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톡스가 국내 보툴리눔 톡신(보톡스) 1위 업체인 휴젤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자사의 보툴리눔 톡신 원료를 몰래 가져다 썼다며 수입금지 명령을 요구했다.

반면 휴젤은 “허위 주장”이라며 맞섰다. 대웅제약과 균주 도용 관련 분쟁을 벌여온 메디톡스가 휴젤을 정조준하면서 보톡스 분쟁이 다시 확산될 조짐이다. ITC 제소 소식이 알려진 1일 메디톡스 주가는 4% 상승한 반면 휴젤은 13% 급락했다.

“균주 도용” VS “명백한 허위”

메디톡스, 이번엔 휴젤…'균주 도용' 美 소송
메디톡스는 휴젤이 자사의 보툴리눔 톡신 균주와 제조 공정을 몰래 가져다 썼다며 미 ITC에 제소했다고 이날 밝혔다. 2019년 1월 같은 이유로 대웅제약을 제소한 지 3년여 만이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소송 비용은 글로벌 소송·분쟁 전문 투자회사가 전부 부담한다”고 했다. 메디톡스가 승소해 배상금을 받으면 일정 비율을 투자회사에 떼어준다.

메디톡스는 휴젤을 제소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지난해 8월 미국 대형 로펌 퀸엠마누엘을 법률 대리인으로 선임한 게 신호탄이었다. 소송 제기 시점도 휴젤의 미국 시장 진출이 결정되는 때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메디톡스가 ITC에 제소한 지난달 30일은 휴젤의 보툴리눔 톡신 제품(레티보)에 대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품목허가 심사 결과가 나오기 하루 전이다. 휴젤 관계자는 “메디톡스의 주장은 허위 주장”이라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했다.

재점화된 ‘균주 전쟁’

주름 개선 등에 쓰이는 보툴리눔 톡신은 보툴리눔균에서 뽑아낸 독성 단백질이다. 균주에서 추출한 독소를 정제해 원액으로 쓴다. 균주를 어디서 가져왔느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메디톡스는 1979년 양규환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미국 위스콘신대 유학 때 실험실에서 쓰다가 가져온 균주(홀 하이퍼)가 출처라고 주장한다. 미국 애브비, 중국 란주연구소와 같은 출처다. 양 전 처장이 이삿짐에 넣어 가져왔지만 당시 기준으로 법적 문제가 없었다는 게 메디톡스 측의 주장이다.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는 당시 KAIST 교수였던 양 전 처장의 제자였다. 정 대표가 양 전 처장으로부터 받은 균주를 활용해 2006년 국내 첫 보툴리눔 톡신 제품(메디톡신)을 내놨다.

메디톡스는 휴젤, 대웅제약뿐만 아니라 국내 업체 대다수가 자사 균주를 도용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의 보툴리눔 톡신 균주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휴젤은 유통기한이 지난 콩 통조림에서, 대웅제약은 경기 용인의 땅에서 보툴리눔균을 발견했다고 주장해왔다.

美 진출 앞두고 악재 만난 휴젤

휴젤은 미국 사업에 악재를 만났다. ITC 제소가 당장 미국 시장 진출과 FDA 품목 허가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향후 수입 금지 리스크를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게 됐다. 휴젤은 상반기께 레티보 품목 허가를 받아 연내 미국에 출시할 계획이었다.

메디톡스는 앞서 대웅제약을 상대로 ITC 소송을 제기해 21개월 수입금지 처분을 받아냈다. 이후 대웅제약 보툴리눔 톡신(나보타) 해외 판권을 보유한 에볼루스, 메디톡스, 메디톡스와 함께 소송을 낸 당시 파트너사 애브비(옛 엘러간) 3자 합의로 이 처분은 무효화됐다. 업계 관계자는 “메디톡스가 대웅제약과의 소송 경험을 살려 이번엔 휴젤을 타깃으로 삼았다”고 했다.

휴젤은 메디톡스의 ITC 제소가 ‘발목 잡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실제 메디톡스는 소장에 ‘휴젤 제품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고 적었다. 메디톡스는 2013년 애브비에 기술이전한 보툴리눔 톡신 후보물질이 8년 만인 지난해 8월 전격 반환되면서 미국 진출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미국은 단일 국가 기준으로 세계 최대 보툴리눔 톡신 시장이다. 휴젤 관계자는 “메디톡스가 거짓 음해로 다른 회사 성장을 막으려 한다”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