드 대출이 15% 정도이니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김 대표는 “아직도 너무 많은 사람이 신용에 비해 과도한 이자를 부담하고 있다”며 “렌딧의 대출 규모가 1조원대로 성장한다면 한국 금융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렌딧에 투자금을 넣은 개인 또는 법인의 투자 수익률은 얼마나 될까. 김 대표는 "평균 투자 수익률이 연 7% 정도"라고 설명했다. 렌딧은 다른 온투업체와 달리 철저히 개인 신용대출에 집중하고 있다. 리스크(위험) 관리가 쉽지 않은 법인이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우리가 압도적인 기술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신용평가 모델을 바탕으로 한 비대면 대출”이라며 “법인이나 부동산 대출은 직접 가서 현장을 확인해야 하는 데다 기존 금융사들이 더 잘한다”고 말했다.렌딧은 중간 정도의 신용도를 가진 대출자를 집중 공략한다. 대출 실적이 쌓일수록 신용평가 모델을 정교하게 다듬고 있어 리스크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신용도가 낮은 고객을 늘리고 있는데도 렌딧의 손실률은 2%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김 대표는 렌딧의 정체성은 ‘핀테크(금융기술)’가 아니라 ‘테크핀(기술금융)’ 기업이라고 말한다. 핀테크는 금융회사가 소비자 편의를 높이는 수단으로 기술을 접목한 것이라면, 테크핀은 기술을 기반으로 금융을 혁신한다는 뜻을 강조하는 개념이다.그는 “미국도 과거에는 은행 아니면 카드론이었지만 P2P 대출이 전체 개인 신용대출 시장의 10% 수준까지 늘었다”며 “한국은 P2P 대출 비중이 아직 1%도 되지 않아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강조했다. "큰돈보다는 사회 문제 해결하고 싶다" 김 대표는 서울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KAIST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원으로 유학 가기 전 한국에서 사회적 기업 '2분의 1 프로젝트'도 세웠다. 스타트업 세이브앤코를 이끄는 박지원 대표와 대학 시절에 공동 창업했다."시작은 너무 더운 어느 여름날 사서 마신 500㎖짜리 콜라 한 병이었어요. 그때 저는 콜라 양이 너무 많아 지하철을 타기 전에 남은 콜라를 버렸어요. 그런데 그날 유튜브에서 아프리카의 한 아이가 물이 없어서 소의 소변을 받아먹는 장면을 본 겁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세계 인구의 51%가 의식주에 소비하는 일평균 금액이 2달러 이하라고 했고요. 제가 사 먹은 콜라가 2000원 정도였던 게 떠올랐고, 그걸 다 먹지 않고 버린 데서 자괴감을 느꼈습니다."김 대표는 충격을 받고 이런 기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다 무엇이든 반만 담아서 파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2000원을 주고 물을 사면 1000원에 해당하는 절반의 물만 통 속에 들어 있다. 소비자가 낸 나머지 1000원은 기부되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널리 퍼뜨릴 수 있겠다 싶어 창업에 뛰어들었다.큰 기대를 안고 시작했던 첫 번째 양산 제품은 초콜릿이었다. 초콜릿을 팔아서 절반에 해당하는 가치만큼을 당시 발생했던 아이티 재난 관련 구호단체에 기부하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대학생이던 김 대표 등 공동창업자들이 감당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너무 컸다. 좀 더 큰 프로젝트인 '절반 저금통'이나 '절반 물통' 역시 단위가 커지면서 많은 사비가 들었다. 결국 사업을 지속하기 힘들었고 첫 번째 실패를 맛봤다.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겪은 두 번째 실패가 스타일세즈다. 김 대표는 세 번째 창업인 렌딧을 통해 한국의 고금리 대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신용 대출 규모가 400조원가량 됩니다. 이 가운데 40% 정도가 10% 이상 고금리인 제2금융권에서 빌리는 것이죠. 주로 서민들인데 이자를 조금만 낮춰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렌딧이 1조원가량을 대출해 주면 15만 명이 총 700억원의 이자를 절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3~4년 뒤면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아래 동영상 촬영·진행 도움=이미나 렌딧 이사)1.렌딧은 어떤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가치를 주고 있는가.2.'렌딧 임팩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참, 한가지 더린 스타트업이란?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린 제조(lean manufacturing)’ 방식을 차용한 것으로, 스티브 블랭크 교수의 제자였던 벤처 기업가 에릭 리스가 만든 말이다. 아이디어를 빠르게 시제품으로 일단 만들어낸 뒤 내놓아 시장의 반응을 보면서 다음 제품 개선에 반영하는 전략이다. 짧은 시간 동안 제품을 만들고 성과를 측정해 다음 제품을 개선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식이다. 몸집이 가벼운 스타트업 생리에 맞는 경영 전략이다. 드롭박스, 에어비앤비 등 실리콘밸리 주요 스타트업들이 이런 방식을 활용해 성장했다.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신테카바이오는 ‘지비엘스캔’을 활용한 약물 민감성 검증 시스템 및 이를 통해 발굴한 생체표지자(바이오마커)의 국내 특허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공동으로 등록했다고 14일 밝혔다.특허의 정식 명칭은 ‘약물 민감도 판단을 위한 유전자 검출 방법 및 진단용 조성물’이다. 신테카바이오와 안전성평가연구소(KIT) 연구팀이 식약처의 지원으로 수행한 연구개발사업의 결과란 설명이다. 지난 2월 국제학술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연구 결과가 게재됐다.지비엘스캔은 신테카바이오의 인공지능(AI) 기반 분석 플랫폼이다. 신테카바이오는 이번 연구에서 지비엘스캔을 활용해 예측한 특정 유전자의 발현량이 약물의 민감성에 영향을 주는 바이오마커로 작용함을 밝혀냈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특허 등록은 회사의 AI 플랫폼을 신약개발 전주기에 적용할 수 있다는 확장성을 보여준 것”이라며 “또 다른 플랫폼인 ‘딥매처’로는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지비엘스캔으로는 바이오마커를 발굴해 신약개발 속도와 성공률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이도희 기자 tuxi0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