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는 최근 456억달러(약 57조원)로 평가받는 자사의 기업가치를 3분의 2인 40조원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인데 지금 몸값으로는 원하는 액수를 받기 힘들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2. 국내 프롭테크 1위 업체인 직방은 최근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를 추진하면서 기업가치를 2조4000억원으로 매겼다. 올초 시장에선 몸값이 3조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20% 낮춘 것이다. 투자 유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기존 주주들의 구주는 더 할인된 기업가치 2조원에 평가받고 있다.
스타트업들이 모여 있는 서울 테헤란로의 빌딩 사이로 한 시민이 25일 걸어가고 있다. 최근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스타트업 투자 시장도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범준  기자
스타트업들이 모여 있는 서울 테헤란로의 빌딩 사이로 한 시민이 25일 걸어가고 있다. 최근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스타트업 투자 시장도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범준 기자
‘투자 겨울’이 오고 있다는 분위기가 국내외 벤처 투자 시장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세계 큰손들이 투자를 일제히 줄이기 시작한 데 이어 국내 벤처투자 증가세도 꺾였다. 특히 시리즈 D~프리IPO 등 후기 단계 투자를 추진 중인 스타트업들이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리즈B 이하 초기 단계 스타트업들은 투자 유치가 여전히 원활하지만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도 시차를 두고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얼어붙는 글로벌 벤처투자

25일 미국 벤처투자 정보업체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지난 4월 한 달 동안 세계 신규 벤처투자 규모는 470억달러(약 59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12% 급감했다. 지난해 2월(490억달러) 이후 15개월 만의 최저치다. 신흥 벤처투자 유망지역으로 떠올랐던 남미 지역에선 이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남미의 1분기 벤처투자 규모가 34억달러로 지난해 4분기 대비 30% 급감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지난해 3조5000억엔(약 34조7350억원)의 투자 손실을 냈다. 중국 차량호출 플랫폼 디디, 알리바바 등 기술주들이 폭락한 게 주된 원인이었다. 공유오피스 위워크, 영국 반도체 칩 제조사 암(ARM) 등 비상장사 투자도 부담을 키웠다. 타이거 글로벌 역시 올해 들어서만 170억달러(약 21조5000억원) 규모 손실을 보자 스타트업 투자를 대폭 축소했다.

‘몸값’ 낮춘 스타트업들

국내 벤처투자 시장도 빠르게 경색되고 있다. 물류 대행 서비스 ‘부릉’ 운영사인 메쉬코리아는 몸값을 8000억원 수준에서 투자라운드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내심 이번 투자 유치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등극을 기대했다가 한발 물러선 것이다. 조달 규모도 30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낮춰 잡았다.

비바리퍼블리카(토스)는 1조원 규모의 프리IPO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이지만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을지 미지수다. 20조원대 기업가치를 노렸지만, 장외 시가총액이 12조원까지 떨어졌다.

“위기 아닌 기회” 시각도

전문가들은 벤처투자 시장에 유입되던 자금이 주춤해지면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불투명한 수익성과 취약한 기술 기반에도 유동성에 기대 외형 확장에 몰두해온 기업들이 밀려나고 미래 성장성 있는 기업 위주로 투자가 재편되는 등 구조조정 계기가 될 것이란 시각이다. 정책자금 규모와 연기금 등의 벤처투자 열기 등을 감안하면 ‘닷컴 버블’ 때와 같은 투자 빙하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크다.

김종우 기자/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