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금 '출구' 역할을 해온 기업공개(IPO)가 사실상 막히면서 후기(시리즈 C~G)와 상장 직전(프리 IPO)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벤처 투자 시장이 빠르게 식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벤처캐피털(VC)들이 그렇다고 쉬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VC의 관심은 시리즈 A 라운드를 진행하는 초기 스타트업으로 쏠립니다. 상장까지는 5~7년의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새싹 기업들을 얼마나 잘 발굴하는지가 수년 후 VC들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지난 1년간 VC들의 시리즈 A 투자 성적을 살펴봤습니다.
"벤처 겨울? 우린 미래를 본다" VC들의 시리즈A 투자 성적표 [긱스]
벤처투자 정보업체 더브이씨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1년 3월부터 2022년 4월까지 1년간 581개 투자사가 총 476개 벤처‧스타트업의 시리즈 A 라운드에 참여했습니다. 투자금액을 공개하지 않은 58개를 제외하면 418개 스타트업에 들어간 총 투자금은 3조5289억원에 이릅니다.

투자사의 60%(338개 사)는 투자 대상이 한 곳에 불과합니다.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한 투자사 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인데요. 스타트업 투자사는 VC로 불리는 벤처투자조합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벤처투자 열기가 달아오른 덕분에 금융회사는 물론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일반 회사, 사모펀드(PEF)까지 스타트업 투자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KB인베스트먼트, 최다 36건 참여

최근 1년간 시리즈A 라운드에 가장 많이 이름을 올린 VC는 KB인베스트먼트였습니다. 무려 36개 스타트업의 시리즈 A에 투자했습니다.

블록체인 기반 QR코드를 이용해 유통관리 시스템을 제공하는 블록오디세이에 비롯해, 가상공간 화상회의 솔루션 오비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사 오토노머스에이투지, 온라인 과외 서비스 ‘설탭’ 운영사 오누이, 코딩 교육 플랫폼 팀스파르타, 면역 항암제 개발 스타트업 아이엠바이오로직스 등에 투자했는데요. 말랑말랑한 교육 서비스 플랫폼부터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베팅했습니다.
바이오 투자 명가(明家), 한국투자파트너스

벤처펀드 기준 운용자산(AUM) 2조4000억원으로 VC 업계 1위인 한국투자파트너스는 뒤를 이어 총 30개 스타트업의 시리즈 A 라운드에 참여했습니다. 클렌즈 주스 회사에서 대체육 식품기업으로 변신한 올가니카, 연예인들의 '부캐' 전문 매니지먼트사인 갤럭시코퍼레이션, 차세대 배터리회사 그리너지, 블록체인 기술기업 파이랩테크놀로지 등 100억원 이상 시리즈A 라운드에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국내 바이오 투자 대가로 불리는 황만순 대표가 이끄는 만큼 면역세포치료제를 개발하는 온코인사이트, 디지털 치료제 회사 에스알파테라퓨틱스, 신약 연구 벤처 티씨노바이오사이언스, 정밀 의료 회사 에스피메드 등에 베팅한 점이 눈길을 끕니다.
캡스톤파트너스, 스타트업의 '키다리 아저씨'

KB인베스트먼트와 한국투자파트너스가 자금력을 앞세워 여러 시리즈A 투자에 참여했다면, 자금 대부분을 초기 스타트업 투자에 주력하는 VC도 있습니다.

'마이크로 VC'를 지향하는 캡스톤파트너스는 최근 1년간 시리즈A 라운드에 18차례 투자를 집행했습니다. 당근마켓 기업가치가 100억원이 채 되지 않은 시점부터 투자해 주목받은 VC입니다. 총 153억원을 투자해 수익률 20배 대박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캡스톤파트너스가 지난 1년 사이 찜한 스타트업은 어디일까요? 수술 로봇 회사 이지엔도서지컬, 부동산 조각 투자 플랫폼 루센트블록,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기업 라이드플럭스, 온라인 코딩교육 플랫폼 팀스파르타, 침대 매트리스 회사 삼분의 일, 비상장 주식거래 플랫폼 '서울거래 비상장' 운영사 피에스엑스, 산업안전 솔루션 회사 무스마, 취미 플랫폼 솜씨당컴퍼니 등에 투자했습니다.

