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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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디지털 치료제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급증하는 의료비를 줄여줄 대안으로 디지털 치료제가 각광받으면서다. 미국에서만 행동 치료 등을 통해 줄일 수 있는 의료비용이 3조4000억달러(약 4333조원)에 이른다는 평가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바이오젠은 최근 메드리듬스와 다발성 경화증 환자의 보행장애를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 'MR-004'를 함께 개발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공동 연구 협약을 위해 바이오젠이 지급한 계약금은 300만달러다. 상용화 단계 등에 따라 최대 1억1750만달러의 마일스톤을 지급한다.

메드리듬스에서 개발하는 기기는 신발에 센서를 부착해 걸음걸이를 분석한 뒤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청각 자극을 주는 방식의 치료용 앱이다. MR-004는 다발성 경화증 환자의 보행장애를 해결하기 위해 처방되는 첫 디지털 치료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메드리듬스는 유니버셜뮤직과 파트너십을 맺고 다양한 치료용 음원을 활용하고 있다. 신경계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바이오젠은 지난해 디지털헬스 사업부를 출범했다. 맞춤형 바이오마커 등을 개발하고 예방의학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업체 측은 이번 협약으로 다발성 경화증 환자들의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디지털 치료제 기업과 손잡은 곳은 바이오젠 뿐 아니다. 올해 3월 아스트라제네카는 분산형 임상시험과 디지털 재택 진료 플랫폼을 보유한 영국 휴마와 손잡았다. 아스트라제네카는 3300만달러 어치 휴마 지분을 인수했고 휴마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천식·심부전 환자 플랫폼인 어메이즈를 품에 안았다.

화이자도 지난달 호주 법인을 통해 레스앱헬스를 1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폐렴,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환자의 진단·관리를 위한 스마트폰 앱을 개발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환자의 기침 소리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심각도 등을 예측하는 앱이다. 업체 측은 올해 영국에서 첫 시제품이 사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제약사들이 디지털 치료제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2019년께부터다.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는 그해 디지털 치료제 전담 부서를 꾸리고 해피파이헬스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다발성 경화증 환자의 우울증 등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다발성 경화증 환자는 불안 우울 피로감 등을 호소한다. 하지만 약물을 활용해 이를 해결하긴 어렵다. 디지털 치료제를 활용해 우울증을 줄이면 다발성 경화증 재발 위험도 함께 줄일 수 있을 것이란 평가다.

이런 협력관계는 팬데믹을 계기로 급속도로 확산됐다. 지난해 일본 제약사 에자이는 암 환자를 돕기 위해 디지털 치료제 개발 기업과 손을 잡았다. 노바티스, 바이엘 등도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기업들이 앞다퉈 디지털 치료제 시장으로 보폭을 확대하는 것은 높은 시장성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건강 상태를 결정하는 요인 중 의사나 약 등 현재의 의료 시스템이 좌우하는 것은 2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식이요법, 운동, 생활방식, 마음가짐, 금연 등 생활습관 등에 따라 달라진다.

제약 및 의료 산업은 앞선 20%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점차 나머지 80%에 대한 중요성이 커질 것이란 평가다. 미국에서 행동 처방이나 식습관 등을 통해 관리할 수 있는 의료 비용은 전체의 80%인 3조40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작용이 없고 비용 효과성이 높은 디지털 치료제에 제약사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팬데믹은 디지털 치료 시장이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2020년 4월 미 식품의약국(FDA)은 디지털 치료기기 등에 대한 규제 사항을 일부 줄여주는 긴급 지침을 내놨다. 집에 있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를 위한 아킬리인터렉티브의 디지털 치료제(Endeavor), 정신 분열증 환자를 위한 피어테라퓨틱스의 디지털 치료제(피어-004) 등은 이 지침에 따라 상용화 제품을 출시했다.

최근 일본에서도 큐어앱이 고혈압 관리를 위한 디지털 치료제의 정식 의료기기 허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금연치료, 수면관리 등 생활 처방은 물론 인슐린 수치 모니터링, 전기자극을 활용한 통증 완화 장치, 신경재활용 가상현실(VR) 기기, 항암제 부작용 관리앱 등 다양한 디지털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