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창업자 포리타 아키오
소니 창업자 포리타 아키오
버즈 올드린과 닐 암스트롱 등이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을 정복할 때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자칫 우주 미아가 될 수도 있다는 극한의 두려움과 긴장감을 풀어준 소니의 소형 녹음기 TC-50이다.

걸으면서 음악 듣는 시대 열었다…3억8000만대 팔린 소니 워크맨
올드린은 이 기기를 활용해 우주에서 음악을 감상했다. 이때만 해도 대다수 사람은 집에서 턴테이블로 LP 음반을 들었다. TC-50의 무게는 대략 600g. 소고기 한 근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소니가 ‘음향기기 다이어트’에 성공한 건 10여년 뒤였다. 1979년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워크맨을 출시했다. 워크맨의 최초 모델인 TPS-L2는 녹음 기능을 제거하는 식으로 무게를 400g 밑으로 줄였다. 높은 휴대성과 고품질 음악 재생에 집중한 기기였다. 출시 이후 지금까지 워크맨은 200여 종이 생산돼 2010년 판매를 중단할 때까지 약 3억8000만 대나 팔렸다.

근무시간에 딴짓하는 직원 보고 ‘워크맨’ 떠올려

걸으면서 음악 듣는 시대 열었다…3억8000만대 팔린 소니 워크맨
워크맨의 성공은 예견된 일이었다. 1970년대 후반 소니 공동창립자이자 명예회장인 이부카 마사루는 “비행기에서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하자”고 했고, 공동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도 “하루 종일 젊은이들이 음악을 들을 수 있겠다”며 맞장구를 쳤다.

문제는 기술이었다. 녹음 기능과 재생 기능을 한데 담으면서 무게를 줄이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구로키 야스오 기술팀장의 눈에 헤드폰을 끼고 혼자 낄낄거리는 젊은 엔지니어가 들어왔다. 구로키는 훗날 200여 종의 워크맨을 디자인해 ‘미스터 워크맨’으로 불린 인물이다. 당시 젊은 엔지니어의 손에 들린 건 녹음장치를 빼고 재생장치만 넣어 스테레오 재생장치로 개조한 기기였다. 야스오는 근무시간에 딴짓을 한 직원을 질책하는 대신 혁신의 기회를 찾았다.

그는 녹음장치를 전부 제거한 워크맨 시제품을 개발했다. 공간에 구속받지 않고 ‘걸으면서 음악을 듣는다’를 콘셉트로 내세웠다. 발매 하루 전까지 몇몇 임직원은 성공을 의심했다. “녹음 기능을 뺀 녹음기를 누가 사겠느냐”는 걱정에서였다. 구로키는 “소니의 독창성을 지키려면 실험실의 모르모트가 돼도 좋다”며 밀어붙였다. 우려와 달리 워크맨은 출시 두 달 만에 3만 대가 팔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음악 감상 패러다임을 바꾼 워크맨

걸으면서 음악 듣는 시대 열었다…3억8000만대 팔린 소니 워크맨
소니가 1981년 내놓은 WM-2는 첫 모델보다 작고 가벼웠다. 그 덕에 세계 250만 명의 손에 들리게 됐다. 워크맨이 대세가 되자 음반 시장이 요동쳤다. 음반회사들은 앞다퉈 카세트테이프로 음반을 내놓기 시작했다. 워크맨이 세상에 나온 지 4년 만인 1983년 카세트테이프는 판매량에서 LP를 눌렀다.

워크맨은 1980~1990년대 세계인의 생활양식도 바꿨다. 워크맨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늘면서 음악과 춤을 접목한 에어로빅이 인기를 끌었고, 헤드폰을 낀 채 조깅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워크맨을 사용하는 사람이 급증하자 미국 뉴저지주는 1982년 보행자 안전을 우려해 공공장소에서 워크맨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워크맨은 단순한 제품 이름을 넘어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지칭하는 일반명사가 됐다. 1986년에는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올랐다.

영원할 것 같았던 워크맨의 인기는 2000년대 들어 점차 식어갔다. 더 작고, 더 깨끗한 음질로 무장한 MP3플레이어에 자리를 내줬다. 1980~1990년대 워크맨이 누린 영광은 고스란히 애플의 아이팟이 넘겨받았다. 소니는 2010년 항복했다. 워크맨의 시대는 그렇게 저물었다.

워크맨이 남긴 유산은 지금도 남아 있다. 워크맨에 새겨진 표식은 카세트테이프가 사라진 지금도 그대로 쓴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도 음악을 재생할 때는 오른쪽 화살 표식을 쓰고, 재생 중지는 세로선 두 줄로 표시한다. 감아야 할 테이프가 없어도 음악을 앞으로 돌릴 때는 모두 ‘되감기’라고 부른다. 턴테이블과 LP가 음반 시장을 주도했다면 쓰지 않았을 용어다. 워크맨은 그렇게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