2006년에 설립해 업력이 긴 컴퍼니케이파트너스는 바이오와 플랫폼 분야에서 저력이 있는 VC로 꼽힙니다. 바이오 투자 전문가 이강수 투자 부문 대표와 유니콘 플랫폼 리디와 직방에 초기 투자한 변준영 부사장이 '투톱'을 이루고 있습니다.

컴퍼니케이는 지난 1년간 12개 스타트업의 시리즈 A 단계에 투자했는데요. 기업용 인공지능(AI) 솔루션을 지원하는 업스테이지, 캐릭터 기반 아케이드 게임 마코빌, 비건 메이크럽 브랜드 어뮤즈, 신차구매 견적 및 중개 플랫폼 겟차 외에 바이오 벤처 노보렉스, 티씨노바이오사이언스, 히츠에 투자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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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플랫폼에 강한 TBT

초기 투자에 집중하는 TBT파트너스도 11개 스타트업의 시리즈A 라운드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싸이월드와 네이버 블로그·밴드 등을 기획해 낸 스타 기획자 출신의 이람 대표가 이끌고 있습니다.

TBT는 주로 정보기술(IT) 플랫폼 스타트업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도티·피식대학·유병재 등 크리에이터들의 소속사 멀티채널 네트워크(MCN) 샌드박스,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그립, '반반택시'로 잘 알려진 택시 동승 플랫폼 코나투스, 서비스 매칭 플랫폼 숨고(브레이브모바일) 등이 주요 포트폴리오 회사입니다.

TBT는 최근 1년 동안 신차 구매정보 플랫폼 겟차, 협업툴 '샤플' 운영사 샤플앤컴퍼니, 숙박 큐레이션 플랫폼 스테이폴리오, 개인 맞춤형 화장품을 내놓은 릴리커버 등의 시리즈 A 투자를 집행했습니다.
유니콘 산실 DSC인베, 바이오도 두각

유니콘 기업을 초기 단계부터 키워내 '유니콘의 산실'로 불리는 는 시리즈A 투자에 19차례 참여했습니다. DSC인베스트먼트는 무신사, 카카오게임즈, 마켓컬리, 뤼이드, 퓨리오사AI 등 플랫폼·딥테크 기업부터 SCM생명과학, 지놈앤컴퍼니 등 바이오 분야까지 성공적인 투자 사례를 이어왔는데요.

특히 지난 1년간 바이오 투자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2020년 연봉 '킹'인 스타 심사역 김요한 전무가 바이오테크본부를 이끌고 있는데요. DSC인베스트먼트는 1년 동안 면역세포항암제 개발 회사 네오젠티씨, 세포유전자치료제 회사 큐라미스, 저분자 면역항암제 회사 티씨노바이오사이언스, 노인성 질환 전문 메디스팬 등에 투자를 집행했습니다.
'팔로온' 강자 미래에셋벤처

팔로온(후속 투자)에 강점을 지닌 는 우리 통계에 16차례 등장했습니다. 미래에셋벤처투자는 버킷플레이스(오늘의집), 리디, 매스프레소, 몰로코 등 유니콘급 플랫폼 회사의 초기 단계부터 성장을 지원해준 VC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특히 오늘의집엔 기업가치가 200억원대였을 때 투자했는데, 지금 이 회사의 몸값은 2조원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년간 미래에셋벤처투자는 협업툴 플랫폼 스윗테크놀로지스, 공동구매 플랫폼 레브잇,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앤굿, 지식재산권(IP) 기반 엔터테인먼트 스타트업 마코빌 등의 시리즈A 투자에 참여해 주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블록체인 전문 해시드

블록체인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인 해시드는 11차례 시리즈A 단계에 참여했습니다. 서울과학고와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김서준 대표가 이끄는 회사인데요.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나, 금융 생태계 활동을 돕는 스타트업,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 네트워크에서 가치를 만드는 프로젝트 등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1년간 앞서 언급된 블록오디세이를 비롯해 클라우드 기반 포스(POS) 회사 페이히어, 퀀트 기반 핀테크 스타트업 웨이브릿지, 스타트업 정보 미디어 플랫폼 넥스트유니콘, 비상장 주식거래 플랫폼 '서울거래 비상장' 운영사 피에스엑스 등에 투자했습니다.
중견 VC 입지 다지는 HB인베

AUM 5000억원을 돌파하며 중대형 VC로서의 입지를 다져가는 HB인베스트먼트는 우리 통계에 8차례 등장했습니다. HB인베스트먼트는 박하진·황유선 두 명의 여성 대표가 이끌고 있는데요. 이 회사는 콘텐츠와 플랫폼 분야 투자에 강점을 지녔습니다.

HB인베스트먼트는 1년간 사오십대 여성 패션 플랫폼 '퀸잇' 운영사인 라포랩스, 협업툴 비즈니스캔버스, 뉴스레터 플랫폼 뉴닉, 데이팅앱 '아만다' 운영사 테크랩스 등에 투자했습니다. 수면 패턴을 분석해 건강한 '잠'을 보장해주는 슬립테크(수면+기술) 스타트업 에이슬립에 투자한 점도 눈길을 끄네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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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곳 중 하나는 100억 이상 투자

통상 시리즈A 단계엔 100억원 미만의 자금이 투입됩니다. 이 단계 회사들의 기업가치는 대개 300억원이 채 되지 않죠. 하지만 몇 년 새 '벤처 붐'이 일며 시리즈A 단계에서 수백억원대 투자를 받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실제로 지난 1년간 우리 통계 기준 26%(109개 사)가 시리즈A 단계에서 100억원 이상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스타트업의 덩치가 점점 커지자 각 VC도 한 번에 수십억 원씩 베팅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이를테면 알토스벤처스는 AI 스타트업 보이저엑스의 시리즈A 라운드에 100억원을 투자했고요. 또 쇼핑몰 솔루션 회사 아임웹의 시리즈A 라운드에 단독으로 참여해 100억원의 자금을 집행하기도 했습니다.
몸집 커지는 스타트업, PEF도 투자

최근 몇 년 새 스타트업 몸값이 치솟으면서 시리즈B, C 단계로 갈수록 VC와 PEF 간의 투자 경계가 옅어지는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이 커지는 '스케일업' 단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재무·경영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PEF의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기업가치가 수천 억 원대에 이르는 스타트업의 투자 라운드엔 PEF 운용사들도 주주로 이름을 올리는데요. 지난 4월 음악 저작권료 청구권을 쪼개 파는 '뮤직카우'에 1000억원을 투자한 곳도 PEF 운용사 스틱인베스트먼트입니다. VIG파트너스 출신 안성욱 대표와 김성민 대표가 만든 아크앤파트너스는 지난해 12월 사람인HR과 공동으로 명함관리 앱 리멤버를 운영하는 드라마앤컴퍼니에 1600억원 규모 시리즈 D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전략적 투자자인 CVC와 경영권 참여형 PEF가 짝을 이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GS리테일이 IMM 프라이빗에쿼티와 함께 반려동물 쇼핑몰 펫프렌즈를 인수한 경우처럼 말이죠.

하지만 PEF는 스타트업이 만들어내는 이익 등 '현재'에 집중하는 반면, VC는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지를 내다보는 '미래'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시리즈 A는 벤처투자의 '꽃'

그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시리즈A 단계야말로 벤처투자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매출이 나오지 않아도, 아직 보여준 게 없어도 창업자의 역량과 회사가 지닌 '미래 성장성'을 먼저 알아본 VC가 대박을 터뜨릴 수 있으니까요.

벤처투자 '파티'는 끝이 났지만, 초기 스타트업들은 시리즈A 투자로 싹을 키워나갈 겁니다. 다만 창업자가 힘들어할 때 같이 우산을 써 주는 VC의 '파트너십'이 더욱 요구되는 때입니다.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VC의 마중물이 몇 년 뒤 돌아올 수확기에 '잭폿'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김종우/허란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